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넷플릭스 ‘D.P.’ 시즌2 (1)
군 내 부조리 구조적 개혁 가능성?
군 존재 이유, 부정적 감정과 결부
인권 개선 및 정예화 여건 장애물
부조리와 불투명, 개선 없이 반복
◈군의 방어기제: 외부의 감시와 개입, 변혁 요구를 극렬히 거부하는 한국군
‘D.P.’ 시즌2는 지난 시즌1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총기난사 탈영병 김루리(문상훈 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가혹행위 등과 관련된 군대 내 부조리 문제를 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시즌1 서사가 주로 D.P.조의 군 외부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면, 시즌2의 서사는 군 내부에서 가혹행위나 탈영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과 태도에 배태되어 있는 구조적 부조리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시즌 2는 D.P.조가 군무이탈자를 연행하는 말단 임무만 보여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 수사기관과 군사법정 운영방식에 초점을 맞춰 서사를 전달한다. 이에 따라 시즌 2의 서사는 시즌 1보다 훨씬 확장된 스케일을 보여준다.
하지만 확대된 서사에 걸맞는 개연성과 치밀함을 갖추지는 못했다. 특히 힘없는 말단 D.P.조 인원들이 군 내부 거대한 권력 카르텔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설정은 과도하게 비현실적이며, 이로 인해 드라마의 작품성을 크게 훼손시키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D.P.’ 시즌2 서사의 개연성과 현실성 부족 문제와는 별개로, 이 드라마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시즌1이 내무실 현장에서 발생하는 군내 가혹행위와 부조리 문제를 주로 거론하고 있다면, 시즌2는 군대 내부 부조리를 은폐, 축소하려 안간힘을 쓰는 군 수뇌부의 편집증적 방어기제를 들춰내 비판하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 군대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군대는 보유하고 있는 무력과 군기에 의해 유지되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 상당한 수준의 방어기제를 내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돼 있다는 미군 역시 일정 부분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미국은 원래 개인과 지역 공동체의 자유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결성된 민병대에서 군대가 출발한 만큼, 전통적으로 권력과 권위에 대한 집착이 비교적 약하다.
게다가 미군은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의 정통 정치체제로 떠받든다는 강력한 명분을 가지고 확고한 문민통제 원칙을 지키고 있기에, 그나마 외부의 비판이나 변혁 요구에 대한 방어기제가 덜한 편이다.
그러나 미국과 서구의 극소수 정치 선진국들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군대는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군주제, 군국주의, 독재정, 과두정, 파시즘 정권을 지탱하는 데 앞장서고 있었다. 애초 엄정한 군기에 의한 상명하복을 최고의 미덕으로 아는 집단이 권위와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정치체제와 결탁하기까지 했던 만큼, 그 폐쇄성과 권위주의적 성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군대에서는 징집병이든 자원병이든 말단 병사들의 인권이 제대로 지켜질 리 없다. 그리고 그 전통은 약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비록 그 동안 자유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을 받아들인 정치체제가 늘어났다 하더라도, 군대 내부에 이런 선진적인 인권의식이 스며들어 자리잡는 일은 지극히 더디게 일어나고 있었다. 대한민국 군대 역시 민간과 군 내부 인권의식 차이의 괴리 때문에 상당한 내홍을 겪어 왔다.
◈군의 존재의미: 군의 ‘실질적’ 존재 의미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
현대 한국군의 관습과 병영문화 중 태반은 식민지 치하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혹자는 한국군의 기원을 독립운동을 수행했던 광복군에서 찾지만, 실제로 광복군을 이끌었던 세력들과 지도자들 대다수는 해방 이후 민족자주라는 명분을 내세웠던 북한 측에 가세해 인민군 창군을 주도했다.
