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백선엽 장군, 자유민주주의 수호… 국가 차원 명예회복 당연”

송경호 기자  7twins@naver.com   |  

샬롬나비, 진영논리 배제 촉구

다부동 전투서 앞장서 싸우는 모범 보여
6.25전쟁 혁혁한 승전의 공적 기억돼야
현역, 그 이후 평생 한미동맹 위해 노력
문재인 정권, 친일로 매도… 대전에 안장
간도특설대였지만 독립군과 싸우지 않아

국가보훈부, 친일 문구 삭제 곧 결론 낼 듯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크리스천투데이 DB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크리스천투데이 DB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이 故 백선엽 장군에 대해 6.25 전쟁 시 다부동 전투에서 국가를 사수했고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인물이라며 “국가보훈부가 백선엽 안장 기록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 문구 삭제 추진은 당연한 조치”라고 밝혔다.

샬롬나비는 21일 논평에서 “1950년 기습남침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대한민국을 유린했다. 당시 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그대로 밀렸고 결국 낙동강까지 밀렸다. 낙동강 전선이 무너진다면 대한민국은 멸망하는 것이고, 한반도는 그대로 공산화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어 ”당시 8월 3일부터 29일까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를 중심으로 숲데미산(이하 수암산으로 통칭) 및 유학산 일대에서 대한민국 국군과 조선인민군 사이에서 치열한 교전이 시작됐다”며 “낙동강 전선의 요충지인 다부동을 백선엽 준장 등이 이끄는 국군 제1사단과 미군 2개 연대가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지켜냈다”고 했다.

이들은 “만일 당시 백 장군이 다부동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을 것”이라며 “백 장군은 이후 북진해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했고, 1.4 후퇴 뒤에도 서울을 최선봉에서 탈환했다. 휴전회담 대표를 지내고 한국군 최초로 대장에 올라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맡으며 군을 재건했다. 물론 다함께 피를 흘린 대한민국과 우방 미군의 희생도 큰 몫을 했다. 우리는 백 장군의 탁월한 리더십을 기억하고 그를 승전영웅으로 추모해야 한다”고 했다.

또 “백선엽 장군의 6.25 전쟁을 통한 혁혁한 승전의 공적이 기억되어야 한다”며 “창군(創軍)의 주역인 백선엽 장군은 그 어떤 호칭보다도 군인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던 진정한 군인이었고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한 최고의 전쟁영웅이었다”고 했다.

샬롬나비는 “백선엽 장군은 현역시 그리고 예비역에서 한평생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려 노력했다”며 “백선엽 자운은 2013년 미8군 명예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2016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8군 사령관 이·취임식에 초대되었다. 이것은 한미동맹의 상징이 백선엽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미동맹은 지난 70년 간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를 지탱해온 소중한 가치이다. 백선엽 장군의 존재는 이러한 한미동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국가백년대계 관점에서 백선엽 장군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우리는 백선엽이 간도 특설대에서 근무했다 해도 그것을 가지고 그의 삶 전체를 친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이후 백선엽 장군은 한국전쟁에서 영웅적인 전투로 나라를 살렸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이뤘다.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흑백논리로 무조건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당시 간도 특설대는 중국 공산당이 지원하는 게릴라 부대 소탕이 주목적이었고 당시 우리 광복군은 중국, 소련 등지로 대부분 흩어진 상황이었다. 백선엽 장군은 20대 초반 간도 특설대에서 근무했으나 소속만 돼 있었을 뿐 독립군과 싸우지 않았다”며 “만주 지역 독립군은 청년 백선엽이 특설대에 배속되기 전에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제 시대 태어난 한국인들은 모두 일제 교육을 받고 그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살아야 했다. 이것을 두고 ‘친일’이라고 딱지를 붙일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선 나라를 지킨 전쟁 영웅도, 안익태와 홍난파 같은 자랑스러운 예술인도 친일 굴레를 씌워 모욕한다. 심지어 이승만, 박정희 같은 국가의 어른들까지 친일 부역자로 폄하되고 있다. 이것은 자학이며 국가 미래를 위한 긍정적 사고가 아니다”라며 “러시아의 식민지에서 독립하고 침공에 대항하여 싸우면서 러시아 시대에 활동했던 영웅들을 국가의 영웅으로 세워주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샬롬나비 논평 전문.

백선엽은 6.25전쟁시 다부동 전투에서 국가를 사수했고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했다.
국가보훈부가 백선엽 안장 기록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 문구 삭제 추진은 당연한 조치다.

