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열쇠는 문해력이다! 36] 쉬운 큐티의 도구 (3) 왜 그럴까?
덮어놓고 믿는 ‘맹신’은 위험해
성경 전혀 모른단 말과 같은 뜻
근거 중심 판단, 틀릴 수 있다는
열린 태도가 회의주의적 태도
성경 묵상에도 꼭 필요한 자세
한국교회 부흥기에 교회는 성경 말씀을 무조건 믿으면 된다고 성도들에게 말해 왔다. 그렇게 부흥했지만, 당시 무조건 믿었던 성도 중 떠난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게 지금의 현실이다.
순종하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던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떠났을까? 먼저는 그들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했던 사람들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신앙의 선배들이 말과 다르게 행동을 했던 것이다. 선배들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을 보니,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성경 말씀을 무조건 믿으면, 무조건 받게 되는 복이 있다고 배웠던 까닭이다. 하지만 필수 옵션으로 알고 있던 그 ‘복(?)’을 받지 못하니까, ‘계약 파기’라고 생각했던 듯 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회를 떠난 이들이 상당한 이유다.
여러 문제점들이 있겠지만, 큐티를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원인의 본질은 성경을 대하는 자세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성경을 맹신(盲信)했기 때문이다.
맹신은 위험하다. 덮어놓고 믿는 까닭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으니, 한 가지가 틀어지면 모든 것을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젠가 게임에서 나무조각 하나를 잘 못 뽑으면 모든 게 무너지는 것과 같다.
성경 내용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맹신은 성경을 전혀 모른다는 말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모르는 성도는 믿음을 유지할 수 없다. 하나님 마음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없는 게 당연한 이치다.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맹신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을까? 성경을 읽을 때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게 믿음이라고 배워왔다.
사실 필자도 그랬다. 주일학교를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부터 다녔지만, 성경을 무조건 믿는 게 신앙생활이라고 익혀 왔던 것이다.
하지만 청년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믿음이 좋아 보이던 그들에게 성경은 암기 과목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들이 사회생활에 적응할수록 암기한 내용은 일터에서도 교회에서도 쓸모가 없게 되었다.
필자는 큐티를 하며 신앙의 친구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를 알게 됐다. 성경 말씀을 의심해서는 안 되지만, 의문을 품었어야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열두 발자국>에서 물리학자 정재승 교수는 말한다. “회의주의적 태도란 어떤 것도 쉽게 믿지 않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애쓰는 태도를 말한다.”
근거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열린 태도가 회의주의적 태도라는 것이다. 이런 자세는 성경을 묵상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자세이다.
무조건 믿는 사람이 더 위험해
열정 식으면, 믿음도 사라져서
돌다리도 두드려 보자는 자세
질문이 이해의 열쇠인 이유,
답을 길어올릴 수 있기 때문
“왜?”라는 두레박으로 하나님
마음을 내 마음에 길어 올려야
성경에서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믿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열정이 식으면, 믿음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회의주의적 태도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지나가는 자세’인 것이다.
‘회의적인 태도’라는 용어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존 파이퍼의 말을 들어보자. <존 파이퍼의 생각하라>에서 그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을 그대로 이해하려면, 질문을 해야 한다.”
그는 질문에 두 종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유순한 질문과 냉소주의적 불신앙의 질문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더 많은 질문에 답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예수님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더 깊이 알게 되고, 두 분이 세상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도 더 깊이 알게 된다. 질문이 이해의 열쇠라는 것이다.
질문이 이해의 열쇠인 이유는, 질문을 하면 답을 길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학생들에게 큐티하는 방법을 가르칠 때 꼭 알려준다.
“묵상할 때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했을까? 질문을 해라!”
그 질문은 두레박이 되어 성경의 지혜를 길어 올린다. 그 구절 뒤에 하나님의 진심을 알게 된다.
그렇다. “왜 그럴까?”는 두레박이다. 이제는 무조건 믿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왜?”라는 질문을 품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라는 두레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나의 마음에 길어 올려야, 그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왜 그럴까?” 도구로 성경 본문을 큐티하는 방법을 실제 큐티의 예를 들어 알려드리려 한다.
이석현 목사
블로그 읽고 쓴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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