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 돌풍의 ‘숨은 주역’ 이호 목사 인터뷰
나라에 헌신하고 쫓겨난 대통령… 미안함에 영화 제작
BTS 성공 뒤엔 ‘아미’, <건국전쟁> 성공 뒤엔 동지회
12년 전 첫 이승만 강의할 땐 진짜 맞아 죽는 분위기
이 세상의 민심이라는 강물이 어떻게 흐르는지 체험
영화 <건국전쟁>이 무수한 고정관념과 비관적 전망들을 깨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우파’, ‘다큐’, 그리고 무엇보다 ‘이승만’. 대한민국 사회, 특히 좌편향된 문화예술계에서 도저히 인기가 없을 것만 같았던, 아니 오히려 거센 비난과 반발까지도 예상됐던 이 키워드들을 모두 품고도, 이 영화는 연이은 박수갈채와 함께 “우리가 이승만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대각성까지도 이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결과의 숨은 주역 중에는 위대한 정치가인 동시에 신앙인인 이승만을 지난 12년 동안 재조명해 온 이호 목사(거룩한대한민국네트워크 대표)가 있다.
이 영화를 구상하던 김덕영 감독이 이호 목사의 책을 접한 뒤 자문을 받기 위해 이 목사를 찾아오면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고,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더 의기투합한 이들은 이후 구상, 모금, 제작, 개봉 등 모든 과정을 함께하게 됐다. 영화 중간중간 등장해 이승만에 대한 소신과 진실도 직접 전했다.
15일 금란교회 스튜디오에서 크리스천투데이와 인터뷰한 이호 목사는 영화 흥행에 대한 축하 인사에 멋쩍게 웃으면서도, ‘이승만 전도사’로서 보람과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12년 전 처음 이승만을 강의할 때는 진짜 맞아 죽는 분위기였는데, 12년 동안 이렇게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세상의 흐름이 이렇게 바뀌 것을 보며 ‘이 넓은 세상의 민심이라는 강물이 어떻게 흐르고 출렁이는지’를 체험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한 기회였다”고 고백했다. 다음은 이 목사와의 일문일답.
-영화 <건국전쟁> 제작 동기는 무엇인가?
“김덕영 감독에게 들은 제작 동기 중 제일 마음에 남은 한 가지를 소개하겠다. 김 감독은 ‘우리나라 건국 대통령이 정말 모든 것을 바쳐서 헌신했는데, 마지막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하와이로 쫓겨가서 참 머나먼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쓸쓸하게 생을 마쳤다. 그래서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목사님은 어떻게 이 영화에 관여하게 됐고,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김 감독이 영화를 처음 구상하면서 이승만과 관련된 책을 두루두루 읽었는데, 그 중 제 책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제가 목사인 줄도 몰랐다. 그 내용이 뭔가 본인의 구상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던 모양인지, 저를 찾아와서 함께 영화 제작을 하자고 제안했고, 그래서 구상, 모금, 제작, 개봉 등 모든 과정을 함께하게 됐다. 제게도 큰 기쁨이었고, 아주 뜻깊은 경험이었다.”
-제작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소개해 달라.
“당연히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았다. 김덕영 감독이 뉴욕에 가서 이승만 대통령 관련 시설을 방문하려 했다. 그런데 워낙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모든 유적지와 기념관들이 홀대를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가 뉴욕에서 한국에 있던 제게 무작정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는데, 알고 보니 그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교회가 몇 년 전 제가 부흥회를 인도했던 곳이었고, 담당 목사와 관계자들이 아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담당 목사에게 연락했는데, 그가 그때 루마니아에 있었다. 그래서 마음 졸이며 어렵게 어렵게 연락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허락을 받아, 뉴욕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간신히 촬영할 수 있었다.