▲6.25 당시 백선엽 장군의 사진.

▲6.25 당시 백선엽 장군의 사진.
백선엽(1920~2020) 장군 동상이 세워졌다. 백선엽 추모 3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동상이 6·25전쟁 때 그가 전공을 세운 경북 칠곡군 다부동에 건립됐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건곤일척(乾坤一擲)에서 구한 백선엽 장군의 동상 제막식이 지난 2023년 7월 5일 당시 다부동 전투의 격전지인 경북 칠곡에서 있었다. 백 장군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라를 지켰다는 의미를 담아 동상이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고 한다. 백선엽장군동상건립추진위원회가 주도해 국민 성금을 모으고, 국가보훈부와 경북도 등 후원을 받아 5억원을 들여 제작했다고 한다. 1950년 다부동 전투가 벌어진 지 73년 만에 승리한 영웅을 현장에 모신 것이다. 국방부 장관과 한미연합사령관, 한미 양국 주요 인사 등 2000여 명이 참석했다.

그런데 지난 문재인 정권은 그를 친일로 매도하고 홀대했다. 양식있는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윤석열 정권 들어와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지켜낸 영웅을 제대로 평가하고 추모하게 된 것이다. 6.25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인해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왔을 때 백선엽이 이끄는 국군 1사단이 북한군 3개 사단을 물리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에서의 인천상륙작전이나 북진(北進)은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늦었지만 국가를 위기에 구원한 영웅에 대한 합당한 예우라 할 것이다. 그 동안 여러 민간단체들이 개별적으로 백선엽 추모식을 진행해왔으나, 올해는 육군 주관으로 통합 추모식이 열려 격이 높아졌다. 국가보훈부와 육군은 이날 오후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백 장군 동상 제막식과 함께 3주기 추모식을 잇달아 진행했다. 샬롬나비는 백선엽 장군이 서거(逝去)후 국가 차원에서 예우를 받게 된 것을 환영하고 그 분의 명예회복은 당연지사로 여기면서 다음같이 천명하고자 한다.

1. 백선엽의 다부동 전투는 오늘의 선진 자유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

1950년 기습남침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대한민국을 유린했다. 당시 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그대로 밀렸고 결국 낙동강까지 밀렸다. 낙동강 전선이 무너진다면 대한민국은 멸망하는 것이고, 한반도는 그대로 공산화되는 것이었다.

당시 8월 3일부터 29일까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를 중심으로 숲데미산(이하 수암산으로 통칭) 및 유학산 일대에서 대한민국 국군과 조선인민군 사이에서 치열한 교전이 시작됐다. 낙동강 전선의 요충지인 다부동을 백선엽 준장 등이 이끄는 국군 제1사단과 미군 2개 연대가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지켜냈다.

만일 당시 백 장군이 다부동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을 것이다. 백 장군은 이후 북진해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했고, 1·4 후퇴 뒤에도 서울을 최선봉에서 탈환했다. 휴전회담 대표를 지내고 한국군 최초로 대장에 올라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맡으며 군을 재건했다. 물론 다함께 피를 흘린 대한민국과 우방 미군의 희생도 큰 몫을 했다. 우리는 백 장군의 탁월한 리더십을 기억하고 그를 승전영웅으로 추모해야 한다.

2. 백선엽은 다부동 전투에서 자신이 앞장 서서 적과 싸우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부하들이 후퇴하려 하자 백 장군은 “우리가 밀리면 나라도 끝장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물러서면 너희가 나를 쏴라”고 했다. 그가 권총을 뽑고 앞장서자 부하들이 적진으로 돌격해 빼앗긴 고지를 탈환했다. 백 장군은 다부동 전투에서 공포에 질려 후퇴하는 부하들에 앞장서 고지를 탈환함으로써 희생과 헌신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위기에서 책임을 지고 앞장서는 그의 리더십이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전투에서의 공적을 자신에게 돌리기 보다는 부하들에게 돌리는 모습에 대해 이번 추모식에서 백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는 “아버지는 생전에 최초 4성장군의 명예나 훈장 등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분들과 국민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3. 백선엽의 6.25전쟁을 통한 혁혁한 승전의 공적이 기억되어야 한다.

