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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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이경섭 칼럼] 자연 예찬론자인가 그리스도 예찬론자인가?

기독교인들이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나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National Park)’ 같은 거대한 자연을 대면할 때,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당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진다’ 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심지어 신학을 전공한 목회자들까지 ‘자연 속에서 하나…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이경섭 칼럼] 성탄을 장례식처럼 맞이한 사람들?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것과 관련된 당시의 정황들은 잘 매치가 되질 않습니다. 새 생명의 탄생은 그것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축복과 생명의 환희를 느끼게 해야 하는데, 예수 탄생을 둘러싼 일련의 정황들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천사의 전언(…
이경섭

[이경섭 칼럼] 택자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1인 3역

◈택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진노 택자인 성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사랑하기로 택정하셨습니다(엡 1:4). 칼빈(John Calvin)은 이것을 소위 ‘타락 전(전) 선택(Supralapsarismus)’이라고 명명했습니다. …
베스퍼스

클래식? 시편 찬송? 교회음악의 ‘엘리트주의’를 경계한다

클래식에 익숙해지는 데는 단계가 있다. 특별히 대중음악에 길들여져 있던 사람이 처음부터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하이든(Franz Joseph Haydn),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을 듣는 것은 무리이다. 대개 클래식과 친근해지기 위해 처음 접하는 음악이 밝고 경쾌한 모차르트…
이경섭

[이경섭 칼럼] 자기 것에 애착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자기 소유에 대한 애착(愛着)이 강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자기 소유를 포기하거나 누구에게 뺏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기 소유에 대한 그의 애착이 택자 구원의 보장이며, 그들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택자(擇者)에 대한 그의 …
이경섭

다시 오시는 주님… 신랑으로 맞을까, 심판주로 맞을까?

예수 재림(再臨, parousia)은 주후 70년경부터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재림은 예수 승천 후 곧 실현된다고 믿었고, 심지어 동시대인들은 예수로부터 직접 자신들이 죽기 전 그의 재림을 볼 자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이는 사실 ‘성령강림’을 두고 …
이경섭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사랑이 구원의 조건인가요?

◈사랑은 행위가 아닌 관계입니다 성경의 핵심 가르침은 ‘믿음 구원, 불신 저주’입니다. 만일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전 16:22)”는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사랑을 구원의 조건으로 만들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以信得救)’는 성경의 …
파도, 물결, 고난,

[이경섭 칼럼] 의(義)를 위해 핍박받는 것, 천국 백성의 증거

산상수훈 속 팔복 마지막 부분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의 복’입니다. 논의를 진전시키려면, 먼저 핍박을 불러일으키는 의(義)가 무엇인지부터 규명돼야 합니다. 광의적(廣義的)으로는 ‘율법적 의’나 ‘사회적 공도(公道)’도 포함될 수 있지만, 협의적…
이경섭

[이경섭 칼럼] 당신은 화평의 사자입니까?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는 흔히 곡해되는 성경 말씀 중 하나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이들은 대개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이 있…
이경섭

[이경섭 칼럼] 과연 누가,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마음’이 ‘거듭난 영혼’의 좌소이지만, 영적으로 죽은 미중생(未重生, non-regeneration)자들의 ‘마음’은 단지 ‘비물질 육체(nonmaterial-flesh)’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미중생자의 ‘마음의 생각’을 ‘육체의 생각(the carnal mind-KJV, the mind set o…
이경섭

[이경섭 칼럼] 긍휼은 하나님 권세의 행사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마 5:7)’은 산상수훈의 8복(八福) 중 다섯 번째 복에 해당됩니다. 다른 복들과 마찬가지로 일반이 기대하는 복과는 사뭇 다릅니다. 하나님의 전유물인 ‘긍휼’을 죄인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도 독특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위치에 서라’…
이경섭

[이경섭 칼럼] 의에 배부르지 못한 자는, 의에 주리지도 못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마 5:6)’ 하면, 불문가지(不問可知)하고 ‘의의 채움을 향한 갈망’ 같은 ‘결핍’ 개념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중생으로 인한 의(義)에 배부름이 갖다 준 ‘만족 갈망(longing of satisfaction, 만족한 상태에서의 갈망)’입니다. …
이경섭

[이경섭 칼럼] ‘하나님 쓰신 돌판’ 박살냈던 모세가 온유한 자인가?

성경에서 ‘온유(meekness)’만큼 오해되는 단어도 없습니다. 특히 ‘인군(仁君, a benevolent sovereign)’이라는 단어가 있을 만큼 ‘어짐(仁, benevolent)’이 임금의 최고 덕목이고 인간 최고의 가치로 간주되는 동양 문화에서는 더욱 그리합니다. 따라서 성경 최고의 덕목…
이경섭

[이경섭 칼럼] 애통, 구속의 은혜에서 나온 건강한 죄의식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영적인 통한(痛恨) ‘애통(哀痛, mourn)’은 죽음에서 연유한 단어입니다. 원래 누가 죽었을 때 갖는 슬픔을 애통(mourn)이라고 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대해 갖는 통한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천국

[이경섭 칼럼] 심령 가난, 채움과 갈망 사이의 ‘낀 경험’

톨스토이는 평생 성경과 더불어 노자(老子), 장자(莊子)를 애독했습니다. 지금도 그가 살았던 유택(遺宅)의 책꽂이에는 그가 애독했던 그 책들이 꽂혀 있다고 합니다. 그는 노·장자(老·莊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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