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록, 한 점의 그림] 서적 『훈아진언』
메리 스크랜튼 기독교 교육 교재
유교 문화로 여성 천대 조선에
여학교 설립하고 교재도 제작
아이들 눈높이로 성경 설명해
53장 중 23장에 삽화 수록돼
유명 화가 대신 사실적 묘사
동방박사, 오병이어, 나사로
최후의 만찬, 예수 승천 등
예수님 공생애 집중적 다뤄
로마 시대 튜닉에 긴 머리
서양 기독교 도상 전형성
메리 스크랜튼 선교사(Mary F. B. Scranton, 1862-1909)는 1886년 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인 ‘이화학당’을 정동에 세웠다. 고종으로부터 ‘이화(梨花)’라는 교명과 현판을 하사받으면서, 국가로부터 공인된 교육기관이라는 신뢰를 주었다.
유교를 건국 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이 학문을 닦는 것을 ‘부도(婦道)’에 어긋나는 일이라 보았기 때문에, 여성을 위한 제도적 교육기관을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여성의 학습기회 박탈 이면에는 유교라는 강력한 정치 이념이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꿰뚫은 스크랜튼 선교사는 여성 역시 체계적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기고, 곧바로 실천에 옮겨 한국 최초의 여학교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이화학당을 설립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스크랜튼 여사는 ‘선교 보고서(1889)’에 한문을 번역할 수 있는 인력을 요청했다. “이 나라에서는 선교사들이 사역하는 데 무척 어려움을 겪습니다. 성경이나 사전, 문법서 없이 사역을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들 손에 쥐여 줄 전도지 한 장조차 없습니다(이고은, 19세기 한중 개신교 전도문서의 번역자와 번역태도 비교, 151쪽).”
스크랜튼 선교사가 머리에 그리고 있던 것은 영국의 작가 파벨 리 머티머(Favell Lee Mortimer, 1802-1878)가 쓴 『새벽 The Peep of Day(1833)』을 번역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머티머는 학교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들 눈높이에 맞춘 주일학교 교재와 아동용 세계사, 지리서, 언어 교재를 쓰기도 했는데, 이 책은 아이들에게 복음을 명확하게 전하려는 취지로 쓰인 아동용 기독교 교육 교재였다. 1833년 피카딜리의 해처드에서 출판되었을 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선교사들에 의해 세계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읽혔다.
또 이 책은 중국 각 지역에서 『訓兒眞言(훈아진언)』으로 중역될 만큼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스크랜튼 여사는 물론 영어판을 소장하고 있었지만, 저본으로 삼은 것은 미국인 샐리 홈즈(Mrs. Sallly Holmes)가 펴낸 중역본 『訓兒眞言』이다. 이 책은 산동 지방 기독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던 것이었다.
『새벽 The Peep of Day』의 주요 용어는 샐리 홈즈의 중역본을 따랐는데, 서양 선교사가 번역자였다면 영문본을 원본으로 삼아 한역본 내용이 영문본과 더 가까워야 했지만 한역본은 중역본에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크랜튼이 직접 번역에 참여했다기보다 중역본 『訓兒眞言』을 한글로 번역한 지인의 조력을 받았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학계의 중론이다.
『훈아진언』은 1887년 발간된 존 로스의 한글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전서』보다 6년 뒤인 1893년 삼문출판사에서 간행된 초기 기독교 문서이며, 이듬해인 1894년 다시 간행하였다.
책의 구성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신체가 창조된 과정과 부모가 아이를 돌보고 기르는 내용, 그리고 인간의 영혼, 천사, 마귀, 아담과 하와에 대해, 성경 속 인물과 예수의 생애를 포함하여 총 53장에 걸쳐 설명하고 있으며,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23장에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삽화는 자유로운 선의 효과를 기초로 책의 내용을 전하고 있다. 유명 화가의 것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묘사로 독자들에게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훈아진언』의 삽화는 모친이 아이를 사랑하는 장면부터 예배하러 온 박사들, 바다 위 풍랑, 가나안 혼인잔치, 오병이어 사건, 나사로의 부활,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 최후의 만찬, 예루살렘 입성, 수심에 찬 베드로, 무덤 강론, 예수 승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부분이 예수님의 공생애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훈아진언』에 등장하는 예수의 이미지는 죄인들을 만나고 먹이고 치유하며 바다를 다스리며 함께 울고 웃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림에서 눈여겨 볼 것은 예수의 이미지가 한국인들에게 그림의 형태로 처음 선보였다는 것이다. 예수의 모습은 로마 시대 튜닉을 착용하고 긴 머리를 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미술사학자 김나원은 “서양 기독교 도상의 전형성이 그대로 표현된 모습”이라고 했다.
지금이야 여러 형태의 예수 그리스도 초상을 볼 수 있지만 구한말에 그런 도상은 흔치 않았고, 삽화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알 수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런 인물 묘사는 보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알려주었다.
이 도상은 한일합방 후 김은호가 조선미술전람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주제로 출품했을 때 참고작품으로 활용된 것으로도 추측된다. 포즈는 다르지만 복장과 인물 표현 면에서 유사한 점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훈아진언』의 예수 이미지는 1920년대 김은호의 <부활 후>보다 앞서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림의 제작자는 몇 작품이 ‘Adeney’라는 것 외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미지 편집 과정 중 사인이 누락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책의 삽화들은 여러 나라에서 수정 편집 과정을 거쳐 출판되는 가운데 그림의 일부가 잘려나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삽화 제작자는 삽화를 그릴 때 유럽 고전화가들의 작품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제2장 ‘모친이 아이 사랑하는 강론’에서는 에티엔 조라의 <엄마들의 모범>(1740년대), 제29장 나사렛 강론에서는 렘브란트의 <라사로의 부활>(1636), 제38장 잔치 예비강론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1630-31), 제50장 예수 승천에서는 렘브란트의 <예수의 승천>(1636)을 각각 기준작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앞의 인용에서 보았듯이 스크랜튼 선교사가 이 책을 소개한 데는 선교의 시급성이 가장 큰 동기로 작용했다. 아동용으로 집필된 것이어서 성경을 처음으로 접한 사람이더라도 이해하기 쉽게 기술되었기 때문이다.
『훈아진언』은 1차적으로 기독교 교육 차원에서 발간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양반들로부터 ‘암클’ 또는 ‘언문’으로 천대받던 한글을 전도문서로 만들어 국민을 깨우치게 하는 문명화의 부수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것은 한글의 실용성과 우수성을 깨달은 스크랜튼과 같은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크랜튼이 설립한 이화학당과 거기서 펼친 교육활동은 우리의 굴곡진 문화와 역사 가운데 빛을 발휘했고, 대중들에게 희망의 불을 지펴주었다. 뜻하지 않은 서구 문화와의 만남은 오랜 기간 망망대해의 섬처럼 고립돼 있었던 한국인들의 의식을 일신하고 눈을 뜨게 만들었다.
서성록 명예교수(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