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들 사상과 규범에 모두 복종 강요? 특권이자 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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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우 칼럼] 김명주 교수 글에 대한 반론

※본 기고는 월드뷰 2023년 11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들어가며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김명주 교수 글 본문 바로가기 QR코드.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김명주 교수 글 본문 바로가기 QR코드.
지난 월드뷰 8월호(본지 7월 17일 게재)에 필자는 충남대학교 김명주 교수의 글을 인권과 연관된 부분에 한해 논박할 것이라 예고했었다. 이 글은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쓴다.

첫째, 김명주 교수의 자가당착을 지적하고 싶다.

인권의 ‘내용’이 끝을 모르고 확장되면, 누구든 쉽게 인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 자연권(천부인권)만이 인권이었던 과거에는 인권침해라고 하면 매우 극악한 범죄행위에 한정됐지만, 지금은 살다 보면 서로 간에 경험할 수밖에 없는 사소한 불쾌감 모두가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이쯤 되면 인권침해 비위(非違)의 정도는 매우 낮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인권운동가는 여전히 사소한 불쾌감에도 ‘자연권’ 침해 정도의 무게감을 부여한다.

비유컨대 단순히 자기 맘에 들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너 인권침해야!”라는 ‘수류탄’을 던져버리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너무 많이 관찰된다. 항문성교가 에이즈의 주 원인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언급하는 것도 인권침해가 되고,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과학적 사실을 언급하는 것도 인권침해가 되어 버린다.

천부인권은 하늘(신)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권리를 의미한다. 자연권은 천부인권 개념을 세속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결국 자연권의 무게는 신의 명령이라는 무게감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을 거부할 뿐 아니라 자연권 존재조차 부정하는 자들이 자연권의 무게에 기대 상대방의 입을 막아버리는 것은 매우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선택적 상대주의

최근 인권을 중시하는 부류는 대개 상대주의를 믿는다. 신을 부정하다 보니, 니체처럼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상대주의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상대주의자도 아니다. ‘선택적’ 상대주의자이다.

모든 사람의 생각은 모두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하지만,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만큼은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서라도 처벌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쯤 되면 ‘모든 법은 정의를 가장한 폭력’이라고 한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정도는 양반이다. ‘차별금지법만큼은 예외’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김명주 교수는 “통계적 소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다수의 규범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김명주 교수에게 묻고 싶다. 차별금지법이야말로 ‘소수자’의 규범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다수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다수자의 규범에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다수결이지만, 소수자의 규범에 복종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특권이요 특혜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봐도 다수가 복종을 강요당하는 것보다는 소수가 복종을 강요당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이런 식의 선택적 상대주의는 김명주 교수의 글 곳곳에서 발견된다. 모든 국가의 문화와 역사는 존중해야 하지만, 유대인의 문화와 역사는 멸시당해도 되는가? 유대인을 메소포타미아의 작은 부족(tribe)이라고 한 것은 비하가 아닌지 생각해 보라. 혹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state)의 존재를 부정하는가? 성경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신화가 아니라 역사다. 누군가 우리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신화’라고 주장한다면, 타문화 존중인가? 그것이 상대주의인가?

선호 문제로 둔갑된 언어 자체로서의 기능

김명주 교수는 지식인의 권력을 악용해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김명주 교수 말처럼 세계 어떤 지역에서는 ‘새’의 원형이 펭귄이 될 수 있고, 다른 지역에서는 독수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나라에서도 땅을 기어 다니는 뱀을 새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만일 김명주 교수가 그렇게 착각한다면, 그 지역 사람들의 언어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사람들의 맛집 선호는 다를 수 있지만, 아무도 자신이 맛없다고 생각하는 식당을 맛집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그 사람은 맛집이라는 언어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김명주 교수는 필자의 글을 완전히 잘못 이해했다. 나는 ‘선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말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얼굴 모핑(morphing) 사진 중 하나를 볼 때, 그의 뇌에 저장된 이미지는 금방 소실된다. 하지만 그 얼굴의 인종을 대답할 때 사용했던 언어(백인 혹은 아시아인)에 대한 기억은 더 오래 지속된다. 그래서 한참 후 자신이 보았던 사진을 고르라고 하면 당시 자신이 대답했던 언어를 기준으로 회상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대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우선 그 사람을 언어(여성)로 범주화하고, 그 언어의 원형(어머니)을 기준으로 그의 성품·능력 등을 유추한다. 이는 차별도 비하도 아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 뿐이다. 그 자연스러운 본능을 편견과 고정관념이라고 매도하여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인권 침해이다.

