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목회칼럼을 쓰려고, 메모노트를 열어보는 중이었다.
늘 이러 저러한 생각의 조각들을 적어 놓고, 필요하면 언제든 살펴본다.
화면을 열고 쓰려는데,
문득 프런트 페이지에 이러저러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어 스치는데,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어 보았다.
셀린디온이란 가수의 투병 다큐 예고편에 대한 기사였다.
내가 알던 화려한 가수의 외모가 아니었다.
보첼리와 듀엣 센트럴 파크 열창으로,
보첼리의 슬픔의 색조를 뻗는 힘으로 받쳐주던 그 가수가,
무대를 휘어잡기에는 한창인 56세의 현재 나이에,
슬픈 표정의 깊은 이마 주름 골 여럿 지은, 노인 모습으로 네모 화면에 있었다.
화면엔 이렇게 멘트가 달려 있었다.
The people. I miss them. (사람<관객>들. 나는 그들이 그리워요.)
기사 중에 이런 인용 보도도 있었다.
“달릴 수 없다면 걸을 것이고, 걸을 수 없다면 기어갈 것”
“나는 멈추지 않을 것”
“매일 노력하고 있지만 투병이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022년 12월 자가면역 질환 일종인,
‘전신 근육 강직인간증후군’(Stiff-Person Syndrom. SPS)이란 병을 진단받고, 경련으로 걷기도, 노래하기 위한 성대 사용도 허락지 않는 상태 중,
무대를 향한 열망 속에 투병 투쟁하고 있는 기사였다(연합뉴스, 중앙일보 일부 인용).
벽면의 CD를 둘러보았다.
크리스마스 계절이 되면, 늘 듣는 것이 파바로티와 셀린디온이었다.
셀린의 것이 얼른 세 장 눈에 띄었고, 그중 크리스마스 CD를 걸었다.
때 아닌 캐럴 또 기도란 곡이 흐르고 있다.
노래 부를 수 없는 가수, 청중 앞에 서지 못하는 가수. 다시 서기를.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모든 사람도, 설 수 없다 슬픈 사람도, 다시 서기를.
그런 이, 보도조차 안 되는 이까지를 세워주는, 각양의 능력자 마음 따뜻한 자 교회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