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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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29)

그만큼 타인의 오해를 사게 된다는 걸 그녀스스로는 모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영혼에 내재한 정신을 읽지 못한 채 겉보기로 안이하게 정의해 버린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다. 그것에 그녀는 일종의 상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그녀는 타인…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28)

연일 추운 날씨만큼 폭격도 수그러들 줄 몰랐다. 엄마와 동생들이 피난을 떠난 날 밤, 앞집이 폭격을 맞아 문간채가 폭삭 내려앉았다. 하루 밤새에 시내의 중심부인 부촌은 폭격에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근심과 두려움에 지친 아버지의 병세는 하한선으로 치달았…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27)

신애는 얼굴에 팥알 같은 두드러기가 나서 자기 방에 누워 ‘학원’을 읽고 있었다. 어저께 S언니의 생일 초대에 가서 싫다는 말을 못하고 닭고기를 먹은 게 탈이 난 거였다. 점심에 먹은 두드러기 약 때문에 깜빡 잠이 들었었나 보았다. 갑자기 후다닥 뛰어 들어…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26)

일서는 금방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계절이 바뀌자 아버지가 몸져누우셨다. 누님의 아들이라는 혈연관계를 넘어 아버지는 일서를 신뢰하여 소년에 불과한 일서와 자주 심각한 이념과 전쟁후의 나라사정이며 일서의 진로문제를 나누곤 …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25)

깊은 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신애의 귀에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었다. 이명인 걸까. 가만히 청각을 집중해 보았다. 역시 조심스럽게 대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가느다랗게 신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이명은 아니었고, 집안은 잠들어…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4)

조개구름이 수놓인 하늘은 잔잔한 이미지의 수채화처럼 맑고 고요하였다. 세상을 두 쪽 낼 듯이 우박처럼 폭탄을 퍼붓던 제트기가 더는 날지 않았다. 인민군이 밀려간 후 동네 공터엔 여기 저기 UN군부대가 자리 잡고 캠프를 쳤다. 신애네 집과 가까운 학교 운동장과…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3)

요즘엔 퇴각하는 인민군을 소탕하기 위해 밤낮 없이 유엔군의 폭격기가 살상의 불을 뿜는 세상이 것만, 과수원의 복숭아나무엔 크레파스로 그린 것처럼 수밀도가 주렁주렁 익어가고 있고. 사과나무엔 연록색의 색연필로 칠한 것 같은 푸른 사과가 눈 시리게 달려 …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2)

언니야, 아버지한테 이르지 마라. 그 사람들 안 무서워. 우리 복숭아가 아주 맛있다고 좋아했단 말이야, 응? 너, 또 거길 가겠다는 거야? 신애는 눈을 부릅떴다. 아니야 아냐 안 가. 언니야, 진짜 아버지한테는 이르지 마라. 마당에서 벌 서는 거, 창피하단 말이야. …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1)

썩은 악취를 풍기는 건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몰골이었다. 이시가와였다. 엄마는 그 자리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토록 악랄하던 일본 놈, 이시가와가 분명하였다. 시신과 진배없는 몰골은 걸레처럼 불결하고 남루하였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행색…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0)

가여운 금희는---? 신애는 잠간 금희에게 가볼 생각을 한다. 해방이 되고 개학을 하여 한글을 배우고 있는 데도 금희는 학교엘 오지 않고 있었다. 금희의 무용가의 꿈은, 경성에 가서 식모살이를 해서라도 무용학교에 가겠다던 금희의 독한 포부는---? 여린 신애의 마…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9)

매일 내리던 눈은 날이 밝으면서 그쳐주었다. 눈 온 이튿날은 문둥이가 빨래해 입는 날이라고 하신 할머니 말이 생각나서 신애는 미소가 나왔다. 바람도 자고 정말 푸근한 겨울날씨였다. 엄마는 은애에게 감춰 두었던 눈깔사탕이며 부채과자를 꺼내주고 두 동생을…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8)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는다. 경성에 가자마자 아버지에 관한 소식을 알려주시겠다고 한 고진의 아저씨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하루가 백년 같은 데도 한가위 추석이 돌아왔다. 이미 9월도 끝자락에 닿아 있었다. 작년 추석 땐 흰 인조견 속치마를 받쳐 입은 위에 …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7)

무더운 날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아버지에게선 엽서 한 장 오지 않는다. 고단한 밤 엄마가 한 땀씩 수놓은 일곱 개의 무운장구 센닌바리는 아버지 방 책상 위에 압핀으로 붙어 있다. 볼 때마다 신애는 엄마의 간절하고 고독한 마음이 느껴져 눈물어린 눈으로 바라보…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6)

만세를 힘차게 외치는 격앙된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방송은 계속 일본 천황의 항복소식을 반복하였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신애는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방을 휘둘러보는데, 언덕 아래 가즈오네 집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게 보였다. 웅성웅성 이상한 분…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15)

까미가 풀려 산발이 된 머리 때문에 엄마의 광란은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배에서 상체로 올라온 주먹은 젖무덤을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원한의 주문을 외우듯이 이시가와의 이름을 뇌까리며 엄마는 소리 죽여 훌쩍였다. 그렇다. 이시가와 그는 원수이다.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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