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총대주교, 새 칙령서 “우크라 침공은 거룩한 시도”

강혜진 기자  eileen@chtoday.co.kr   |  

러시아를 “서방의 침략에 맞서는 수호자”로 묘사

▲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왼쪽)가 2018년 6년 임기를 새로 시작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축복한 뒤 포옹하고 있다.   ⓒOrthodox Church 유튜브

▲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왼쪽)가 2018년 6년 임기를 새로 시작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축복한 뒤 포옹하고 있다. ⓒOrthodox Church 유튜브

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가 이끄는 세계러시아인민평의회(이하 WRPC)가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거룩한 시도’로 규정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WRPC는 지난 3월 27일 발표한 칙령에서 이번 전쟁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표현하고, ‘범죄적인 키예프(키이우) 정권’과 서방의 ‘사탄주의’에 맞서 싸우는 매주 중요한 전투로 규정했다.

WRPC는 공식적으로는 러시아정교회와 분리돼 있으나, 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민간 인사로 구성돼 있다.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은 3월 27일 모스크바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에서 키릴 총대주교가 주재한 가운데 열린 시노드 회의에서 해당 칙령을 발표했다.

러시아의 입법부와 행정부에 전달된 이 문서는 2022년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룩한 러시아’의 단결을 보존하기 위한 영적 십자군”으로, 러시아를 “서방의 침략에 맞서는 수호자”로 묘사하고 있다.

또 ‘러시아 세계’ 개념을 자세히 설명하고, 현재 러시아 국경 너머의 정신적·문화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벨라루스인과 우크라이나인을 러시아의 하위 민족으로 동화할 것을 제안할뿐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의 영토를 삼위일체와 비교하고 있다.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로렌대학교 러시아 문명 교수인 앙투안 니비에르(Antoine Nivière) 박사는 프랑스의 가톨릭 일간지 라크루아(La Croix International)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서는 단순한 진술 그 이상으로 일종의 정치 프로그램을 설명한다”고 했다.

니비에르 박사는 “그 내용은 러시아 교회가 2000년에 채택한 사회적 교리와 완전히 모순된다. 이 사회적 교리는 특히 성전 개념을 거부하고, 정부가 기독교의 윤리적·신학적 원칙에 모순되는 명령을 내릴 경우 종교 지도자들이 그에 반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키릴은 이 중 어느 것도 존중하지 않는다”고 했다.

CP에 따르면, 해당 문서는 전통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이들의 러시아 망명을 더욱 지지하고, 러시아 문명의 가치를 반영하기 위한 교육 및 인도주의적 개혁을 요구한다. 러시아의 침공을 주저했던 키릴 총대주교는, 점차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비난하며 이 분쟁이 영적인 의미가 있다고 여기게 됐다. 그는 교회들에게 성스러운 러시아를 위한 기도문을 낭송하도록 명령했고, 이를 따르지 않는 성직자들을 제재했다.

CP는 “WRPC의 문서는 영적인 힘과 현세적인 힘을 혼합한 푸틴의 정치적 입장과 밀접하게 일치한다. 그것은 서구 세계주의에 대항하는 세계적 수호자로서 러시아를 지지한다. 더 나아가 서구 이데올로기를 제거하고 푸틴의 교육 정책에 부합하는 민족주의적 교육 개혁을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노스이스턴대학의 종교 및 인류학 조교수인 사라 리카디-스와츠(Sarah Riccardi-Swartz) 박사는 “키릴이 전쟁을 서구 현대성에 맞선 형이상학적인 투쟁으로 구성하고, 우크라이나를 이 갈등의 전장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카디-스와츠는 대학에서 출판하는 노스이스턴 글로벌뉴스(Northeastern Global News)와의 인터뷰에서 “키릴의 수사에는 러시아의 군사적 노력을 축복하고 분쟁에서 죽은 이들에 대한 영적 보상을 약속하는 것이 포함돼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러시아정교회 교리와 다르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정교회 내 역사적 서술이 러시아를 적그리스도에 대항하는 영적 수호자로 간주한다고 믿는다. 이는 천국에서 러시아를 위해 중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차르 니콜라스 2세의 시성식과 관련된 신앙이다. 이는 모스크바가 기독교계의 궁극적인 요새인 제3의 로마라는 개념을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전 선포는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정당화하고 도덕화한다”고 했다.

EU 투데이(EU Today)에 따르면, 저명한 사업가이자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지자인 콘스탄틴 말로페예프(Konstantin Malofeev)는 키릴 총대주교의 대리인으로서 WRPC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교리를 반영하는 그의 견해는 모스크바-제3로마’ 이데올로기와 일치하는 절대 군주제와 국가교회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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