백선엽은 다부동 전투 외에도 평양 최초 점령, 서울 재탈환, 춘계 공세 방어, 동부 휴전선 북상 등 다수의 작전을 지휘했다. 1950년 10월 백 장군이 지휘하던 국군 제1사단은 평양탈환 작전에서 중요한 도로와 요충지를 점령해 제일 먼저 평양에 입성하는 부대가 되었다. 정전협정 체결 1개월 전인 1953년 6월 금성지구 돌출부 전투에서는 미8군사령관 테일러 장군의 요청으로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며 직접 참전하여 중공군의 금성지구 공격을 저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6.25전쟁 과정에서 대한민국을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여 지킴으로써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놓았다. 백 장군은 6.25 전쟁 중에 제7대 육군참모총장과 전쟁 후에 10대 참모총장과 제4대 합동참모의장으로 봉직했으며, 2020년 10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창군(創軍)의 주역인 백선엽은 그 어떤 호칭보다도 군인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셨던 진정한 군인이었고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한 최고의 전쟁영웅이었다.

4. 백선엽은 현역시 그리고 예비역에서 한평생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려 노력했다.

백선엽장군이 미 제27연대장 존 마이켈리스 대령에게 “같이 공격합시다”라고 한 말과 1951년 2월 맥아더 장군에게 “we go together” 라고 한 말은 오늘날 한미동맹의 의미와 가치를 나타내는 상징적 구호가 되었다. 그는 휴전회담 대표를 지내고 한국군 최초로 대장에 올라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맡으며 군을 재건했다. 미군은 백 장군을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장교’ ‘최상의 야전 사령관’이라 불렀다. 주한미군사령관들은 취임하면 백 장군을 찾아 전입신고를 했다. 미군은 백 장군을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장교’ ‘최상의 야전 사령관’이라 불렀다. 주한미군사령관들은 취임하면 백 장군을 찾아 전입신고를 했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이·취임식 때마다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으로 시작하는 게 전통이 되었다. 현재 미 2사단 훈련평가원실 건물 이름이 '백선엽관'이다. 또한 미군 장성진급자 모임인 캡스톤 그룹(capstone group)이 한국에 오면 백선엽을 만나는 게 필수코스였다. 현재도 백선엽의 6·25전쟁 경험담 육성녹음은 미국 국립보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6·25전쟁 회고록 《군과 나》는 미군 주요 군사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백선엽은 2013년에는 미8군 명예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2016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8군 사령관 이•취임식에 초대되었다. 이것은 한미동맹의 상징이 백선엽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미동맹은 지난 70년 간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를 지탱해온 소중한 가치이다. 백선엽의 존재는 이러한 한미동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5.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국가백년대계관점에서 백선엽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이뤄져야 한다.

백선엽은 과거 만주에서 간도 특설대에 근무했다. 이 특설대는 당시 독립군을 토벌하는 목적으로 일제가 만들었다. 백선엽은 자서전에서 간도 특설대 복무와 관련하여 “우리가 전력(全力)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백선엽을 ‘독립군 토벌 친일파’라고 매도했다.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는 이유였지만 당시엔 만주에 독립군이 없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를 근거로 백선엽은 한국전쟁에서의 혁혁한 전공에도 불구하고 친일파가 됐다.

우리는 백선엽이 간도 특설대에서 근무했다해도 그것을 가지고 그의 삶 전체를 친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이후 백선엽은 한국전쟁에서 영웅적인 전투로 나라를 살렸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이뤘다.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흑백논리로 무조건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제 건립된 백선엽 동상을 통해 우리는 자유와 동맹의 확고한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다시 한번 국가를 위해 희생한 모든 분들의 노고를 기리는 것이 필요하다.

6. 문재인 정권은 그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매도하고 서울현충원 아닌 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백선엽이 100세로 별세하자 미 백악관과 국무부, 전 주한미군사령관들은 모두 애도(哀悼) 메시지를 냈고 ‘한국의 조지 워싱턴’이라고 추앙했다. 시민분향소엔 수만명의 시민이 장대비를 맞으며 조문했다. 하지만 당시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조문은 커녕 애도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그가 바라던 6·25 참전 12만명의 전우가 묻힌 서울 현충원 아닌 대전 현충원에 안장했다. 보훈처는 장례 다음 날 그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고 낙인찍었다. 백선엽의 명예회복은 문 정권이 끝나고 윤석열 정권에야 이뤄졌다. 백선엽 동상 제막식에선 다부동에서 포탄·식량 등을 실어 나른 민간인 ‘지게 부대원’들도 함께 조명받았다. 지난 2023년 7월 27일엔 한미 동맹을 맺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동상도 다부동에 세워졌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예우하지 않는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 백선엽 같은 호국 영웅을 홀대하고 매도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7. 진영논리에 의한 판단에서 벗어난 백선엽의 재평가 및 명예회복에서 국가보훈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우리는 국가보훈부가 백선엽의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평가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를 촉구한다. 국가보훈부와 국립현충원 홈페이지에서 백 장군의 안장 기록을 검색하면 비고란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가 같이 뜬다. 백선엽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 첨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2019년 3월 결정됐다. 친일파 여부는 노무현 정부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립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판단이 기준이 됐다. 이러한 결정은 진영논리에 편성한 것으로 객관성이 없다.