▲필자가 2023년 4월 대전인권신문에 기고한 칼럼.

▲필자가 2023년 4월 대전인권신문에 기고한 칼럼.
영문학을 전공한 김명주 교수는 ‘후기구조주의’라는 말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후기구조주의는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는 몰라도, 언어학에서만큼은 주류 이론이 될 수 없다. 인간 언어에 원형이 없다는 말은 곧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말이고, 그 자체로 언어로서의 기능이 소실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기구조주의자에 의해 쓰여진 여성학 글은 매우 난해하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필자도 글 읽는 것이 꽤 훈련된 사람이지만, 대다수 여성학 문헌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필자의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서두에 사용된 개념이 뒤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젠더(gender)가 ‘성 역할 인식’이라는 개념에서 시작해, 지금은 50여 가지 성별로 둔갑해버린 것처럼 말이다.

요새 유행하는 줄임말 중 ‘생선(생일선물)’이라는 단어가 있다. 10여 년 전 제자들이 필자의 생일날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생선’이라며 들이밀었을 때의 당혹감을 잊을 수 없다. 정말 광어나 우럭이 들어있는 줄 알았다.

언어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생선’이라는 신조어가 어떻게 학생들 사이에 일반화됐을까? 아마 처음 들었을 땐 필자처럼 당황해서 무슨 뜻인지 반문했을 것이고, 선물한 사람은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것도 몰라? 공부 좀 하고 와.”

어떻게 후기구조주의자들의 난잡하고 허황된 (소위) 이론이 학계 주류가 되고 사회 전반에까지 확산됐을까? 아마 생선이라는 단어를 확산시킨 것과 같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그들과 토론하기 시작하면서 들었던 말도 위와 비슷했다. “그것도 몰라? 공부 좀 하고 와.”

그런 속임수는 필자에게 통하지 않는다. 필자는 단어 하나하나 찾아가며 영어로 쓴 인식론 책을 읽었던 사람이고, 기말 보고서 한 페이지를 쓰는데 며칠이 걸릴 때 ‘내가 한약을 짜내고 있나’ 하는 절망을 느꼈던 사람이다.

필자는 교수와 다른 학생들을 이해시키려 정확한 단어 하나를 찾느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써왔는데, 억울해서라도 그런 식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중을 속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지난 글에서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한다. 나를 이해시킬 책임은 김명주 교수에게 있다.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다면 모르는 것이니,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허수아비 논증

김명주 교수의 글은 ‘허수아비 논증(straw man argument)’으로 가득하다. 허수아비 논증이란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울 때 그 주장이 아닌, 그와 유사한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비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패턴은 김명주 교수의 글에서 자주 반복된다.

필자가 자연권이 지나치게 확장됐다고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자연권이 ‘소수자에게’ 지나치게 확장되는 바람에 피해를 본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연권의 ‘외연(범주)’이 지나치게 확장돼 피해를 본다고 한 것이다.

자연권의 ‘적용 대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확장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모두 가지고 태어난다. 인간이 확장시켜‘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자연권이 아니다. 인간은 다만 신이 주신 타인의 자연권을 ‘침해’할 수 있을 뿐이다.

김명주 교수가 말한 여성, 유색인, 비서구인, 장애인, 동성애자는 모두 자연권을 갖는다. 사실 아무도 동성애자들의 자연권을 침해한 적이 없다. 원하는 방법대로 성행위를 즐길 권리를 자연권이라 하기도 어렵지만, 우리 정상인은 그마저 침해한 적이 없다. 다만 벌거벗고 길거리에 나와서 돌아다니지 말라는 것뿐이고, 항문성교의 구체적 방법(항문 세척, 윤활유 사용 등)을 친절하게 설명한 책을 공공도서관과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지 말라는 것뿐이다.

