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협, 6월 월례 발표회 및 기도회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임석순 목사) 6월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영락교회(담임 김운성 목사)에서 ‘6.25 이후의 대한민국과 한국 기독교’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이민기 목사(쉼터교회) 사회로 최재건 박사(연세대 전 교수)와 김명섭 박사(연세대)가 각각 발표했다.
◈6.25 전쟁 후 대한민국과 한경직
한경직, 사회·정신·영적 美 가교
월남해 대한민국 건국 방향 제시
난민 구호, 교육기관 설립, 전도
큰 공 세워 영락교회와 위상 제고
민족복음화 운동으로 교회 부흥
세계적 교회와 목회자 소임 감당
먼저 최재건 박사는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과 한경직’이라는 주제로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이 전해준 자유민주주주의 사상과 그 바탕인 기독교 복음을 지키고 전파하는 일을 미증유의 6.25 전쟁 속에서도 이어왔다”며 “한경직 목사도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기를 기회 삼아 세계적인 교회이자 목회자가 되어 소임을 잘 감당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크게 성장하고 한국은 세계화됐다”고 평가했다.
최재건 박사는 “6.25의 가장 큰 여파는 한반도 역사에서 대외관계의 축을 바꾼 분기점이 된 것이었다. 대륙과 해양 세력의 교류와 충돌이 계속된 세계 역사 속에서, 한반도는 중국을 비롯한 대륙 세력과만 관계를 맺어 왔다”며 “그러다 해방과 함께 미군정, 대한민국 건국 및 6.25를 거치면서 대륙 세력인 중국 일변도의 관계에서 벗어났다. 19세기 말 기독교 복음을 전한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해양 세력인 미국과 관계를 맺은 것이 첫걸음이었다”고 전했다.
최 박사는 “이후 한국 역사는 정치·사회·경제·문화·종교·교육 등 모든 면에서 급변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적 면에서 미국에 감동하고 건국의 꿈을 성취하는 선두에 섰다면, 한경직은 사회적·정신적·영적 면에서 가교를 놓은 대표 주자였다”며 “한경직은 피난민들에게 꿈과 비전을 주면서 세계 최대 장로교회인 영락교회를 세웠고, 건국 전후와 6.25 전후 국가 체제 변혁기마다 직접 사절단 일원으로 외교활동에 참여하면서 미국 등 서구 기독교계와 연계를 맺는 선도자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경직 목사는 해방 후 소련군 등 북한 공산당이 자신을 체포하려 하자 월남해 미 군정기 영락교회를 세워 대한민국 건국 방향을 제시하고, 6.25 전후 국내외 특히 미국 조야와 교류하며 난민 구호, 교육기관 설립과 전도에 큰 공을 세워 영락교회와 더불어 위상이 제고됐다”며 “한경직은 복음을 전파하는 목회자로서 목회 지침인 전도·교육·사회봉사 활동을 6.25 중에도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최재건 박사는 “개척 초기 교회 주변 슬럼 지역부터 복음을 전했던 영락교회는 한 목사 등 43명의 목회자를 선발해 1950년 4월 공산 게릴라 준동이 심한 지리산 지역 3개 군민들에게 특별전도를 실시해 공산주의 세력의 공포 속에 있던 농민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줬다”며 “한경직의 이때 전도는 공산주의 국가를 세울 것인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울 것인가의 갈림길 속 구국 운동이었다”고 분석했다.
최 박사는 “한국교회가 가장 크게 부흥·발전한 시기는 1960-1970년대로, 이때 대규모 부흥운동으로서 ‘민족복음화 운동’이 조직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한경직 목사와 김활란 여사가 주도한 이 운동은 대한민국 복음화에 최고·최대 공헌을 했다”며 “한경직의 민족복음화 운동은 온 나라 사람들이 전도와 기도를 통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거듭난 사람으로 변화된 삶을 살도록 해, 민족 전체가 깨어나도록 하는 운동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와 함께 민족복음화에 지름길로 군 복음화를 위한 군선교 활동을 제시했다. 이는 군인들 개인 영혼 구원을 넘어, 민족복음화의 일환으로 자리잡았다. 1966년 베트남전 파병 장병 위문 방문을 통해 이러한 관심은 더 커졌다”며 “이를 통해 1970년대 들어 전군 신자화 운동과 군복음화 운동으로 확대됐다. 군 선교에 큰 역할을 한 것은 6.25 중 시작된 군목 제도 도입이었다. 군선교의 의의는 각 교파 간 연합 정신의 길을 연 것이다. 그는 군대를 ‘선교의 황금어장’으로 봤다”고 했다.
또 “한경직 목사는 이 외에도 6.25 중 피난민 구호를 위해 구제회와 구국회를 조직하고, 전세가 불리할 때는 ‘기독 의용대’ 조직도 시도했다. 부산에서는 각 교파 목회자들을 모아 ‘기독교연합전시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피난민 대책사업을 전개했다”며 “한 목사는 국내 교인들의 헌신에만 의존하지 않고, 함께 월드비전을 창립한 밥 피어스 목사 등 해외 원조들도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나누면서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대외 활동으로는 휴전 반대 호소 사절 미국 방문, 각종 국제 선교대회 참여, 고아원과 양로원을 겸한 보린원 설립, 전쟁 미망인들 위한 다비다 모자원 설립, 영락 경로원 설립, 외국 민간원조 기관들의 한국 창구 역할, 월드비전(舊 선명회)·홀트아동복지회 후원 등이 있다. 교육 활동으로는 영락교회 성경구락부 설치, 대광학원과 영락학원과 영락여자신학교 설립, 보성여학교와 오산학교와 숭의여학교 재건, 서울 숭실대 재건, 서울여대와 장신대, 아신대 이사장 등을 펼쳤다.
