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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6장 강해

요절: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10절)

신부는 게으름의 죄로 신랑과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회개하고 신랑을 찾았습니다. 신부가 신랑을 만나자, 신랑은 신부를 다시 사랑합니다. 신부는 달덩이같이 해와 같이 빛이 납니다. 죄로 인하여 그의 내면은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신랑의 사랑을 받고 나니, 얼굴이 달과 같이 밝아지고 해와 같이 빛났습니다.

1.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1-3절)

예루살렘 여자들은 슬람미 여인을 여자들 가운데 가장 어여쁜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여자들은 슬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지,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지 신부와 함께 찾아보자고 합니다.

이스라엘 여인들은 신랑을 찾았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동산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백합화를 꺾고 있었습니다.

신부는 신랑을 만났습니다. 신부와 신랑은 이전의 소원한 관계가 사라지고, 깊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신부는 사랑하는 신랑에게 속하였고, 신랑은 사랑하는 신부에게 속하였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신랑은 신부와 사랑의 관계성이 회복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신랑은 신부를 보고 ‘너는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슬람미 여인은 신랑과 소중한 존재로 회복됐습니다. 그들은 과거 사랑의 온도가 50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100도로 회복됐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사랑의 온도를 100도로 유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2.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다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으니 쌍태를 가졌으며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4-7절)

신랑이 다시 찾아온 신부의 허물을 용서하고 신부를 칭찬합니다. 신랑이 자신을 찾아온 신부를 용납하고 사랑합니다. 나에게 상처주는 사람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다. 내 생활에 중요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사랑하고 그 허물을 용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악되더라도 회개한 우리를 용납해 주십니다. 죄를 용납하면 더 깊이 있는 아름다운 관계로 나갑니다. 사랑에는 태도와 결심과 실행이 중요합니다. 갈등을 회피하지 말고 성숙의 계기로 삼아야합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위기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기나 갈등을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과 갈등이 왔을 때, 끝까지 해결하고자 해야 합니다.

사랑의 위기는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실수를 새로운 교육 기회로 삼았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사랑 때문에 입은 상처는 더 큰 사랑으로 덮어야 합니다.

신랑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온 사랑하는 신부를 구체적으로 칭찬합니다. 이전의 칭찬과 다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고기 잡으러간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신부는 디르샤 같이 어여쁩니다. 다르샤는 아름다움을 상징했던 가나안의 성읍이었습니다. 디르사는 세겜에서 북동쪽으로 약 9km 떨어진 곳이며 이름의 뜻은 ‘기쁨, 아름다움’입니다. 여로보암에 의해 세겜, 부느엘에 이어 북왕국 수도가 되었습니다.

신부는 예루살렘 같이 곱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당신은 금강산 같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신부는 깃발로 세운 군대같이 당당합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달라고 합니다. 신부는 눈이 부시어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신부의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내려오는 염소 떼와 같이 늘어졌습니다. 이(齒牙)는 목욕하고 올라오는 암양떼같이 쌍태를 가졌습니다.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듯이 이가 하나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너울 속의 신부의 뺨은 석류한 쪽과 같이 붉습니다.

3. 내 완전한 자는 너 하나뿐이다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8-10절)

솔로몬은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입니다. 시녀가 무수하게 많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사랑하는 비둘기 같이 순결한 여인은 오직 하나입니다. 완전한 자는 오직 슬람미 여인 하나뿐입니다. 너는 나의 유일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더 큰 사랑은 표현이 중요합니다. 내가 가진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다 잊어버립니다. 이 시대의 위기는 언어의 위기입니다. 요즘 위기는 존경하는 말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 중 하나가 아닌, 오직 유일한 사람입니다.

신부는 그의 어머니의 외동딸입니다. 그 낳은 어머니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입니다.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의 후궁도 그를 칭찬하였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도 우리를 보시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구나! 감탄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구나!’ 하시며 사랑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더 큰 사랑으로 허물을 덮어주시고, 더 큰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를 맞아 주십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나에게 최고의 존재로 여겨야 합니다.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왔을 때 사랑으로 영접해 주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탕자를 최고의 존재로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신랑이 보기에 신부는 샛별처럼 반짝이는 눈, 보름달같이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고, 햇볕처럼 맑습니다. 사랑을 받으면 이렇게 아름다워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이 이런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아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에 모든 어둠이 사라져야 합니다. 환하게 빛이 나야 합니다.

신부는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 여자입니다. 신랑의 사랑을 받을 때 신부의 내면에 있는 모든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그 달과 해와 같이 밝아졌습니다. 소심함이 없어지고 당당해졌습니다.

4.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이르다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11-12절)

때는 바야흐로 봄입니다. 신랑은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내려갔습니다.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기 위해,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순이 나고 꽃이 핀 것은 성숙한 것을 말합니다.

부지중에 백성을 사랑하는 왕의 마음이, 왕이 귀하게 여기는 백성에게로 수레가 이르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면 그 사람을 찾아갑니다. 사랑할 때 사랑받는 사람은 성숙하고 성장합니다. 신랑은 신부를 사랑하자 신부가 성숙하고 성장하는 것을 봅니다.

5. 돌아오고 돌아오라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13절)

신랑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에게 돌아오고 돌아오라고 합니다. 신랑이 술람미 여인을 보게 하라고 합니다. 신랑은 신부가 돌아오기만 하면 여인의 모든 것을 용납하고 받아들입니다. 아버지가 탕자를 받아주듯이 받아주십니다. 신부가 지금 돌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못이 있으면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의 잘못을 지어도 주님은 용납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어떤 잘못이 있어도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오기를 바라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이 있어도 회개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어떤 잘못이 있어도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탕자를 맞이하듯이 우리를 환영해 주십니다. 그것이 복음이고 은혜입니다.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여인은 신랑에게 돌아와서 춤을 춥니다. 두 줄로 돌아가면서 춤을 춥니다. 마하나임은 두 줄을 말합니다. 두 줄로 돌아가는 무희들 가운데 춤추는 술람미 아가씨를 보니 어떠하냐고 질문합니다. 여인은 받아주는 사랑이 너무 기뻐서 춤을 춥니다.

오요한 시편 역경 속에 피어나는 찬양의 꽃
▲오요한 목사.
오요한 목사

천안 UBF(말씀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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