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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이사야 43:18-19)”.

밝아오는 2024년 새해 ‘갑진년(甲辰年)’은 용띠 해입니다. 용의 성품을 지닌 분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지도자가 될 성격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예체능에 탁월하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이 하던 일은 끝장을 보는 타입이라 피곤한 보스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2024년은 육십간지 41번째인 ‘갑진년’으로, 청룡(靑龍)의 해라고 합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꿈과 기대가 한껏 달아오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하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부푼 기대로 1월 1일 새해 첫날이면 어김없이 이른 새벽부터 해맞이를 보려고 저마다 정성을 들이며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행여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건강은 괜찮을까? 이 밖에 수많은 삶의 두려움과 걱정들이 우리를 때때로 불안하게 만들고, 두려움과 불안감 때문에 점을 보러 가거나 잠시나마 하나님을 잊고 다른 길로 빠질 때도 있습니다.

더구나 세상 사람들과 같이 미래를 알 수 없어 두려운 나머지 점을 보러가는 중직자들도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나님께 매달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기도하려는 마음은 없고, 불안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점을 보러가는 안타까운 현상에 딱하고 애가 마릅니다.

이 모두는 천국과 지옥이 빠진 믿음 생활 때문이 아닐까요? 지옥이 빠진 기독교, 지옥이 빠진 복음 설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지옥이 빠진 세상의 모든 이론 지식 또한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옥을 빼면, 이 세상 아무런 논리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교회가 지옥에 대해 무관심하며 지옥을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지옥을 인정하지만, 그들의 가슴에 지옥은 먼 곳에 있고, 심지어 아예 지옥이 없다는 종교인들도 많아 실로 안타깝습니다.

특히 교회 집사, 권사, 혹은 장로 직분을 섬기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있지만, 지옥과 심판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불신하며, 혹 관심을 갖더라도 ‘나는 믿고 있으니 천국에 가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 중에는 중직자인 장로와 목사들도 있습니다.

지옥과 천국을 믿지 못하니, 교인들이 세상에서 거짓말과 시기, 질투와 모함, 이웃에 상처 주기, 심지어 성추행을 비롯해 살인까지 일삼는 사건들을 벌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하고 담대하게 외쳐야 함에도, 오늘날 설교에는 늘 사람들 비위에 맞는 복음을 전하다 보니 기독교는 초대교회 정신을 망각한 채, 세상의 논리와 이념에 함몰돼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해, 기독교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로마서 2:16)”.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심판하시는 그날, 하나님의 진리가 인간의 전 생애를 비추어 모든 비밀을 밝혀내 있는 그대로 심판하시는 최후의 심판날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성경에만 있으니, 성경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말씀으로 거듭남을 받아야만 오롯이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구원자요 피난처 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대신해 심판을 받아주셨으니, 곧 종교인들이나 주님을 거부하는 이들이 받아야 할 죄와 벌을 대신 받으신 사랑입니다.

본문 말씀에 “옛적 일을 기억하라”고 돼 있어 두 구절 사이 모순이 있는 듯 하지만, 그 옛날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지도 생각하지도 말라는 것은 옛 출애굽 때 놀라운 사건에 집착해 향수를 느끼다가 현실을 절망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그때처럼 구원을 베푸실 것이니, 소망으로 참고 인내하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과거의 구원과 미래에 베푸실 구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기 백성들이 지금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권면하십니다. 과거의 구원은 출애굽과 홍해 사건이며, 미래의 구원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장차 해방하실 일입니다. 이 같은 구원 사건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 구원 사역의 예표들입니다.

지난 주 필자의 칼럼 ‘성경 말씀마저 가감한 교황의 동성 커플 축복 승인’에서 언급했던, 동성 커플 축복 승인 사건은 2023년 연말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입니다. 이는 좌파 출신 같은 교황이 하나님의 절대 권력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창작품인 아담과 하와를 속이게 한 뱀 같은 사탄이 한 짓으로 자칫 오해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사탄은 가룟 유다를 속여 예수님을 은 30에 팔도록 했습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장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를 죽게 했던 그 시절 가룟 유다가 아니라, 이 시대의 가룟 유다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정말 우려스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깊이 회개해 용서받은 뒤, 교인들 앞에서 잘못된 발언에 용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인들까지 심판대 앞에서 이를 갈며 후회하는 날이 분명 올 것입니다.

사회를 어지럽히고 교인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며, 가톨릭 자체에 상처를 주는 정의 구현사제단도 이 때문에 추방을 못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생깁니다.

아기 예수님을 탄생케 한 한 여인의 두려움을 목격합니다. “마리아여 기뻐하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는 천사의 말씀에 마리아는 놀랐다고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이 놀라움은 분명 두려움을 동반한 놀라움일 것입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천사의 말이 이를 정확히 지적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야.” 이 두려움은 마리아만 겪는 것이 아니라, 요셉에게도 존재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분부하셨지만, 요셉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다가오신다면, 우리도 얼마나 불안하고 두렵겠습니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1장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두려움을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이들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천사의 말에 대한 마리아의 대답을 다시 되새깁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분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 삶 속에서 마주치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즉시 하나님께 의탁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 힘으로 아등바등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는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무수히 일어납니다. 참 많은 어려움들도 밀려옵니다. 불안함과 두려움, 공포를 안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분들이 가진 어려움들이 주님의 힘으로 극복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해도, 오롯이 믿음으로 잘 극복하여 메시아를 탄생케 한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와 요셉처럼, 아름다운 믿음과 용기, 신실함으로 세상을 이겨나가는 멋진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말씀은 연말에 자주 회자됩니다. ‘헛되고 헛되니’란 최상급을 나타내는 히브리식 표현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무의미함을 강조하는 내용이며, 모든 것이 땅에서 하는 사람들의 모든 활동과 수고를 뜻하기도 합니다.

‘헛되도다’는 전도서의 중심 단어입니다. ‘헛되도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벨’은 호흡이나 미풍 혹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그 무엇을 뜻합니다. 하지만 전도서의 ‘헛됨’은 단순히 인간의 공허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 자신과 그의 모든 것이 무의미함을 뜻하며, 여기서 ‘모든 것’에는 자연과 인간의 모든 법칙까지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옛 시대의 잘못된 사고방식이나 언어 및 행동으로 이어진 잘못들을, 이제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방법대로 전환해 살아갈 것임을 다짐하며, 2024년 새해를 기쁘고 즐겁게 맞이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