특히 북한과 가까운 만주나 중국 북부 지역에서 모택동 치하 팔로군에 종군했던 장교와 병사들 대부분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최정예 주력으로 활약했다.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 주도로 한국군 내에 미군의 운영방식과 병영문화가 일부 섞이기는 했지만,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 주요 지휘관 대부분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군 사관학교를 나온 장교들이었다. 당연히 이들이 군대를 운용하는 습성이나 병영을 꾸려나가는 방식 모두 일본군의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런 기조는 역시 만주 소재 일본 육사 출신의 박정희 대통령이 1960년대와 1970년대 내내 집권하면서 그대로 이어졌고,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던 장성 전두환이 정권을 잡으면서 1980년대까지도 거의 변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국군이 제대로 인권에 관한 의식을 유념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다. 그 전까지 한국군 내부에는 사실상 조선 시대 유교적 권위주의 전통, 그리고 일제 시절 군국주의 전통까지 혼재돼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런 구시대적 권위주의 전통은 군 본연의 보수적 성향과 맞물려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군 문화가 상명하복의 질서를 존중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애초 군대의 존재 이유와 엄정한 군기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 등에 대해서는 성경에서도 거듭 인정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로마의 백부장이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예수의 말씀을 대하는 것을 보고 크게 칭찬하신 바 있다(마 8:5-13). 즉 성경은 정당한 권위와 명령에 대한 복종이 하나님 나라 질서를 세우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며, 이 땅의 군대 역시 이러한 질서를 모방해 그 기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상명하복 질서가 군대 내 권력자들의 부당한 이익과 부조리, 악의를 위해 악용되는 사태에 대해서는 민간 영역의 철두철미한 감시와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군을 비롯한 대다수 선진화되지 못한 군대들은 외부로부터의 감시와 개입, 변혁 요구에 대해 거의 발작에 가까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겉으로는 군의 전문성을 지키고 내부 기강을 유지한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사실은 부조리한 계급질서에 의해 이익을 얻거나 감정적 만족을 얻는 이들이 군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변화를 극렬히 거부하는 것이다.
군의 변화 노력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부분 피상적 변화 노력에 그칠 뿐 군대 내부의 나쁜 전통들에 대한 근본적 변화 노력은 미진한 것이 현실이다. 병영 문화를 혼탁하게 만드는 갖가지 부조리와 악습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 먼저 대한민국 군대의 존재 목적과 정예화의 실질적인 의미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국방을 위해, 주적인 북한과 잠재적 적성국 중국 등에 대한 전쟁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등의 거시적·피상적 목적 말고, 실제로 군대에 징집되고 군대의 본체를 유지해야 할 대한민국 청년들과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군대에 인생을 내맡긴 군 간부들의 현실적인 입장에서 군대의 존재 의미와 정예화, 그리고 병영문화 개선 의미를 되짚어봐야 유의미한 변화를 위한 상황 인식이 가능해질 것이다.
군대 내 부조리, 가혹행위, 그리고 그와 관련된 군내 범죄와 군무이탈과 관련해서 구체적이고 세밀한 인식이 어려운 이유는 최우선적으로 국민들이 군대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초 군대란 대부분의 대한민국 여성들에게는 그들의 실제 삶과 전혀 상관없는 환상의 공간에 불과하고, 군 생활을 직접 겪은 남성들에게는 괴롭거나 지루한 감정으로 점철된 인생의 암흑기 정도로 간주된다.
군은 우리가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고 우리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존재하고 끊임없이 약동해야 하는 집단이지만, 막상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 속에서는 가능한 한 삶에서 멀리하고 싶고 꺼려지는 집단으로 인식된다. 군대의 존재 이유와 정예화의 필요성이라는 엄정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전무하다 못해 부정적 감정과 결부되는 현 상황은 군대 내 인권 현실을 제고하고 군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드라마 ‘D.P.’에 묘사된 것처럼 대한민국 군대에서 내부 부조리와 이에 대한 불투명한 대응이 개선되지 않고 그저 반복되기만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계속>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