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 하나님 경외하는 성도의 가정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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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얀 스텐의 ‘식사 전에 기도하는 사람’

형편에 상관없이 드리는 기도
가정의 소망 오직 하나님께만
가족의 식전 기도는 네덜란드
장르화가들이 즐겨 다룬 주제
교회뿐 아니라 집에서 기독교
정신 배우고 찬송하며 기도해

▲얀 스텐, 식사 전에 기도하는 사람, 패널에 유채, 52.7x44.5cm, 1660.

▲얀 스텐, 식사 전에 기도하는 사람, 패널에 유채, 52.7x44.5cm, 1660.
네덜란드 시민들 사이 ‘장르화(genre painting)’가 인기를 끈 이유는 복합적이다. 경제적 성장과 함께 시민들이 그림을 살 수 있게 된 사회 환경도 그 중 하나이지만, 종교적 이미지를 교회에서 추방하고 세속적 그림을 장려한 개혁교회의 방침도 이 문화현상을 견인한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장르화’라는 용어는 정작 17세기 네덜란드 공화국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네덜란드 화가들이 일상생활의 이모저모를 묘출한 것이 훗날 ‘장르화’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 방면 화가로는 베르메르(Vermeer)와 테르보흐르(Terborch)가 있고, 얀 스텐(Jan Steen, 1626-1679)도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힌다.

장르화가들은 일반적으로 네덜란드의 생활상, 즉 시장의 광경, 집안일을 하는 아낙네, 야간학교, 재단사, 대장장이, 결혼잔치나 각종 축제, 휴가 나온 군인들, 여인숙, 외도장면 등을 다루었는데,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가정을 테마로 한 것이다.

기독교적 미덕인 ‘사랑’, ‘책임’과 ‘의무’로 묶여진 가족은 요한 반 베이어베이트(Johan van Beverwijk)에 의하면 ‘공화국의 샘이자 원천’이었다. 가정에서는 자녀의 신앙 교육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정기적인 성경 읽기, 찬송, 식전 기도 등은 개신교 가정의 일상적 특징이었다.

얀 스텐의 <식사 전에 기도하는 사람>(Prayer before the Meal,1660)은 부유한 가정이든 빈곤한 가정이든 모든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식전 기도 장면을 보여주는 장르화의 중요한 주제였다. 그림에서 평범한 가정의 식사 기도 장면을 볼 수 있다.

어머니는 아이를 향해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고 아버지는 모자를 잠시 벗고 식전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다. 식탁 위에는 빵과 치즈가 놓여 있고, 포도를 숙성시키는 나무통 위 하얀 접시에는 고기, 화면 오른쪽에는 우유(물)를 담는 도자기가 비치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은 결혼과 출산을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시편 128편에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을 지니라(3절)”는 구절이 있는데, 창문 주위를 포도나무가 장식하는 것은 스텐이 시편을 참조했음을 암시해준다.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허름한 벽에 걸린 글귀이다. 거기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세 가지 있으나 그 이상은 아니니 / 무엇보다도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 많은 재물을 탐하지 아니하는 것 / 가장 현명한 사람이 기도한 것을 바라는 것 / 이 계곡에서의 정직한 삶 / 이 세 가지 모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문구는 이 가정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짐작케 한다. 이 가정의 모토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삶의 가치를 물질보다 더 높은 실재를 향하는 것이었다. ‘정직’과 ‘기도’는 세상의 계곡을 헤쳐 나가는 저력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이들의 삶의 태도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 눈에 띈다. 그것은 천정에 달린 벨크룬(천정에 종(鐘)이 달린 나무 샹들리에)에 주기도문 말씀인 ‘u wille moet geschieden(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또 화면 오른쪽 상단의 선반에는 전도서 말씀을 상기시키는 바니타스 이미지가 등장한다. 촛불과 해골이 그것이다. 이 이미지는 ‘이 계곡’에서의 일시적인 삶의 성격을 상기시킨다. 선반 위에 걸려 있는 종이에는 ‘Gedenckt te sterven(죽음을 생각하라)’이라고 적혀 있다.

종합하면 촛불과 해골, 메멘토 모리는 인간의 유한한 삶, 헛된 욕망을 암시하고 있다. 그 옆에 성경책을 비치한 것은 하나님 말씀이 영원하고 사라지지 않음을 나타낸다. 또 그것은 죽음 뒤에 부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는데, 새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먼저 땅에 묻혀야 하듯 사람도 영생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

실제로 17세기 북 네덜란드 개신교 가정에서는 가정예배와 가르침이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는데,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책무였다고 한다. 이들 가정에서는 매일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토론하였고 추가로 요리문답을 아이들에게 지도하였다.

52개 항목의 질문과 답으로 되어 있는 요리문답은 일년에 걸쳐 전부를 배울 수 있도록 구성돼 있는데, 주일에 일차적으로 교리를 가르칠 용도로 제작되었으나 대중적으로 급속히 알려져 가정에서도 애독되었다.

▲아드리안 반 오스타드, 식사 전 기도, 15.3 x 13 cm, 에칭,1653년,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아드리안 반 오스타드, 식사 전 기도, 15.3 x 13 cm, 에칭,1653년,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얀 스텐은 개혁교회에 속한 신자가 아닌 가톨릭 신자였는데도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이런 가정의 모습을 흔하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가족 형편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베푸신 하나님께 대한 기도, 벽에 걸린 문구, 천정의 결혼기념물, 선반의 물건 등으로 미루어볼 때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매일의 삶을 ‘기도’와 ‘정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겉치레와 물질에 치우친 현대 크리스천의 모습과 배치된다.

스텐의 그림이 나오기 몇 년 전 아드리안 판 오스타드(Adriaen van Ostade, 1610-1684)도 <식사 전 기도>(1653)를 제작한 적이 있다. 이 판화는 스텐의 그림에 영감을 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오스타드의 판화는 스텐의 가정보다 훨씬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나, 빈약한 음식을 앞에 두고 기도하는 모습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형편에 상관없이 드리는 기도는 이 가정이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가족의 식전 기도는 네덜란드 장르화가들이 즐겨 다룬 주제이며, 교회뿐만 아니라 집안에서도 기독교 정신을 배우고 찬송하며 기도하는 등 삶 속에 신앙을 뿌리내렸던 신자들의 삶, 그리고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았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서성록(안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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