또 영화를 만들고 지난해 11월 30일 금란교회에서 첫 번째 시사회를 열었는데, 그때 한국영화학회 회장과 영화진흥협회 협회장을 지낸 조희문 감독이 칭찬과 함께 ‘후원은 말이 아닌 돈으로 하는 것’이라는 덕담을 했다. 그에 도전을 받은 참석자들 25명이 후원회를 조직했고, 그 이름을 ‘동지회’로 정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독립운동하면서 하와이에서 만든 단체가 ‘동지회’였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애국심을 기리고 계승하자는 ‘건국전쟁 동지회’는 약 두 달 반 만에 474명이 됐고, 그들이 지금껏 곳곳에 플래카드를 만들어 붙이고, 본인이 다니는 교회를 설득해서 전 교인 관람을 시키고, 본인이 활동하는 단체 회원들에게 카톡을 돌리고, 좌파들이 공격하면 또 떼로 몰려가서 맞서고, 모금도 하는 등 맹활약했다. ‘직장생활도 안 하고 여기에 매달려 있나’ 싶을 만큼 애국심과 열정이 대단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기독교를 내세우고 한 일도 아닌데, 알게 모르게 기독교인들이 ‘동지회’에 모여 참 눈물겹게 헌신해 줬다. 단톡방에 좋은 소식이 올라오면 다들 ‘여호와 닛시’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습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제가 단톡방에 이런 이야기를 썼다. ‘BTS가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비결. 첫째는 뛰어난 작품 더하기, BTS 아미(BTS 공식 팬덤). 건국전쟁이 예상을 깨고 지금 흥행을 거두는 비결. 김덕영 감독의 뛰어난 작품, 더하기 건국전쟁 동지회의 희생과 헌신.’”
-이승만의 삶과 정치는 기독교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인데, 이번 영화에서 그에 대한 언급이 많이 빠져 아쉽다.
“신앙적 부분이 전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촬영을 하려고 자료를 모으다 보니, 첫째는 이승만 대통령이 90년 동안 너무나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고 영광과 굴욕이 교차했기에 영화로 담아야 될 내용이 너무 많았다. 사실은 영화는 100분짜리였지만 그것을 위해 수만 분 정도를 촬영했을 것이다.
둘째는 그 많은 내용 가운데 기독교하고 관련되지 않은 게 별로 없어서, 처음 컨셉은 ‘이승만에 대한 왜곡과 오해가 너무 많으니 이를 바로잡자’는 것이었는데 거기다가 기독교까지 넣으려니까 스토리 라인이 조금 복잡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첫 작품이니까 오해를 불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다음에 기독교적인 내용만 따로 모아 만들기로 했다.”
-영화가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데 소감은.
“지난해 작고한 이인수 박사(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는 평생 나라를 위해서 모든 걸 바친 아버지가 ‘반역자, 매국노, 친일파, 독재자, 분단의 원흉’ 등 온갖 인간이 뒤집어 쓸 수 있는 오욕이라는 오욕은 다 뒤집어 쓰니까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고통을 토로하자 프란체스카 여사(이승만 대통령의 부인)가 ‘나폴레옹이 죽었을 때 프랑스 사람들이 그에게 온갖 욕을 다 했는데, 그가 영웅으로 재평가받기까지 100년이 걸렸다’며 ‘우리 국민들은 현명하기 때문에, 네 아버지가 복권되는 데는 100년이 안 걸릴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정말 대한민국의 영부인, 여장부답다. 이승만 대통령이 서거하고 59년 만에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이렇게 흥행을 일으키면서 재조명·재평가되고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우리 국민의 현명함을 믿어 줬는데, 역시 그 믿음대로 이루어졌다’ 이런 마음이 제일 먼저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2012년 2월에 처음으로 금란교회에서 이승만 강의를 했다. 목사가 무슨 이승만을 얘기하나, 제가 생각해도 참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이상한 짓을 제가 그때 했는데, 그때 이후로 하나님이 길을 계속 열어 주셔서 오랫동안 이승만을 강의하는 그런 강사가 됐다. 제가 처음 강의하고 12년 만에 이승만 대통령이 재조명되는 이런 영화가 나와서 정말 감사하다. 12년 전에 처음 이승만을 강의할 때는 진짜 맞아 죽는 분위기였다. 돌 맞아 죽을 만큼 위험한 일도 실제로 많이 겪기도 했다. ‘12년 동안 국민들의 인식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세상의 흐름이 이렇게 바뀌는구나’, 교회에 처박혀 있는 저 같은 목사로서는 이 넓은 세상의 민심이라는 강물이 어떻게 흐르고 어떻게 출렁이는지를 체험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한 기회였다.
