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그레이스선교교회
일시: 2023.9.10
본문: 마 1:1,21, 행 1:14, 마 21:13

김명혁 인터콥
▲김명혁 목사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교회였고 성자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였고 성령님의 강림으로 세워진 교회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를 바라보시고 기뻐하시면서 예루살렘 교회를 축복하셨습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행 2:47). 그러면 이제부터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었고 백성들의 칭송을 받는 교회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기도가 충만한 교회

첫째로,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로 시작했고 기도로 계속된 기도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라고 부탁하셨는데 120여명의 제자들은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에 올라가서 “전혀 기도에 힘썼다” 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 1:14).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이 임했고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로 시작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기도에 전력을 다했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예루살렘 교회의 기도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 주재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 4:24,29,30).

교회가 성장한 후에도 사도들이 새로운 행사나 멋진 프로그램에 치중하지 않고 무식할 정도로 기도에 전무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6:4). 얼마나 소박하고 무식하고 행복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마 21:13). 그리고 예수님은 스스로 새벽 미명에 또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기를 힘쓰셨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 6:12). 기도가 부족한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고 기도가 부족한 신자는 참된 신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회개가 충만한 교회

둘째로, 예루살렘 교회는 회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제사라고 말씀했는데, 예루살렘 교회는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눅 18장에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가슴을 치는 세리의 회개하는 기도라고 말씀했는데,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가슴을 치며 우는 회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선포하신 말씀도 회개하라는 말씀이었고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도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라는 것이었는데,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의 분부를 따라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했고 그리고 모두가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저들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저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으며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회개로부터 시작했고 회개로 계속해서 자라갔습니다.

사도행전 3장과 4장과 5장에서도 사도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행 3:19). 결국 예루살렘 교회는 회개로 시작해서 회개로 계속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회개가 충만한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3. 말씀이 충만한 교회

셋째로, 예루살렘 교회는 말씀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를 전혀 힘썼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도들은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의 대리자들을 말합니다. 결국 교회는 보통 사람들의 말을 듣는 곳이 아니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대리자들인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말을 듣고 가르침을 받는 곳입니다. 설교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방지일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소리를 중계하는 중계소인데 지금 너무 사람들의 소리가 많이 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는 것을 보시며 기뻐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예수님께서도 자기 발 아래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는 베다니의 마리아를 보시고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 10:42).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말씀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회개하라고 하면 회개하고 세례 받으라고 하면 세례 받고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하고 교제하라고 하면 교제하고 봉사하라고 하면 봉사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라고 하면 팔고 밭을 팔라고 하면 팔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가르침을 받으며 사는 교회와 성도들은 행복한 교회와 성도들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와 성도들이고 그리고 백성들의 칭송을 받는 아름다운 교회와 아름다운 성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4. 교제가 충만한 교회

넷째로, 예루살렘 교회는 교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떡을 떼며 교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희가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 화해하며 함께 교제하는 것을 보고 너무너무 기뻐하신다고 시편 기자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지금 원수로 있는 나라와 민족들이 언젠가는 서로 교류하고 함께 예배 드리는 날이 온다는 예언의 말씀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사 19:23).

그런데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인들은 물론 메소보다미아 가바도기아 애굽 구레네 로마 아라비아 등 십 사오 개 지역에서 온 다 문화 다 인종들 수 천 명이 함께 모여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행 2:41,42).

교회의 세 가지 본질과 특징 중의 하나가 교제 즉 코이노니아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이후 가장 좋은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의 특징도 여러 종류의 다 문화 다 인종이 함께 모여 교제하며 기도하는 것이었고, 사도 바울이 가장 사랑했던 빌립보 교회의 특징도 성도들이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건강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이 친밀하게 교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이 친밀하게 교제하고, 경상도 사람들과 전라도 사람들이 친밀하게 교제하고, 한국 사람들과 외국 사람들이 친밀하게 교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회를 보시고 너무너무 기뻐하실 것이고 사회와 백성들도 감동을 받으며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교제가 충만한 교회다운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5. 사랑과 구제와 봉사가 충만한 교회

다섯째로, 예루살렘 교회는 사랑과 구제와 봉사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4-47).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2-37).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제일 길게 제일 상세하게 서술한 모습이 사랑하고 구제하고 봉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와 회개와 말씀과 교제에 힘썼지만 무엇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구제와 봉사의 손길을 펴는 데 제일 힘을 많이 썼다고 생각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구제와 봉사를 전적으로 하게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안디옥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 순교와 환난으로 세워진 아름다운 교회

첫째로,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와 환난의 일로 세워진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전하는데”(행 11:19).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와 환난을 인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진 피난민 신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세운 소박한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씨앗은 스데반의 순교의 피였고 안디옥 교회의 기초는 피난민 신자들의 환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는 순수한 교회였고 보배로운 교회였습니다.

순교와 고난은 아름다운 교회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환난을 경험한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해지고 단순해지고 겸손해 집니다. 환난을 경험한 사람들의 신앙은 진지하고 단순하고 따뜻해집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신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기도와 전도를 열심히 했을 때 주의 손이 저들과 함께 했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행 11:21).