이런 정보는 요새 유행하는 말로 TMI(Too Much Information)이다. 그런 걸 우리 아이들이 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심히 불쾌하다. 백번 양보해 심리적 불쾌감도 인권침해라고 한다면, 동성애자가 사소한 불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남을 처벌해야 한다더니 필자의 이 정당한 불쾌감만큼은 반드시 필자가 감내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필자는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인권도 없는 사람인가?

김명주 교수의 또 다른 허수아비 논증은 필자가 여성의 역할을 돌봄에 한정짓고 개인적 욕구와 성취를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결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여성이 돌봄에 남성보다 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비난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이 두 주장의 차이를 모른다면, 김명주 교수는 학자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지적 구분(cognitive differentiation)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들은 대중의 일반적 성 인식을 억지로 바꾸려 한다. ⓒ크투 DB

▲그들은 대중의 일반적 성 인식을 억지로 바꾸려 한다. ⓒ크투 DB
김명주 교수는 필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능력 있는 여성들이 차별당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한 주장은 옳지 못하다.

첫째,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유를 막론하고 대중의 일반적 인식을 강제로 바꾸려는 시도는 사람들의 자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둘째, 다수의 인식은 객관적 사실을 관찰해 일반화할 때 생기는 것이다. 성향과 능력의 성별 차이가 없다고 우긴다 해서 사람들의 일반적 인식이 바뀌지는 않는다. 여성 중 남성 중심의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관찰할 때 비로소 그러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다.

누군가 남성보다 뛰어난 여성을 관찰한다면, 더 이상 그 개인을 ‘여성’이라는 범주로 인식하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범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성 역할에 관한 대중의 일반적 인식은 한 명의 뛰어난 여성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한 여성이 대다수가 될 때 일반적 인식은 저절로 변화된다.

그런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성과 남성은 해부학적으로 다르고 (골격과 근육량 등), 호르몬 작용으로 인해 선호와 성향 역시 매우 다르다. 선호하는 일은 반복하게 되고 자연히 능력도 개발된다. 그래서 전형적으로 남성이 뛰어난 영역에서 활약하는 예외적인 여성이 소수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는 여성 고유 영역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대중의 일반적 인식을 억지로 바꾸려는 시도는 오히려 대다수 여성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통계적으로 대다수 여성은 집에서 자녀를 돌보는 일을 더 하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다. 페미니스트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고귀한 일을 허드렛일이라 비하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는 여성을 혐오하는 사상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젠더 주류화 정책에 연간 35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여성 리더를 키우려 해도, 우리나라 주류세력이 여전히 남자인 이유를 생각해 보라. 과학적으로 검증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대중의 일반적 인식을 억지로 바꾸려는 허황되고 폭압적인 시도를 하기보다, 그 예산을 여성이 잘할 수 있는 돌봄과 같은 일에 투입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 그러면 출산율은 자연히 회복된다.

나가며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어 질문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답변해주는 것이 필자의 의무이며 필자가 즐기는 일이다. 하지만 필자의 개인적 경험으로 말하건대, 아마 이 글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 중 대다수는 그냥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청래 의원이 한 말을 인용하면서 긴 글을 마친다.

“모르면 통과~~!”

이형우 (한남대학교 교수)
hwleetrojan@gmail.com
한양대학교 행정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1년 한남대학교 행정학과에 부임하여 행정철학과 윤리, 공무원의 동기부여와 인사관리를 위한 심리학을 교육·연구하였다. SSCI(국제저명학술지)와 KCI(국내학술지)에 여러 편의 논문을 게재, 2019년 한남대학교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 교정넷(교육정상화를바라는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 First Korea 시민연대 부대표 등을 맡아 교육 정상화와 악법개정 등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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