이승만을 강의한다는 이유로 사실 과분한 존경을 받기도 했고, 또 격렬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존경도 조금 지나치셨던 것 같고, 제가 그만한 인물이 아닌데. 또 비난도 지나쳤던 것 같고, 제가 뭐 그렇게 죽일 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과도한 존경과 격렬한 비난이 교차하면서 제 나름대로는 고생이라면 고생을 했는데, 그동안 제가 고생한 것이 헛되지 않았고,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구나,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이승만, 적들에겐 온갖 저주 받고 수혜자들에겐 잊혀
제작 당시 우파 내에서도 냉소적·비협조적 반응 많아
상영관·포털서 차별받고 고생했는데 ‘윤 정권 특혜’?
하나님 은혜로 세워진 대한민국, ‘현대사 재평가’ 필요
기독교인들이 자부심 갖고 주변에 진실 알려 주기를
-그동안 이승만에 대한 오해가 많았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이승만의 헌신과 투쟁을 통해 자유 대한민국이 건국도 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과 번영을 누렸다. 그런데 이승만의 터전 위에 성공의 집을 지은 사람들은 본인이 노력하고 잘나서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이승만이라는 거대한 터전이 있다는 것을 많이 잊었다.
해방을 맞이했을 때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단체 가운데 회원 수가 제일 많았던 것이 남로당이었다. 누가 봐도 공산화될 수밖에 없던 나라였다. 미국 CIA 보고서도 실제로 그같이 예측했다. 누가 봐도 공산화로 가는 건데 이승만 때문에 그것이 막혔으니, 그 공산화 쪽 흐름에 있었던 이들은 이승만 때문에 패가망신하고 그 자식들은 빨갱이 가족이라고 정말 얼마나 가슴에 한이 맺혔겠나. 저는 공산주의 노선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흐름에 섰던 사람들의 고생, 처절함, 고통, 그건 인간으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이승만 때문에 고통을 겪은 이들은 한국 현대사에 한풀이를 해서 저주할 수 있는 온갖 저주는 이승만에게 다 퍼부었다. 또 하나의 세력은 한국 현대사에 빼 놓을 수 없는 요인인 북한이다. 북한이 그 모든 힘과 에너지를 기울여서 이승만을 왜곡하고 제거했다.
그러니 한 맺힌 사람들은 한풀이를 하고 저주를 퍼붓고, 우리의 대적인 북한은 이승만을 왜곡하고 지워 버렸는데, 그 이승만을 지키고 감사해야 될 사람들은 그를 잊어 버렸다. 그러니까 싸워야 될 사람이 싸우지 않고 지켜야 될 사람이 지키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존경받아야 할 인물이 이렇게 폄하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이번 영화가 이승만을 지나치게 미화만 했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지적이다. 그런데 영화의 컨셉이 ‘이승만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자’인데, 왜곡된 것은 아무래도 과(過)에 치우친 거니까 그걸 바로잡으려면 공(功)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 엄밀하게 따져 보면 공을 충분히 말하지 않았다. 공은 영화에서보다 훨씬 크고 감동적인 게 많다. 또 과에 대해서 왜곡을 바로잡다 보니까 100분이 다 갔다. 다음에 혹시 기회가 되면 공과 과에 대해서 훨씬 심도 있게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예술계가 많이 좌편향돼 있는데, 그 때문에 힘들진 않았나.