하나님께서 저들의 전도를 축복하셨습니다. 결국 수많은 안디옥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로 돌아 오게 되었고 그래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뜻하신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의 피로 세상에 교회를 세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순교자의 피와 환난으로 세워진 순수한 교회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2. 바나바에 의해 튼튼하게 세워진 아름다운 교회

둘째로, 안디옥 교회는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서 튼튼하게 세워진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더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 11:24). 성경은 바나바를 소개하면서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7) 라고 했습니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착함을 구비하지 못한 믿음은 교회에 방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 충만도 중요하지만 착함을 구비하지 못한 성령 충만은 교회 안에서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 튼튼하게 세워졌던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뜻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를 하시면서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착한 행실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자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신”(행 10:38)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착한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착한 사람이란 하나님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서 튼튼하게 세워진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3. 바나바와 바울이 협력한 아름다운 교회

셋째로,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의 협력 목회로 부흥 발전한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착한 사람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갔다고 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행 11:25). 그리고 사울을 데리고 와서 둘이 협력 목회를 했다고 했습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 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행 11:26).

착한 사람 바나바는 심각한 과거를 지닌 사울을 데려다가 그를 격려하고 그를 내 세우면서 협력 목회를 아름답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뜻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내어 보내실 때 하나씩 내어 보내지 않으셨고 둘씩, 둘씩 짝지어 내어 보내셨습니다.

목회와 선교에 있어서 협력 사역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협력 목회를 너무나 아름답게 한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인” 이라는 아름다운 별명을 처음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안디옥 교회는 협력 목회로 부흥 발전한 아름다운 교회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귀중한 교회였습니다.

4. 사랑과 구제에 최선을 다한 귀중한 교회

넷째로, 안디옥 교회는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한 귀중한 교회였습니다. 착한 사람이 힘쓰는 일은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펴는 일인데 안디옥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펴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첫째 목적은 물론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구제 사역에 무관심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고 이사야와 야고보와 사도 요한 등이 강조해서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5-17).

구제 사역이 너무나 중요한 사역임을 나타내 보여주기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이 직접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뜻하신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는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한 아름다운 교회였고 라나님의 뜻을 이룬 귀중한 교회였습니다.

한국 초대교회도 사랑과 구제와 봉사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주도 복음화의 주역이었던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은 기도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사랑과 구제와 봉사에 최선을 다하므로 제주도 복음화를 이루고야 말았습니다. 한국교회와 사회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으신 한경직 목사님이야말로 사랑과 구제와 봉사 사역에 전력을 다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방에 세워졌던 안디옥 교회야말로 예루살렘 교회와 함께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한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5.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인 아름다운 교회

다섯째로,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 다인종, 다문화, 다계급, 다사회의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 13:1).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인종들이 함께 모인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계획하시고 소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 “그 날에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사 19:23).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인종들이 함께 모여서 교제하고 기도하며 예배 드린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백인들만 모이는 교회, 흑인들만 모이는 교회, 이북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나 이남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 경상도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나 전라도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는 바람직한 교회가 아닙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의 하나는 인종적 장벽과 문화적 장벽을 깨트리고 하나를 이루시는 일이었는데, 이와 같은 일이 안디옥 교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 다 인종 다 문화 교회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6. 기도에 전력하며 순종하는 교회

여섯째로, 안디옥 교회는 기도에 전력하며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고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는 교회였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행 13:2). 기도에 전력할 수 있는 사람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부 성자 하나님께서는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사 56:7, 막 11:17). 빈 마음, 열린 마음, 단순한 마음, 겸손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을 지니고 기도할 때 성령의 음성에 민감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의 음성에 민감해 질 수가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축복 받은 교회였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행 13:2).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했을 뿐 아니라 성령의 지시에 순종한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7. 선교에 총력을 기울인 아름다운 교회

일곱째로, 안디옥 교회는 결국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에 총력을 기울인, 선교하는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3).

결국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고 두 사람에게 안수한 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을 했습니다. 갓난 아이들과 같은 저들이 저들의 믿음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같은 바나바와 사울을 안수해서 선교사로 파송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은 지 2-3년 밖에 되지 않는 초신자들이 저들의 믿음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같은 바나바와 사울을 핍박과 박해가 기다리고 있는 소 아시아와 마게도냐 땅으로 파송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아주 귀중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성령님의 지시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초신자들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했을지도 모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는 부모 잃는 고아와 같은 석별의 정을 금할 수 없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저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결국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성자 예수님의 예언과 분부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소아시아와 유럽에까지 가서 예수님을 전하는 선교의 일을 수행하는 선교의 기지가 되었습니다. 세계선교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은 계속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기도와 물질로 후원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저들을 파송한 안디옥 교회 성도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기억하며 저들의 위해서 기도와 사랑의 손길을 폈습니다.

