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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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이경섭 칼럼] 이신칭의는 ‘예수천당’입니다

이신칭의는 어렵고 복잡한 신학적 주제가 아닙니다. 태초에 에덴에서 아담의 가죽옷(창 3:21)과 아벨의 제사를(창 4:4) 통해 알려졌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전도하셨던 복음이고(갈 3:8), 기독교가 늘상 말해왔던 내용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교회라면 지금도 여…
이경섭

‘은혜 언약’ 위에 세워진 이신칭의는 결코 취소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이 은혜 언약이었는가 행위 언약이었는가? 아브라함은 율법을 신실히 준수해서 의롭다 함을 받았는가? 여기에 대해 신율주의자들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 2:21)'는 …
이경섭

[이경섭 칼럼]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 이신칭의

상선벌악과 양심에 근거한 율법주의(윤리) 종교는 심오한 종교 관념 없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연산 종교는 생득적인 윤리와 양심으로 설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양심을 마음에 새겨진 율법이라 한 것은, 인간은 본성적으로 율법에 대한 이…
이경섭

[이경섭 칼럼] 이신칭의, 전적무능자에게 내리신 선물

이신칭의는 자기 의(義)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죄인들을 위해 마련하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이 자기 의를 위해 뭔가 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은 이신칭의를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신칭의는 칭의유보자들의 공격처럼 바울, 루터 시대에 비로…
이경섭

처음부터 완전치 않은 칭의, 종말에도 완전할 수 없다

칭의유보자들은 자신들의 유보칭의의 근거를 대기 위해 나름대로 성경적 근거를 들이대나, 사실 그 배경을 면밀히 살펴보면 성경보다는 심리주의와 실용주의 메커니즘에 더 고무된 듯 합니다. 이미 의(義)가 완성 종결됐다는 이신칭의 교리는 나태한 인간 본성에 …
이경섭

[이경섭 칼럼] 완전한 하나님의 의, 이신칭의

이신칭의는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은총이기 이전에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해주시므로 하나님 자신의 의로우심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신칭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단지 예수를 믿는다고 누구…
이경섭 응답하라 개혁신학

‘이신칭의’, 값싸고 손쉬운 구원과 교회 부흥 위한 동기일 뿐?

스콜라주의(Scholasticism)와 르네상스(Renaissance)는 기독교를 이성주의와 인본주의로 오염시킨 원흉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지만, 종교개혁의 단초가 되게 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습니다. 아니러니하게도 성경의 신적 권위를 공격한 인문주의가 성경적 신앙으로 돌…
이경섭

왜 칭의에서 ‘믿음’이 아닌 ‘윤리’를 찾는가?

이 글은 6월 28일자 최갑종 교수의 개혁신학회 기조발제 '강한 윤리적 메시지 담은 칭의 강조할 필요 있다'는 본지 기사를 읽고, 독자들과 필자가 담임하는 교회 성도들이 갖게 될 칭의에 대한 혼란을 덜어주려는 목회적 관점에서 쓴 것이다. 최갑종 교수 개인에 대한…
이경섭

[이경섭 칼럼] 부패한 인간은 칭의에 기여할 것이 없습니다

성 프란시스(St Francis, 1181-1226), 아이작 뉴톤(Isaac Newton, 1642-1727) 같은 이들이 자연에 주목한 자연탐미주의자들이었다면, 스콜라주의(Scholasticism, 9-11세기)와 르네상스(Renaissance, 14-16세기) 는 인간의 탁월성과 아름다움을 주목한 인간 탐미주의(Aestheticism)입니다. 그러…
이경섭 응답하라 개혁신학

[이경섭 칼럼] 칭의는 ‘공략’의 대상이 아닙니다

칭의는 인간이 어찌 해볼 수 없는 인간 권한, 능력 밖의 일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도 없고, 인간이 조력하거나 간여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출생을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인간이 칭의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칭의를 받아…
이경섭 응답하라 개혁신학

[이경섭 칼럼] 하나님의 영광, 이신칭의

이신칭의(以信稱義)가 하나님께 영광됨은, 그것이 그리스도로부터 전가 받은 인간의 자긍심이 묻지 않은 의(義)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의존적 인간에게 자긍심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하려는 반(反)하나님적인 것으로, 세상으로 좇아 나온 것입니다(요일 2:16). …
이경섭 응답하라 개혁신학

[이경섭 칼럼] 숙성이 불필요한 즉각적인 이신칭의

급전직하(急轉直下)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하루 아침에 신세가 급격히 몰락한다는 뜻이다. 최근 영어의 몸이 된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서 이 단어를 더욱 실감한다. 천사장이 타락하여 마귀가 된 것도 급전직하(急轉直下)한 경우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 형상…
이경섭 응답하라 개혁신학

[이경섭 칼럼] 겸손한 자만이 먹고 배부르는 이신칭의

이신칭의(以信稱義)는 율법을 통해 자신의 부패와 무능을 깨닫고 깨어진 자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겸비한 교리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몽학선생 율법으로부터 율법의 정죄를 받아,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구원을 희구하는 자에게만(행 16:30) 눈에 띄는 교리입…
이경섭 응답하라 개혁신학

[이경섭 칼럼] 이신칭의는 사랑의 교리입니다

이신칭의(以信稱義)는 사랑의 교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가 성령으로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이해가 결여된 이신칭의는 화석같이 죽은 교리가 되거나 사변적 논쟁 대상으로 전락됩니다. 이신칭의를 사랑의 교리라 하는 이유는 스스로…
이경섭 응답하라 개혁신학

[이경섭 칼럼] 봄맞이 갔다 영혼만 털리고 오지 맙시다

꽃봉오리 터지는 춘사월 화사한 봄, 추위에 웅크렸던 마음들이 기지개를 켜며 너나 할 것 없이 대자연의 유혹에 이끌립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저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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