“끊임없이 어려웠고, 지금도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단 처음에 제작할 때 후원금이 모이지 않았다. <문재인입니다>, <그대가 조국>, <길 위에 김대중>, 이런 작품들은 후원금들을 쌓아 놓고 시작하는데, 이 영화는 후원금도 없이 발품을 팔면서 영화 제작비를 마련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우리 우파 쪽에서, 또 이승만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조차도 ‘그 정도 예산 갖고 이승만 다큐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독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인터뷰해 줄 수 없다’, ‘이승만에 대한 왜곡을 영화로 바로잡는다? 불가능한 소리다. 꿈 깨라’ 등, 굉장히 실망스러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쨌든 그런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면 개봉을 해야 되는데, 영화관 체인에서 1월 22일 날 상영관을 10개 준다고 했다. 그곳에서 <길 위에 김대중>은 100개를 준다고 했다. <길 위에 김대중>보다 10분의 1로 시작했다. 그래서 ‘건국전쟁 동지회’에서 십시일반 모금하고, 극장 측이랑 거의 전쟁을 방불하게 하는 협상을 벌여서 결국은 86개의 상영관을 확보하게 됐다.
그런데 그 다음에 또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건국전쟁> 영화 포스터를 올려 주지 않았다. <건국전쟁> 개봉하자마자 순위가 3, 4위였는데, 20위인 영화도 포스터가 있는데 이상하게 우리만 없었다. ‘참, 영화 포스터 한 장 싣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 다른 곳은 다 자동으로 되는데’ 그래서 또 거기다 항의 전화를 하고 댓글을 달고, 어쨌든 나중에 포스터가 실렸다.
그렇게 온갖 고생을 해서 흥행을 했더니, 현직 국회의원이 이를 두고 윤석열 정권이 개입해서 특혜로 밀어 줬다고 주장했다. 아니, 개봉 열흘 전에 상영관 수가 <길 위에 김대중>은 100개, <건국전쟁>은 10개였다. 이게 무슨 대통령 특혜인가? 오늘도 계속해서 시비가 붙고,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이승만의 온전한 재평가를 위해 후속 계획이 있나.
“제가 워낙 계획이나 꿈 같은 것을 잘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냥 제 마음속에만 있던 생각을 천기누설을 하자면, 제가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기도하고 꿈꿔 왔던 것은, ‘이승만 재평가’를 넘어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재평가’다. 5천 년 우상숭배하던 나라가 예수님을 딱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나라로 건국했더니, 5천 년 동안 없었던 일이 마구마구 벌어졌기 때문이다. 제가 꼭 한국인이어서가 아니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기독교 역사적으로 굉장히 의미가 있는 나라다. 제가 대한민국을 찬양하자는 게 아니고, 물론 나라를 사랑하지만, 그 나라를 있게 하신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제가 이승만을 강의하는 이유도, 그를 알면 그를 변화시킨 하나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그 하나님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결국 마음을 열고 기독교인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많은 이들이 제 강연을 듣고 ‘대한민국에서 애국자가 되려면 기독교인이 돼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차원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 세워진 나라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걸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이렇게 현실의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저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 역사 518년을 기록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영상 시대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현대사를 오롯이 담은, 잘한 건 잘했다, 그러고 못한 건 못했다고 하는, 단,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런 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공과 과를 그대로 담은 영상실록이 있어야 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고, 김덕영 감독에게 그 작업을 한번 해 보자고 제안해 놓은 상태다.”
-기독교계에서 단체 관람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
“기독교 정신은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이었고, 기독교인들은 대한민국 건국의 주인공들이었다. 또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아낸 세력도 기독교였고, 잿더미와 시체 더미의 폐허에서 이 부강한 나라, 세계 7대 무역 국가, 5대 공업 국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역들,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살펴 보면, 역시 기독교가 주류였고 대세였다. 기독교 신앙으로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다’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대한민국 건국의 기독교적 진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그런 애국자들이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