그 다음 빌립보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 이후에 이방에 세워진 교회들 중에서 빌립보 교회는 가장 이상적인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장 사모하고 가장 사랑한 교회였습니다. 거기에는 사랑의 교제가 있었고 사랑의 희생이 있었고 사랑의 봉사가 있었고 사랑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빌 1:8)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나의 사랑, 나의 사모, 나의 기쁨, 나의 면류관” 이라고 불렀습니다(빌 4:1). 제가 1980년 4월 청담동에 교회를 세우면서 교회 이름을 강변교회라고 지은 이유는 강변에 세워졌던 빌립보 교회를 닮기를 소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강변교회의 표어를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기는” 교회라고 정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가장 이상적인 이방인 교회였던 빌립보 교회의 특징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교제와 봉사와 기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1. 사랑의 교제와 참예가 충만한 교회

첫째로,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 1:5).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빌 4:14,15). 여기 ‘교제’ 라는 말과 ‘참예’ 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교제’ 라는 말과 ‘참예’ 라는 말이 비슷한 말이면서도 조금 다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제’는 가벼운 만 남으로 그칠 수 있습니다. 식사 한번 같이 하고 차 한 번 같이 마시고 인사 몇 번 하고 그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예’는 깊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서로 나누는 sharing 의 교제를 의미하고 어떤 일을 함께 하는 partner-shipping 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시간과 물질과 몸을 드려서 무슨 일을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복음과 은혜 안에서 교제했고 바울의 고난과 선교 사역에 참예했다고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과 루디아와의 만남과 교제와 참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루디아는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에 청종했고 물질과 시간과 공간을 열어서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에 참예했습니다(행 16:15). 루디아의 교제와 참예는 형식적인 만 남과 교제가 아닌 실제적인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였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루디아의 본을 따라서 모두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의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 교회 신자들은 방관자들이 아니었고 구경꾼들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바울의 사역에 참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기도와 물질뿐 아니라 몸으로 사도 바울의 사역에 참예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함께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교인들 중에서 한 사람을 대표로 뽑아 로마로 보내어 빌립보 교회 신자들의 사랑과 소식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참된 사랑은 보고 싶어하고 만나고 싶어하고 몸으로 돕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대신해서 로마로 갈 사람을 정했는데 그 사람이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성품이 부드럽고 충성스럽고 희생적인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누구나 만나면 위로를 받고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성도들의 사랑의 편지와 사랑의 선물을 가득히 담은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지고 수 천리 바다 길을 항해한 후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 사도 바울에게 뜻하지 않은 손님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꿈에도 그리며 사모하고 보고 싶어하던 빌립보 교회 신자의 한 사람인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바울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바울은 그 때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빌 4:10). “에바브로디도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빌4:18).

2. 사랑의 봉사와 섬김과 착함이 충만한 교회

둘째로,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착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고난에 참예하고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 참예한 것을 가리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이미 ‘봉사’와 ‘섬김’과 ‘착함’의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교제와 참예가 진하게 될 때 실제적이 될 때 교제와 참예는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참예는 곧 봉사입니다. 시간과 물질과 몸을 바쳐서 주님의 일에 참예하는 것이 곧 봉사요 섬김이요 착함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빌 1:6). “너희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리라”(빌 2:17).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 2:30).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과 에바브로디도가 주님을 섬기고 사도 바울을 섬기면서 자기들의 생명을 돌아보지도 않은 것을 지적하면서 깊은 감동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착함이 충만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믿을 때부터 착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하면서 마지막 때까지 착한 일을 계속하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빌 1:6).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착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 가장 모범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3.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교회

셋째로,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교제와 참예가 진하게 될 때 교제와 참예는 사랑의 봉사로 나타나고 다시 사랑의 기쁨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빌 1:3-5).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빌립보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쁨이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강해설교자인 제임스 보이스 박사는 빌립보서 강해서를 쓰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빌립보서는 성경중에서 기쁨이 가장 충만한 책입니다. 빌립보서 전체를 통하여 사도 바울은 기쁨과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짧은 네 장을 통하여 열 여섯 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간에 자족하는 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그 어떠한 처지에서도 기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에게서는 기쁨이 넘쳐 흘렀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한 사도 바울은 기쁨의 참 근원을 찾아낸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쁨은 사도 바울의 가슴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가슴 가슴에도 전염되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옥중에서 매를 맞으면서도 기뻐하며 찬송을 불렀는데 그때 그 기쁨은 간수에게 전염되었고 루디아에게 전염되었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 전염되었을 것입니다.

로마 옥중에서의 사도 바울의 기쁨의 비결은 환경이나 소유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 안에 있었던 것이 사도 바울의 기쁨의 비결이었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유지했던 것이 기쁨의 비결이었습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빌 4:10).

로마 옥중에서 사도 바울이 가슴에 지녔던 기쁨과 승리는 에바브로디도에게 그대로 전염되었고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극한 가난 중에서 환난과 시련가운데서도 사도 바울처럼 기뻐하면서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아름다운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랑의 교제와 사랑의 참예가 충만한 교회였고, 사랑의 봉사와 사랑의 섬김과 사랑의 착함이 충만한 교회였고, 그리고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한 마디로 사랑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로부터 사랑을 받는 교회였고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교회였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사랑을 받는 교회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제가 아주 귀중하게 여기면서 좋아하는 그레이스 선교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은 즉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와 빌립보 교회와 같은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하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