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를 열었던 ‘행복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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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칼럼] 르네상스(14)-티치아노

▲티치아노가 그린 교황 바오로 3세.

▲티치아노가 그린 교황 바오로 3세.

역사적으로 천재 화가가 생전에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고로 그들은 생전에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되고, 자신이 가는 길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에 대한 깊은 좌절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깊은 고독 속에 잉태한 작품들이기 때문에, 더욱 작품의 생명력이 절절하게 되는지 모른다.

프랑스의 밀레 박물관에 가 보면 이미 유명 작가였던 밀레의 그림을 따라 스케치한 고흐의 그림들이 많다. 그러나 똑같게 그리는 대신 조금씩 다르게 그렸는데, 일례로 농부가 씨앗을 뿌리는 장면에서 밀레가 오른손으로 씨앗을 뿌리는 모습이라면 고흐는 왼손으로 씨앗을 뿌리는 모습으로 약간의 변형을 도모하였다.

이처럼 천재 예술가들은 당대에 자신의 그림이 팔리지 않아 고민하고 절망하기도 했다. 그림이 팔린다는 것은 인정받는 것을 의미하고, 그림이 팔려야 도구를 준비하고 또 생존할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고흐는 자신을 후원하는 동생 테오가 자신보다 훨씬 그림에 대한 재능이 탁월하다고도 했다.

세상에는 천재로 태어났지만 그 길을 갈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사라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티치아노(Tiziano, 1488-1526)는 베니스주에 속한, 아름다운 산이 병풍처럼 둘려 있는 돌로미티의 작은 마을 피에베 디 카도레(Pieve de Cadore)에서 태어났다. 그가 살았던 이층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관람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개천에서 용 났다고 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역시 비슷하지만, 그 이후 그만한 인물들이 돌로미티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천재가 태어나는 시대도 중요한데, 당시는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고 싶어하는 소망이 대단했던 시기였다. 고로 교황이나 황제, 공작이나 백작, 그리고 기사 계급, 성공한 상인들은 유명한 화가에게 자기 모습을 그리게 하려고 경쟁했다.

또한 그림을 주문한 이유는 성당의 개인 예배실을 성화로 장식하면 하나님께 큰 공로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고, 그런 일에 헌신할 때 장차 연옥에서 고통받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부자들은 이런 일에 앞장섰다. 사람은 누구나 부요하게 되면 권력을 얻고 싶어하고, 권력을 얻으면 영생까지 누리고 싶어한다.

또한 이런 일은 당시 글을 모르는 시민들에게 복음을 이해시키는 수단도 되었기에, 바티칸 당국은 적극적으로 응원했다. 이런 신학의 가르침은 5백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싶다.

티치아노의 아버지는 베니스에 거주하고 있는 삼촌에게 어린 그를 맡겼다. 당시 성공하고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년 후에 베니스에 개인적 공방을 차렸다. 그 후 1518년 걸작,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그렸는데, 그의 독특한 색상과 스케일, 그리고 세밀한 묘사는 사람들을 기쁘게 했고, 구매자들이 작품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게 되었다.

그는 1533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로스 5세의 법정 화가로 고용돼 그의 유명세는 전 유럽을 흔들었다. 황제는 그에게 팔라틴 백작과 황금박차 훈장을 수여했는데, 그 훈장은 가톨릭교회에 이바지한 자에게 주는 특별한 상이었다. 그는 감사한 마음으로 카를로스 5세에게 초상화를 선물하였다. 또한 1545년, 교황 바오로 3세도 그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했다.

그는 캔버스에 유화 기법을 창안하여 회화의 군주로 군림하였다. 스스로 증언하기를 “나는 일부러 당시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비슷한 그림을 그리게 되면 그의 아류로 판단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힘들어도 개척자의 길을 갈 때 진정한 창조적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의 초상화는 정신의 깊이까지 담아내는 그림으로 유명했다. 그는 색상의 톤이 반사광의 양으로 정의되는 기술을 터득했는데, 물체가 밝을수록 더 밝게 보이고 어두울수록 더 어둡게 나타나는 기술을 그림에 이용하여 3차원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생생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이미지의 기법을 도모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군주들의 화가’, 또는 ‘색채의 마술사’로 칭송했다.

또한 그는 17세기에 시작된 바로크 시대를 여는 화가로 기억되었고, 많은 화가가 그의 그림을 통해 영향을 받았다. 그가 즐겨 그린 그림들은 그에게 명성과 더불어 큰 부를 이루게 하였다. 그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90세까지 장수했고, 1576년에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예술가로서 특별한 명성과 부를 이룬 행복한 화가였다. 유명한 박물관마다 그의 그림들이 방문객들을 환영하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남길 거냐고 질문하는 표정으로.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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