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실로암 연못의 렌더링 모습.
▲예루살렘 실로암 연못의 렌더링 모습. ⓒ다윗의 도시 재단

본문: 요한복음 9:10-12

눈을 뜬 맹인의 증거에 대한 본문입니다. 선천적으로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눈을 떴으니 이제 맹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눈을 뜨는 기적을 체험하고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축하를 받지 못하는 현장입니다. 오히려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에 대해 추궁을 당하고 있습니다. 무슨 죄를 진 것처럼, 실토하라는 험악한 분위기입니다. 본문 말씀을 배경으로 ‘맹인의 직접적인 증거’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1. 눈 뜬 것을 인정할 수 없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10절)”.

눈을 뜬 맹인이 축하를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오히려 눈을 뜬 것에 대해 추궁을 당하고 있습니다. 실로 웃지 못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눈을 뜬 맹인을 보고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그냥 호기심에서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호기심을 가진 질문이라면, 신기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눈을 뜬 것을 축하해 주는 분위기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눈을 뜬 사실에 대해 불쾌하다는 정도입니다. 어쩌면 눈을 뜨지 말았어야 하는데, 왜 눈을 뜬 것이냐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에 대해 시비를 거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추궁하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유대인들의 관심은 맹인이 눈을 뜬 것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주님을 책잡아 재판에 넘기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맹인이 눈을 뜬 사건은 계획에 차질을 가져오는 걸림돌입니다. 분위기 반전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을 뜬 현실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2. 속이지 말라

눈을 뜬 사실에 대해 속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나이다(11절)”.

눈을 뜬 맹인은 유대인들에게 사실대로 말합니다. 거의 육하원칙에 의해 증거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믿지 않으려 하면서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감추어진 마음은 “우리를 속이려 하지 말라”는 의도입니다. “제발 눈을 뜬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달라”는 마음입니다.

유대인들은 눈을 뜬 맹인의 설명을 듣고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눈을 뜬 맹인의 설명을 듣고 궁금증이 해소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더 요동치게 됩니다. 눈을 뜬 맹인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증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얄미울 정도로 정확하게 입증을 했습니다.

아마 유대인들은 그 맹인을 내리치고 싶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눈으로 확인하고서도 믿지 못하는 상황은 무슨 일입니까? 잘못 보았다고 눈을 의심하는 일입니까? 눈을 뜬 것에 대해 불쾌하다고 억지를 부리는 꼴입니까? 둘 다입니다. 눈을 뜬 사실을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눈을 뜬 사실에 대해, 속이는 것이라고 덮어씌우려 합니다. 그 사실을 솔직하게 실토하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마술로 그렇게 된 것이라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기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더 화가 나는 것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왜 눈을 떴는가의 문제입니다. “못난 사람은 그냥 못난 대로 살아야 한다”는 심리입니다. 유대인들 마음에 속이지 말라는 의도를 가진 이유입니다.

3. 소문을 내지 말라

눈을 뜨게 되었다고 나팔을 불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12절)”.

상황의 반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관심 대상이 맹인에게서 눈을 뜨게 한 주님에게로 이동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기적의 사건으로 민심이 동요될 것에 대해 걱정하는 눈치입니다.

민심의 동요가 일어나면, 유대인들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주님을 책잡아서 법정에 넘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음흉한 계획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서둘러 기적에 대한 소문을 진압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 일단이 바로 눈을 뜨게 해주신 주님의 행방을 질문하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성경학자들은 유대인의 질문이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주님을 체포하려 합니다. 체포해서 산헤드린 앞으로 끌고 가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맹인이 눈을 뜬 것이 전혀 기쁜 일이 아닌 이유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위험성만 걱정하는 꼴입니다. 지금까지 추진해 온 계획이 물거품이 되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에 대한 소문을 내지 말라는 이유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사람은 살면서 중요한 사실에 대해 입장을 달리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으려고 하는 입장과 믿지 않으려고 하는 입장입니다. 어떤 입장에 서는가에 따라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되기도 합니다. 기적에 대한 입장이 꼭 그렇습니다. 기적을 믿는가, 기적을 믿지 못하는가에 따라서 사람의 운명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가는 인생의 길에 주님을 믿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살면서 기적을 믿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살면서 기적을 거부하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는 살면서 기적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믿고 살면서 기적을 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문의: www.kocpt.com
상담: 02-2202-3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