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록, 한 점의 그림] 실물로 놓은 초석
성공회 서울주교좌 예수 모자이크
상단 그리스도상, 하단엔 성인상
명동성당 제대 위 14성인 종도상
1920년대 한국 기독교 문화 상징
‘교회 미술’은 한때 기독교 예술을 주도했던 중추적 부분이었다. 이 속에는 기독교 신앙 및 서사와 관련된 주제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모자이크, 벽화, 팀파눔 장식과 조각 등 여러 미술 장르가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성공회와 가톨릭 교회에서 상당한 규모의 교회 미술이 제작됐는데,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의 ‘예수 모자이크’와 명동성당의 ‘14 종도상(宗徒像)’이 그러하다.
먼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의 모자이크 작품부터 살펴 보자. 대한성공회의 트롤로프 주교(Mark Napier Trollope, 1862-1930)는 서울 중구 정동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건립을 추진했다.
설계를 맡은 아더 딕슨(Arthur Dixon)은 러스킨과 모리스의 영향을 받은 영국 미술공예 운동(Art and Craft Movement)에 참여했던 건축가였으며, 조지 잭(Jeorge W. Henry Jack, 1855-1931)에게 모자이크 설계를 맡겼다.
조각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예술과 공예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웹의 사무실에 들어가 미술을 배웠고, 이후 모자이크, 가구 디자인, 스테인드글라스를 포함한 목각 및 기타 공예기술을 개발했으며, 후에는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조지 잭은 전에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내 성 앤드루 예배당 모자이크를 설계한 적이 있어, 대한성공회 성당의 모자이크 제작에 선정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성 앤드류 예배당에서 손발을 맞춘 적이 있던 미술공예가 조시(Josey)의 도움을 받아 작품제작을 진행했다.
서울 대성당 모자이크는 크게 상단과 하단으로 구분되는데 상단에는 그리스도상이, 하단에는 성인상이 형상화돼 있다. 상단의 그리스도상은 1927년에, 하단의 성인상은 1938년에 각각 완성됐다.
상단의 그리스도상을 보면 왼손에 라틴어로 ‘Ego Sum Lux Mundi(나는 세상의 빛이다)’고 적힌 책을 펼쳐들고 있는데, 오른손 두 손가락을 모은 것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는 뜻을 지닌다. 배경에 쓰인 크리스토그램 JC/ XC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어 약자로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조지 잭의 원래 설계안에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의 상징인 카이로(Chi-Rho) ☧ (그리스어 그리스도(χριστός)의 앞 두 글자에서 유래)가 화면 좌측에 있고 알파와 오메가가 화면 우측에 있었으나 완성작에서는 JC/ XC로 변경됐다.
아무래도 우리의 눈길을 모으는 부분은 반구형 돔에 설치된 예수 그리스도상이다. 흔히 책을 들고 있는 예수상을 ‘판토크라토르(Pantokrator)’라고 부르는데, ‘전능하신 주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판토크라토르’ 중에서 오래된 작품은 6-7세기 제작된 캐서린 수도원에서 보존되어 있는 작품으로 지금과 같은 상반신으로 돼 있다. ‘판토크라토르’ 양식은 비교적 단순한 포즈로 돼 있는데, 오른손은 위로 들어올리고 왼손은 펴거나 접힌 성경을 잡고 있는 식이다.
조지 잭의 작품처럼 복음서를 펼치는 도상을 ‘선생님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복음서 안쪽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다’, ‘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지금 계시고 전에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자’ 등 여러 내용으로 되어 있다.
모자이크 하단 벽면에는 5개의 아치 공간에 인물상이 등장한다. 좌로부터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 복음서를 쓴 사도 요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 선지자 이사야, 그리고 아이들에 둘러싸인 성 니콜라스(서울 대성당 수호성인)를 각각 볼 수 있다.
그림 밑에 기록된 라틴어 찬송 ‘테 데움(Te Deum)’에는 “영화를 입은 모든 사도들이 주를 찬송하오며 주를 위해 증거하고 순교당한 자들 모두 주를 찬송하오며, 온 천사의 모든 교회가 주를 찬송하도다(김정신,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건축양식과 그리스도교 빛의 미학, 『미학예술학연구』,2004, 8쪽)”고 기록돼 있다.
모자이크 작품을 통해 조지 잭과 조시의 교회미술의 오랜 도상 전통을 지닌 ‘판토크라토르’ 도상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명동성당 제대 위에는 『14 종도상』이 소장돼 있다. 가톨릭 신자 장발(1901-2001)이 드브레 유 주교(1877-1926)의 의뢰로 제작한 것이다.
일찍이 장발은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도미, 컬럼비아 대학에서 미학, 미술사학을 공부하였다. 귀국 후에는 가톨릭 미술을 국내에 확산, 전파하는데 주력했다. 이때 그린 그림으로 ‘김대건 신부상’, ‘김골롬바와 아네스 자매’ 등이 있다. 미술사학자 이구열의 표현대로 그는 ‘본격적 성화제작을 개척한 화가’였다.
『14 종도상』은 그가 1925년 바티칸에서 조선 순교자 시복식에 참여해 돌아와 명동성당 제단 뒷면 설치용으로 약 2년에 걸쳐 제작한 것이다.
모두 14점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점 한 점이 아치형이며 라틴어와 한글로 주인공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등장인물은 맛디아, 시몬, 바돌로메, 소 야고보, 요한, 안드레, 베드로, 바울, 대 야고보, 빌립, 마태, 다대오, 바나바 등이 주요 인물로 그려져 있다.
동료 미술가 이순석(1905-1986)에 의하면 장발은 이 공간을 어떻게 장식할지 고민을 하다가,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석굴암 내벽의 원형 구조와 석가모니 본존불을 중심으로 그것을 둘러싸는 10대 제자상 입상 부조배열을 참조하여 제단화를 계획했다고 한다. 제단화의 등장인물이 그리스도를 에워싼 듯한 구도로 돼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교회 미술을 공부할 때 참고하였던 보이론(Beuron) 화풍의 영향에 기인한 것이다.
독일 베데딕트회 소속 신부 화가들이 세운 보이론 미술은 ‘침묵하고 고요하며 신비롭게 보이는 색채’를 특징으로 하는데, 『14 종도상』 역시 그런 방침에 따라 등장인물의 동작을 줄여 경건함을 더하고자 했다. 장발 역시 “부동의 세를 취함으로 일층 엄숙한 느낌을 더한다(장발, 보이론 예술, 『카톨릭 청년』 2권 2호, 1934, 52-53쪽)”면서 경건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192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에 유입된 기독교 미술은 출판물에 실린 삽화나 교재용 인쇄물이 주종을 이루던 시기이다. 이때 조지 잭의 모자이크나 장발의 『14 종도상』 제단화는 출판물에 머물렀던 기독교 미술을 실물로 제작해 교회 미술의 초석을 놓게 되었다.
조지 잭의 그리스도상과 장발의 <14 종도상>과 같은 교회 미술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추구하던 시각예술의 성격과는 거리가 있지만, 1920년대 한국 기독교 문화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만하다.
서성록 명예교수
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