백선엽을 비롯한 12명의 현충원 영령이 그런 수모를 겪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곧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보훈부는 구국의 영웅을 진영 갈등 탓에 역사의 험지에 남는 것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보훈부는 백선엽의 공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운 사람이라면, 백선엽 장군은 국가 수립 이후 최대의 위기였던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8. 국가보훈처가 백선엽의 안장 기록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 문구 삭제를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국가보훈부가 백선엽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 문구 삭제를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백선엽이 광복 직전 간도특설대 장교로 근무한 것을 근거로 ‘친일파’라고 결정한 것이 이유였다. 당시 간도특설대는 중국 공산당이 지원하는 게릴라 부대 소탕이 주목적이었고 당시 우리 광복군은 중국, 소련 등지로 대부분 흩어진 상황이었다. 백선엽은 20대 초반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했으나 소속만 돼 있었을 뿐 독립군과 싸우지 않았다. 만주 지역 독립군은 청년 백선엽이 특설대에 배속되기 전에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태어난 한국인들은 모두 일제 교육을 받고 그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살아야 했다. 이것을 두고 ”친일“이라고 딱지를 붙일 수 없는 것이다.

9. 소련 치하 활동한 인재들을 영웅을 받아준 우크라이나처럼 나라를 빛낸 영웅들을 폄하하지 말고 세우는 전통을 세우자

반민족 행위의 범위를 일제 패망 이후 현대사까지 아우르면 백선엽은 민족의 반역자가 아니라 영웅이다. 6·25를 일으켜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김원봉이야말로 민족 반역자지 국군의 원조라 할 수 없다. 백선엽은 6.25전쟁에서 나라를 구했으니 당연히 민족 영웅으로 그의 지위를 회복시켜야 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배워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치하에서 말과 글을 금지당하고 속국으로 살면서 독립을 위하여 많은 목숨이 희생당했다. 소련이 붕괴하자 1991년 비로소 독립하였다. 독립과 건국의 영웅을 발굴하였다. 그 가운데는 20세기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있다. 그는 1903년 러시아 제국 키이우에서 태어나 어려서 고향을 떠나 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주했고 젊은 시절 서유럽으로 건너가 평생 미국인으로 살았다. 고국을 떠난 지 61년 만인 1986년 귀국하여 키이우 아닌 모스크바에서 귀국 연주회를 가졌다. 유튜브엔 그가 피아노곡을 연주할 때 모스크바 청중이 감동해 눈물 흘리는 장면이 돌아다닌다. 한국이라면 식민지 조선인이 서울 아닌 도쿄에서 귀국 연주회를 했다고 비난받을 장면이다. 하지만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인생사를 제국주의 시대에 태어나 겪은 음영으로 여겼다. 오히려 그를 우크라이나의 자랑스러운 음악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차이콥스키도 그가 평생 쓴 80곡 중 30곡은 우크라이나에서 썼다는 이유로 그를 영웅으로 대우하여 최고 음악 교육기관인 키이우 음악원도 국립 차이콥스키 음악원으로 개칭했다. 트로츠키는 우크라이나 출신이지만 배제됐다. 트로츠키는 소련 국방장관이 되어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우크라이나어를 “러시아어의 사투리일 뿐”이라고 비하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의 관용스러운 애국 정신에서 배워야 한다. 이러한 우크라이나는 동구권의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러시아의 침략에 목숨을 바치고 독립을 지키는 자유민주국가다. 대한민국에선 나라를 지킨 전쟁 영웅도, 안익태와 홍난파 같은 자랑스러운 예술인도 친일 굴레를 씌워 모욕한다. 심지어 이승만, 박정희 같은 국가의 어른들까지 친일 부역자로 폄하되고 있다. 이것은 자학이며 국가 미래를 위한 긍정적 사고가 아니다. 우리는 러시아의 식민지에서 독립하고 침공에 대항하여 싸우면서 러시아 시대에 활동했던 영웅들을 국가의 영웅으로 세워주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2023년 8월 21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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