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 강도 만나 다치고 빼앗긴 선교사…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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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선교사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8) 부활절 아침

부활절·성탄절 시즌 강도 많은 편
강도에 가방 뺏기고 맞은 선교사,
며칠 뒤 경찰에 잡힌 범인 용서해
부활, 정죄하지 않고 고쳐주는 것

▲아프리카 우간다 쿠미대학교의 모습. ⓒ이윤재 목사
▲아프리카 우간다 쿠미대학교의 모습. ⓒ이윤재 목사

우간다에 도착해서 들은 소식 중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아프리카에서는 부활절과 성탄절에 가장 강도가 많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부활절과 성탄절은 우리의 설이나 추석과 같아서 대부분 고향에 내려가는 데, 경비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 중 강도로 돌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듣고도 믿기 어려워 웃고 말았지만, 해가 갈수록 이 말은 안타깝게도 사실이었다.

두 주 전 학교에서 사역하는 P 선교사는 급한 일로 시내에 나가게 됐다. 때마침 자동차가 고장나 급하게 ‘보다 보다’를 불렀다(보다 보다는 오토바이로 손님을 태우는 우간다의 영업용 교통수단이다).

그가 보다 보다를 타고 시내 한복판에서 도착해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한 남자가 건널목에서 뛰어오더니 그의 가방을 낚아챘다고 한다. 당황한 선교사는 가방을 품에 안고 온 몸으로 저항했다.

그때 남자는 허리춤에 있던 곤봉을 꺼내 선교사의 머리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참 다행인 것은 그날 그가 며칠 전에 산 헬멧을 처음 썼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그로 인해 왼쪽 귀 뒤쪽 약 1.5cm 정도가 찢어졌고 뇌신경도 약간 다쳐 왼쪽 안면 부위 감각이 둔해졌다.

이 모든 일은 토요일 오후 우간다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났고, 말리던 사람도 범인을 잡으려는 사람도 없었을 때 순식간에 일어났다.

선교사가 쓰러진 순간 남자는 가방을 들고 사라졌고, 경찰은 뒤늦게 도착했다. 선교사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안 경찰은 그를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고, 선교사는 두 주 가까이 치료를 받았다.

그는 갑작스런 봉변으로 가방 안에 있던 휴대폰과 수첩, 지갑과 현금 약 50만 실링(약 18만 원)을 잃었다. 그러나 더 크게 잃은 것은 몸의 상처였다. 그는 머리에 난 상처 때문에 CT 촬영을 했고 다리와 허리의 찰과상 때문에 온몸을 붕대로 감고 찢어진 눈 주위를 몇 바늘 꿰메야 했다.

그렇게 두 주가 지나가던 토요일, 경찰로부터 범인이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 때마침 선교사를 위로하려고 병원을 방문하고 있던 나도 그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날 선교사가 움직이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가기로 경찰과 약속한 후, 나는 다음 날(부활절) 아침 일찍 선교사와 함께 경찰서로 갔다.

나는 범인이 어떻게 잡혔는지 잘 모른다. 아마 그날 지나가던 행인들이 경찰에 신고하자 주변 CCTV를 통해 신원을 확인한 경찰이 그를 붙잡았는지 모른다. 그것은 우간다의 열악한 치안 상황으로 볼 때 경이로운 일이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범인은 어두운 얼굴로 경찰 앞에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첫인상이 강도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량하게 보이는 사람이 그날따라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아마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부활절에 고향으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향은 가야겠는데 돈은 없고, 거리를 배회하다 우연히 한 외국인이 가방을 메고 신호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가 가방을 낚아채는 순간 교통신호가 들어온다면, 그야말로 쉽게 한 건 하고 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참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경찰이 물었다. “한국인이신가요? 무엇 하는 분들이세요?” 우리가 말했다. “선교사예요”. 경찰이 갑자기 자세를 바로 고쳐 앉더니 “아, 선교사들이세요?” 그로 볼 때 그도 역시 크리스천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물었다. “이 사람이 맞아요?” 선교사가 범인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에게 한참 이것저것 물어본 경찰이 또 선교사에게 물었다. “이 사람,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지만 당신이 용서하면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겠다는데, 어때요?” 그런 경찰을 만난 것은 그에게 큰 기적이었다. 선교사가 조용히 말했다. “용서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을 듣고 나도 놀랐다. 이유 없이 맞고 빼앗기고도 용서하다니. 경찰은 여러 번 선교사의 의지를 확인하더니, 알았다면서 며칠 구류 후 내보내겠다고 했다. 선교사의 말에 감동받아 나도 도울 일이 있나 주머니를 뒤졌다. 지갑에 있는 돈을 꺼내 그에게 쥐여 주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며칠을 못 먹었는지 그의 파리한 손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름과 주소를 쓰고 경찰서를 나서는데, 마침 동쪽에서 해가 떠올랐다. 아, 오늘은 부활절 아침이었다. 우리는 왜 이 땅에 살고 부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부활은
동의하지 않으나 용납하는 것,
Not approved, but accepted
내가 동의하지 않지만 받아들인 사람은 세상에 몇이나 될까?

부활은 정죄하지 않은 채 고쳐주는 것,
Not condemned, but correct
내가 정죄하지 않으면서 말없이 고쳐준 사람은 세상에 몇이나 될까?

부활은
붙잡아 두지 않으면서 스스로 가게 하는 사랑
Not holding on, but letting go
내가 붙잡을 수 있으나 붙잡지 않고 스스로 가게 한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오늘도 우리가 만난 사람을 용서하고 그의 파리한 손을 잡아줄 수 있다면, 그날이 언제든 부활절 아침이 아닐까? 아프리카의 한 사람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또 죄인인 나를 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부활은 그리스도가 죽고 다시 사신 날이다. 동시에 우리가 살고 다시 죽은 날이다(존 스토트).”

▲이윤재 선교사 부부.
▲이윤재 선교사 부부.

이윤재 선교사
우간다 쿠미대학 신학부 학장
Grace Mission International 디렉터
분당 한신교회 전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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