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
▲자승 전 총무원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는 뉴스 화면. ⓒKBS 캡쳐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마가복음 13:37)”.

이제 2023년도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11월 달력을 찢으면서 마음 한 구석 못내 아쉬움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금년 초 시작하고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바라보며, 그래도 아직 한 달의 세월을 붙들 수 있어 다소 위로가 되며, 여태 다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마무리를 해야 할 귀중한 달이기도 합니다.

특히 12월에는 3일 주일부터 24일까지 4주간의 대림절을 맞이하며, 대림절 끝 다음 날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일인 성탄절이 있어 매우 기쁘고 즐거운 달이며, 새로운 2024년을 맞이해야 할 귀중한 달이기도 합니다.

본문 말씀 중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는 뜻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현재와 미래 모두에 대해 깨어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필연적으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열두 제자 및 유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주관하시고 이를 실천하시며, 성경과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늘 상관하시며 함께하실 것입니다.

오늘 친구로부터 전해온 문자 메시지를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목은 ‘망구(望九)의 언덕을 바라보며’. “얼마 전 경북 청송에 사는 88세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는 83세의 아내를 승용차에 태우고, 마을 저수지에 차를 몰아 동반 자살을 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분은 경북 최대 ‘사과농’이고 같이 사는 자식도 곁에 있었다. 그런 그가 왜 자살을 했을까? 만약 자신이 아내보다 먼저 죽으면 병든 아내의 수발을 자식에게 맡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는 유서에 ‘미안하다. 너무 힘이 든다.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섭섭하다. 내가 죽고 나면 너희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가야 하니, 내가 운전할 수 있을 때 같이 가기로 했다’고 적혀있었다. 마지막으로 자식과 손자들 이름을 적으며 작별 인사를 한 할아버지는 자살만이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는 하루 이틀 생각하고 내린 판단은 아닐 것이다. 당시 나는 노부부의 비극의 뉴스를 들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결코 남의 일로만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자를 받으며 저 역시 마음 한 구석 안타까움과 서글픔이 자리하여 온종일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시대를 한탄하며,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제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선택은 신앙적으로 봤을 때 결코 잘한 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9-3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앗사리온은 로마의 소액 동전 단위입니다. 이 부분은 헐값에 팔리는 참새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깃들여 있는데, 하물며 사역자들을 내버려두시겠느냐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낱낱이 다 세실 정도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 핍박을 받더라도 하나님께서 살피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안심하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사람의 목숨은 하나님의 권한이시기에 사람이 함부로 판단하거나 해석하여 화를 좌초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부인의 병 때문에 수발을 걱정한 나머지 잘못된 판단으로 부인까지 살인하는 범죄를 저질렀고, 자식들에게는 깊은 상처를 주었으며, 자식들은 아마 평생 죄책감에 사로잡혀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죽는다면’이라는 잘못된 판단, 그리고 자신이 보살피지 않으면 보살필 사람이 없기에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만일 자신이 먼저 죽는다면, 나머지 몫은 자녀들이 보호하거나 보호시설 또는 종교시설, 그리고 국가 담당기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자신이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제공한 실로 안타까운 비극의 사건입니다.

현 시대는 초고령화로 진입해 향후 이러한 극단적 선택이 또 일어날 수 있고, 독거노인이나 외로운 노인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 교회가 나서서 노인들 삶의 문제에 직접 접근해, 복음으로 시작해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며, 최선을 다해 그들이 감동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그들에게 베풀며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불교계 원로인 자승 전 총무원장의 안타까운 소식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개인적 일탈을 ‘소신공양’으로 포장한 것은, 한국 불교 타락의 정점으로 보입니다. 자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조계종이 공식적으로 ‘소신공양’이라고 정의해 버렸습니다.

과연 부처가 신이라면, 분신을 요구했을까요? 아니 부처가 지금 다시 온다면, 분신을 용인할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불교 교리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 불살생(不殺生)입니다.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자기 생명도 죽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내 생명은 내 것이니 내 맘대로 죽여도 된다는 것이 불교 경전이나 교리 어느 구석에 나온단 말입니까?

이 승려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은 불교만이 아니라 종교 자체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대해 조계종은 당장 사과하고 대중의 용서를 구해야 마땅하다고 한 불교계 승려는 말했습니다.

자살을 영웅시하거나 거룩한 죽음으로 포장한다면 앞으로 이 사회에서 자살이 크게 유행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것이며, 사람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신 하나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위기가 찾아올 것입니다.

대림절과 성탄절을 맞는 기쁨의 잔치에 찬물을 끼얹는 잘못된 행동이자, 사람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후회가 점점 결말로 치달음을 느낍니다.

대림의 의미를 살펴보면 기다림, 그리고 그 기다림 안에 있는 희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림의 시기는 두 부분, 즉 구세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며 회개와 속죄로 준비하는 부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깨어 기다리는’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대림의 시기는 하나님 사랑의 가장 완전한 선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감사하며 기다리는 시간인 동시에, 왕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희망하는 우리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요? 하나님과의 만남을 진정으로 기뻐하면서. 자신의 삶을 모두 드릴 결심은 되어 있나요? 아니면 교회의 가르침보다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를 기다리고 있는지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로 탄생하신 하나님 사랑은 우리가 그 사랑을 입기 위한 어떤 태도를 요구하는데, 그것은 교회가 가르치고 제시하는 길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이 사랑을 입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태도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르치는 길을 따라 자신의 삶을 바꾸고 준비할 때,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탄을 준비하면서 교회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에 무한히 의탁하고 이웃에게는 언제나 따스한 입김으로 살아갈 것을 가르치고 요구하십니다.

이러한 태도, 즉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에 부합되는 태도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 중 누구도 졸거나 잠들어 있지 않도록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대림의 시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할아버지처럼 잘못된 판단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하고, 자승 전 총무원장처럼 종교계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은, 많은 사람들이 모방심리로 따라할까 무척 걱정됩니다. 자신의 몸이라 해서 마음대로 죽을 권리는 없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행동은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방화를 저지르며 자살한 승려에게 국가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조문을 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 아닙니까?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