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투 DB

많은 사람들이 율법(the law)을 단지 ‘행위의 법(the law of works)’ 정도로만 여긴다. 이는 대개 율법이 겉으로 ‘무엇을 하라, 무엇을 하지 마라’는 ‘행위’를 표방하고, 그것의 준수 여부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가 ‘율법주의(Legalism, 律法主義)’를 태동시켰으며, ‘율법’을 ‘구원의 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구원을 주는 ‘행위의 법(the law of works)’이 아닌 죽음을 불러오는 ‘정죄의 법(the law of condemnation)’이다. 이는 죄인이 그것(율법)을 준수하지 못해 그것의 정죄를 받아(롬 3:20) ‘죄삯 사망(롬 6:23)’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the law)’과 ‘제사법(the law of the offerings)’을 함께 주신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곧 그 둘이 별개의 ‘불연속적(不連續的) 법’이 아닌, ‘연속선상(連續線上) 법’이라는 말이다.

율법으로 사형언도(정죄)를 받아 ‘죄삯 사망(롬 6:23)’을 지불해야 하니 ‘제사(속죄)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최초의 법이며, 율법의 모형(母型)인 ‘선악과 언약(창 2:17)’이 파괴된 후 ‘제사(the offerings, 祭祀)의 모형(母型)’인 ‘가죽옷을 지어 입히는 일(창 3:21)’이 뒤따랐다.

이후 모세가 백성들 앞에서 ‘율법 책을 낭독’한 후 ‘율법 책과 백성들에게 피 뿌리는 의식을 행한 것’에서 그것들이 더욱 구체화되는 것을 본다.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19-22).”

이 ‘피 뿌림 의식’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율법을 어기면 피 흘림을 당한다(롬 6:23, 죄의 삯은 사망)’는 것과 그 ‘피 흘림의 요구’에 부응하는 ‘속죄 의식’,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 흘림’이 뒤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 18: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3-14).”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율법’과 ‘제사’가 완성됨

그런데 이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율법(행위의 법, the law of works)’과 ‘제사법(the law of the offerings)’을 별개의 ‘불연속적인 것’으로 본다.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그 두 가지 법을 주셨다고 믿는다.

‘원죄(original sin, 原罪)’, 그리고 이제껏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 발생했고, 또 앞으로 지키지 못해 발생할 ‘자범죄(actual sin, 自犯罪)’는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그리고 여기에 현재 그들에게 부과된 율법의 준수가 합해져 자신들의 구원이 완성된다고 믿는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입은 구속의 은혜와 자신들의 율법의 공덕(the works of law)이 더해져 자신들의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이 ‘제사’와 ‘율법’을 별개로 보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제사법’은 폐지됐지만, ‘율법’은 여전히 존속한다고 믿은데서 나온 것이다(물론 그리스도인에게도 ‘십계명의 도덕법적 기능’은 존속한다). 이들에겐 ‘정죄의 법’인 율법이 ‘구원의 법’으로 둔갑된다.

그러나 둘(제사와 율법)을 ‘연속선상(連續線上)’에 있는 것으로 보는 이들은 한편만 폐지되고, 다른 한편은 잔존할 수 없다고 본다. 둘은 동시에 존재 혹은 폐기된다. 본래부터 그들에게 ‘율법의 기능’은 정죄(약 2:9)와 죄삯 사망의 요구(롬 6:23)뿐이었고, 그 결과 그들은 율법으로부터 오직 ‘속죄 제사’만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속죄 제사’가 이뤄지면(히 9:1-2) ‘율법의 정죄 기능’도 당연히 마침표를 찍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대속을 받아들인 자들에겐 제사만 완성된 것이 아니고, 율법도 완성됐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the end of the law)이 되시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갈 3:24-25).”

반대로 ‘제사와 율법의 완성자’인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자에겐 ‘제사’도 ‘율법’도 미완성이다. 이런 자에겐 율법이 그를 정죄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갈 3:24)’역할이 필요하다.

◈제사와 율법의 완성으로 일궈진 ‘믿음과 성령의 경륜’

제사와 율법(혹은 율법과 제사)의 완성으로 ‘믿음의 경륜’이 세워졌다. 여기서 믿음은 다만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수납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사와 율법을 완성한 그리스도의 공력(the works of Christ)을 수납한다는 뜻이고, 인간의 공력과 행위 같은 것은 불필요하다는 고백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믿음 하면 자신의 선악(善惡)에 대해 망각하게 되고, 오직 그것의 원천인 그리스도의 공력만 떠올린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 앞에 있던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때, 앉은뱅이의 믿음과 그것(믿음)의 원천인 예수만 언급됐고, 베드로의 경건이 무시된 것은 그 한 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2-13, 16).”

그 사람이 받은 치유의 출처가 믿음이었고, 그 믿음은 예수로부터 말미암았다는 뜻이다. 환언하면 예수가 없었다면 그로부터 말미암은 믿음도 없었으며, 그의 믿음이 없었다면 그의 치유(구원)도 없었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 역시 그의 믿음의 출처를 (구속의 완성자) 그리스도로 말했다.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롬 5:2).”

이와 달리 제사와 율법을 별개의 불연속적(不連續的)인 것으로 보는 이들, 곧 그리스도의 대속 플러스(plus) 율법(율법의 행위)를 구원의 공식(the formula of salvation)으로 보는 율법주의자는 믿음 외에 따로 자신들의 행위를 요구받는다. 흔히 말하듯, 그들에겐 ‘믿기만 해선 안 되고 뭔가가 따라야 한다’는 단서가 항상 첨가된다.

성령의 부으심(The Anointing of the Holy Spirit) 역시 제사와 율법의 완성으로 경륜된 믿음의 결과물이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2, 5, 14).”

죄인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믿고(고전 12:3), 또한 믿음으로 성령의 부으심을 받는다. 믿음과 성령의 ‘상호교호성(相互交互性)’과 ‘불가분리성’을 말한 것이다.

반면 제사만 완성되고, 여전히 율법의 요구를 받는 미완(未完)의 법에는 믿음의 경륜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믿음이 경륜되지 않는 곳엔 성령이 부어지지 않으며, 성령이 부어지지 않으면 죄인은 그냥 육체로 남는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고 책망한 것도 그들이 성령의 부음을 갖다 주는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행위의 율법주의로 흘러, 성령 없는 육체로 마감했다는 뜻이다.

성경이 언제나 믿음과 성령(갈 5:5, 행 6:5), 율법과 육체(롬 7:5)를 함께 묶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유 1:1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8-39).”할렐루야!

*이 글에서 ‘율법’은 ‘행위의 법(the law of works)’에 국한됐음을 밝혀 둔다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개혁신학포럼 학술고문,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