끝으로 최재건 박사는 “한반도에서 일어난 6.25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간 이념 대결의 전초기지로 피해 규모가 각 분야에서 너무 커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교회 피해도 극심해 파괴된 교회만 1천여 곳이고 일제 당시 제암리교회 23명의 수천 배에 달하는 집단 순교자가 발생했다”며 “앞으로도 무신론적·물질주의적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포용정책은 인도주의적으로 호응하되, 기독교 신앙과 배치되는 점은 물리치는 데 힘을 모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고 사명”이라고 정리했다.
◈6.25 이후의 대한민국과 세계
대한민국, 제3·4세계 국가들 모델
그물 만드는 법 전파 노력 필요해
‘K 정체성’ 확립 위한 연구·교육을
제5세계 북한 인권에 대한 책임도
한미상호방위조약 덕 정전 체제로
한미동맹 배후, 기독교 네트워크
김명섭 교수는 ‘6.25 이후의 대한민국 발전과 세계적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피식민지였던 우리나라는 제3세계 국가들, 그 중에서도 자원이 없는 제4세계 국가와 흡사했기에, 제1세계와의 접속을 통해 발전한 대한민국은 제3·4세계 국가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며 “단순히 물고기를 나눠주는 국가가 아니라, 6.25 이후 제1세계와의 접속을 통해 발전시켰던 ‘그물 만드는 법’을 전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그러려면 대한민국이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K-pop’처럼 각종 ‘K’를 자랑하고 있지만, 과연 그 ‘K’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스스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독립투쟁과 6.25를 겪으면서 제1세계와 손을 잡았던 대한민국이 어떻게 지켜졌고 발전해 왔는가를 ‘있었던 그대로’ 연구하고 교육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3세계 중 자연자원마저 부족한 제4세계 국가도 국제사회로부터 폐쇄돼 있진 않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자국민을 폭압적으로 억압하는 미얀마 군부정권과 같은 제5세계에 속한다”며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북한 주민들에 대해 가져야 할 대한민국의 책임은 제3·4세계보다 심각한 제5세계의 인권에 대한 세계 보편적 책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명섭 교수는 “1953년 7월 27일 이후 한반도에서는 ‘정전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한 것은 그해 10월 1일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었다. 이 둘을 기초로 한 정전 체제는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한 3중 봉쇄적 성격이었다”며 “이는 조선·중국·소련 공산군의 전쟁 재개를 봉쇄하고,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 땅을 수복하는 의무를 유예하며, 냉전 상황에서 부활할지 모를 일본의 우익전체주의를 막는 성격도 함축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20세기 한미동맹은 일본제국주의와 공산전체주의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형성된 이중적 동맹이다. 이 혈맹의 배후에는 오랫동안 형성된 개신 기독교 네트워크가 존재했다”며 “1648년 웨스트팔렌 국제체제 수립 당시부터 주권독립 사상과 밀접한 연관을 지녔던 개신 기독교 네트워크를 통해, 항일 독립투쟁과 6.25 기간 중에 형성된 미국과의 혈맹관계, 그리고 한미동맹에 기반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대한민국은 제1세계의 시간대에 접속됐다”고 전했다.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1990년 서독의 흡수통일, 1991년 소련 해체로 한국이 운명을 같이했던 제1세계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속한 제2세계에 완승을 거뒀다. 대한민국도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제1세계의 냉전 승리에 기여했고 함께 승리를 축하했다”며 “그런데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국제회의로 대표되는 제3세계가 존재한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제3세계주의는 자본주의 진영의 제1세계, 공산주의 진영의 제2세계와 달리 제3의 길을 추구하는 국제연대로,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으로 이어졌다. 과거 공산권의 제2세계는 물론, 비동맹을 표방한 제3세계 국가들 사이에서도 한국은 제1세계와 동맹을 맺은 나라로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며 “1988년 서울올림픽은 당시까지 역사상 최다 국가들이 참여한 올림픽으로서 제2·3세계 국가들이 직접 대한민국 실상을 방송으로 목격한 세계적 이벤트이자 대한민국의 ‘외교적 역전’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은 냉전 종식 직후인 1992년 중화민국(현 대만)과의 ‘비외교적 단교’와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및 베트남인민공화국(베트남)과의 수교를 통해 경제발전을 촉진시켰지만, 이로써 일찍이 아시아에서 중화민국 및 남베트남과 같은 이념을 채택했던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에 대한 도전에도 직면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표회에 앞선 기도회에서는 이일호 박사(칼빈대 전 교수) 사회로 김운성 목사가 ‘위장된 복에 속지 맙시다(출 33:1-6)’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후 박완신 장로(소망교회 원로)가 ‘한국교회를 위하여’, 조평세 박사(1776연구소 대표)가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를 인도했다. 전체 발표회는 회장 임석순 목사의 인사와 자문위원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원로)의 축도, 총무 이옥기 목사(UBF 전 대표)의 광고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