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
소중한 사람이 내 곁을 떠나게 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나게 되면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요즈음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으로 많은 민간인들에 처참한 죽음을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 선교단체는 죽음을 체험하기 위해 관 속에 들어가 보기도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죽든 그 길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주치의와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6개월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합니다. 갈 때마다 의사는 이런 말을 합니다. “요즈음 운동을 열심히 하시죠? 건강을 위해서 운동은 꼭 하셔야 합니다.” 그 말끝에 “박사님, 운동과 건강이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그리고 운동을 한다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까?” 필자의 질문에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한 후 박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운동과 생명의 연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는 의사인 저도 좌우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죽음은 각자에게 주어진 세월의 문제일 뿐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필자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습니다. 16살 때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19세 때는 수십 미터 공사장 낭떠러지에서 죽을 뻔했습니다. 21세 때는 약물 중독으로 3일간 의식불명이 되었습니다. 1987년 40일 금식 기도를 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오는 죽음을 체험했습니다. 17년 전 5분만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면 죽었을 것이라고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가족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처럼 주와 및 복음을 위해 하나님께서 덤으로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죽음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그런데도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얼마 전 노인들과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대다수 노인들은 죽음 이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음 이후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구동성으로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다가 이 땅을 떠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주변을 돌아보면 국가에서 운영하는 취미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보냅니다. 소문난 음식점에는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면서까지 한 끼의 식사를 합니다. 유명상표에 신제품이 출시되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사재기도 합니다. 노인들도 명품 옷과 장신구, 핸드백, 자동차가 인생의 자랑입니다. 해외 여행과 소문난 건강식품을 위해서 빛을 내서도 합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에게 집착하면서 살아갑니까? 그 이유는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함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런 삶은 안개와 같은 것이며, 하늘에 부활체(고전 15:35~44)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필자도 젊은 시절에는 사고 싶은 것, 누려보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충동 구매도 여러 번 해 보았습니다. 지난 과거를 뒤돌아보면서 “왜 그렇게 살았을까?” 후회를 합니다. 아내와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이런 생각을 갖고 30~40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 멋지게 신앙을 생활하고 인생을 살았을 것인데…” “목회도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도 할 수가 있을 것인데…”란 말을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노년에 고백합니다. “(전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8)” 여러분들은 이 땅에서 어떤 작품을 남기고 싶습니까? 그리고 영원나라에서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결론

필자가 약 30년 전 이0표 목사님의 세미나를 통해 평생 좌우명이 된 말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당시 자개패에 글을 새겨 지금까지 책상 앞에 놓고 보고 또 보고 있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물건 중 하나입니다. 어제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소유한 재산은 색소폰밖에 없네…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것 하나밖에 없네요.” 아들은 수년 전 “아버님의 손때가 묻은 성경은 저에게 주셔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도 손에 들고 이 땅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성도)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 31:30)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천국)에서 칭찬을 받으리라(잠 31:31)”

오래 전 고 현0애 권사님이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제게 절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전도를 해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개척교회 부흥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강대상도 없어 사과 상자에 하얀 보자기를 덮어 놓고 설교하는 교회였습니다. 당일 친구가 강대상을 헌물했습니다. 그리고 집회 끝날 입신한 후 천국을 체험했습니다. 많은 것을 보았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천사에 손에 이끌려 여기저기 보물창고들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창고마다 성도들의 명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천사에게 자신의 보물창고를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창고 문에는 자신에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넓은 창고에 아무것도 없고 구석에 며칠 전 교회에 헌물한 강대상만 있었습니다.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평생 사회사업도 많이 했고 좋은 일도 많이 했는데 왜 저 강대상밖에 없습니까?” 천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선한 일은 세상에서 한 일일 뿐 천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나를 다시 이 땅에 보내주세요” 그리고 깨어났습니다. 그 후 친구는 종로에 있는 빌딩을 비롯해 자신이 소유한 모든 재산을 다 팔아 주와 및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권사의 직분을 받고 이 땅을 떠났다는 간증이었습니다. 필자는 간증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상에서 누리는 쾌락과 향락, 부귀와 영화는 안개와 같은 것이요,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만이 최고의 작품이며,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하늘에 보험이며, 상급이라는 것을…, 여러분들도 죽음 이후를 잠시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마 6:19)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 6:20)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늘에 부유한 성도가 이 땅에서도 부유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천국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살다가 천국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마 5:3, 10; 19:3). 특히 어린아이 비유를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6세 미만을 의미합니다. 어린아이에 대한 의미는 첫째, 소유가 없습니다. 둘째, 자신의 힘으로 살지 않습니다. 셋째, 말씀에 순종합니다. 넷째, 부드럽고 나약합니다. 그리고 겸손의 상징 등등입니다.

국제국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