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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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34)

경상도 억양의 공군과 열대식물이 가득한 집에서 신애는 초밥을 먹고 있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내다보던 공군은 미안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어딜 급히 가는 것 같았는데, 나 때문에 약속을 어긴 겁니까? 지금 가도 돼요. 식당에서 나와 신애는 급할 것 없는 …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33)

병약한 몸으로 신애는 들쑥날쑥 학교엘 나갔다. 우기가 시작되면서 1학기 시험이 끝났다. 건강때문만이 아닌, 전통 없는 대학도 적성에 어긋난 과선택도 도무지 수긍할 수가 없고 싫었다. 신애는 건강을 회복하여 내년에 원하는 대학에 도전할 결심을 굳혔다. 운명…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32)

어떻게든 정설리의 사슬에서 풀리고 싶다고 이 악문 금희의 말에 신애는 전기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정신이 확 깨었다. 하지만 신애는 뭐라고 한마디도 묻지 못하고 침대에 눕고 말았다. 신애가 눈을 떴을 때 맞은편 벽에 압핀으로 꽂은 외국 국기가 보였다. 저건, …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31)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귀 기울이며 그녀는 방금 보고 있었던 숏 컷한 커리커츄어를 노트 갈피에 끼웠다. 오늘을 산 것 같은 기분이 슬며시 마음을 채웠다. 금희가 신애 머리 달라졌네 하자, 어머 쟤 좀 봐, 오늘 컷 했니? 상큼하고 예쁘다, 하고 성아가 …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30)

이렇게 불규칙한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음식과 약을 시간 맞춰 먹고 제대로 잠을 자야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면 느낄수록 그녀는 그런 규칙동사와 같은 생활에서 멀어져 갔다. 그녀는 잘 먹지 않았고 잘 자지 못하였다. 제때에…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29)

그만큼 타인의 오해를 사게 된다는 걸 그녀스스로는 모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영혼에 내재한 정신을 읽지 못한 채 겉보기로 안이하게 정의해 버린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다. 그것에 그녀는 일종의 상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그녀는 타인…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28)

연일 추운 날씨만큼 폭격도 수그러들 줄 몰랐다. 엄마와 동생들이 피난을 떠난 날 밤, 앞집이 폭격을 맞아 문간채가 폭삭 내려앉았다. 하루 밤새에 시내의 중심부인 부촌은 폭격에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근심과 두려움에 지친 아버지의 병세는 하한선으로 치달았…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27)

신애는 얼굴에 팥알 같은 두드러기가 나서 자기 방에 누워 ‘학원’을 읽고 있었다. 어저께 S언니의 생일 초대에 가서 싫다는 말을 못하고 닭고기를 먹은 게 탈이 난 거였다. 점심에 먹은 두드러기 약 때문에 깜빡 잠이 들었었나 보았다. 갑자기 후다닥 뛰어 들어…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26)

일서는 금방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계절이 바뀌자 아버지가 몸져누우셨다. 누님의 아들이라는 혈연관계를 넘어 아버지는 일서를 신뢰하여 소년에 불과한 일서와 자주 심각한 이념과 전쟁후의 나라사정이며 일서의 진로문제를 나누곤 …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25)

깊은 밤.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신애의 귀에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었다. 이명인 걸까. 가만히 청각을 집중해 보았다. 역시 조심스럽게 대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가느다랗게 신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이명은 아니었고, 집안은 잠들어…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4)

조개구름이 수놓인 하늘은 잔잔한 이미지의 수채화처럼 맑고 고요하였다. 세상을 두 쪽 낼 듯이 우박처럼 폭탄을 퍼붓던 제트기가 더는 날지 않았다. 인민군이 밀려간 후 동네 공터엔 여기 저기 UN군부대가 자리 잡고 캠프를 쳤다. 신애네 집과 가까운 학교 운동장과…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3)

요즘엔 퇴각하는 인민군을 소탕하기 위해 밤낮 없이 유엔군의 폭격기가 살상의 불을 뿜는 세상이 것만, 과수원의 복숭아나무엔 크레파스로 그린 것처럼 수밀도가 주렁주렁 익어가고 있고. 사과나무엔 연록색의 색연필로 칠한 것 같은 푸른 사과가 눈 시리게 달려 …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2)

언니야, 아버지한테 이르지 마라. 그 사람들 안 무서워. 우리 복숭아가 아주 맛있다고 좋아했단 말이야, 응? 너, 또 거길 가겠다는 거야? 신애는 눈을 부릅떴다. 아니야 아냐 안 가. 언니야, 진짜 아버지한테는 이르지 마라. 마당에서 벌 서는 거, 창피하단 말이야. …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1)

썩은 악취를 풍기는 건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몰골이었다. 이시가와였다. 엄마는 그 자리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토록 악랄하던 일본 놈, 이시가와가 분명하였다. 시신과 진배없는 몰골은 걸레처럼 불결하고 남루하였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행색…

[장편소설] 바다는 알고 있다 (20)

가여운 금희는---? 신애는 잠간 금희에게 가볼 생각을 한다. 해방이 되고 개학을 하여 한글을 배우고 있는 데도 금희는 학교엘 오지 않고 있었다. 금희의 무용가의 꿈은, 경성에 가서 식모살이를 해서라도 무용학교에 가겠다던 금희의 독한 포부는---? 여린 신애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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