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연 껴안고 사는 세상에서
슬픔과 고뇌를 보듬고 치유하는
하늘의 터치 묵상하며 작품 제작
인간이란, 하나님의 만지심 없이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
구속하신 예수 사랑 크고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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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조혜경, 캔버스 위에 혼합재료, 102x190cm, 2023(그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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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등장하는 형상의 아웃라인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사랑했던 한 여성과 관련이 있다. 반 고흐는 벨기에 보리나주 광산에서 선교사 활동을 마치고, 미술가로서 새 출발을 결심한 무렵 삼촌 안톤 모베(Anton Mouve)가 활동하던 헤이그로 그림을 배우러 갔다가 시엔을 만났다.
‘시엔’으로 알려진 클라시나(Clasina Maria Hoornik, 1850-1904)는 가난한 집안의 10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살림을 도맡았는데, 가족은 공공 급식소와 교회 자선단체의 도움에 의존하여 살았다. 가족을 떠맡은 그녀는 종국에 매춘까지 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고흐가 시엔을 만났을 때 그녀는 알콜 중독에다 임신한 미혼모였다. 고흐는 그녀를 모델로 썼다가 나중에는 “그녀와 아이를 굶주림과 추위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그들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고 해도 평범한 여자를 사랑하고 또 그녀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행복하다(1882. 6. 1-2).”
고흐는 환경을 뛰어넘어 시엔을 사랑했던 것 같다. 고흐는 시엔을 ‘짐을 나누어 짊어진 동반자’로 불렀다. 보통 사람이라면 창기를 사귀는 것을 비난했겠지만, 빈센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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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반 고흐, 드로잉, 1882(그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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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경은 “이 누드 형상의 실루엣이 우리의 슬픔을 담기도 하고, 마치 우리가 웅크리고 기도하는 모습인 것 같기도 해서 이것을 차용하게 됐다. 고흐도 그림을 그리며 아픈 이웃을 섬기기 위해 노력을 했다. 나도 그래서 주위 아픔을 당하고 있는 이웃을 섬기고 싶다. 그런데 먼저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이것을 흘려보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위로부터 ‘영적 내리흐름’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녹록치 않듯, 조혜경의 화면 역시 곳곳이 패이거나 상처가 나 있다. 작가는 우리 세상이 험지이고 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이런 곳에서 암초를 만나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인물을 만난다. 그 사람이 바로 시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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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반 고흐, 수채화, 1882(그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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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조혜경은 인간의 슬픔은 끝나지 않았다고 보았다. 조혜경은 그림을 그릴 때 고흐가 헤이그에서 만난 여인이 시엔이 아닌 현존 인물, 곧 우리 이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조혜경의 ‘터치’는 사랑과 신뢰가 멀리 있다고 생각할 때, 꿈이 표류할 때 이 고통스런 질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의 말대로 어떤 사람이 인생의 깊은 골짜기에 진입하여 큰 슬픔으로 절망에 빠지며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확신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내면 활동을 통해 마음이 더 커지고 자비로워졌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이 말은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설득력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처음 받은 슬픔에 잠겨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동병상련의 마음을 품게 되기 때문이다. 상실감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상실감 때문에 타인의 슬픔과 기쁨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더 커지는 셈이다.
조혜경은 이런 일들이 ‘나와 너, 우리’ 사이에 실현되기를 바란다. “우리라는 연대를 통해 고통을 공감하고 함께 나가는 것, … 우리가 서 있는 삶의 자리,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자리임을 알고 상처 입은 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홀로가 아님을 드러내보고자 한다(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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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조혜경, 캔버스 위 혼합재료, 116.7x91.0cm, 2020(그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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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에서 어둠과 빛, 쇠락과 생명, 슬픔과 희망은 대립물이 아니다.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으며 현실의 중심에서 신비한 통합을 이루고 함께 창조한다. 더 깊이 생각하면 이것들은 온전함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우리 가운데는 인생의 봄만을 원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어둠 없는 빛, 고통 없이 삶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에게 진실한 생기를 주지 못한다. 역경의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유연한 마음을 키울 기회나 자비로운 마음을 부양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과 같다.
파커 J. 파머가 ‘역설적 무도(舞蹈)’라고 명명한 이 대립적 요소의 공모는, 놀랍게도 우리를 내적으로 자라게 하고 성숙하게 만들어 준다.
<터치>는 가슴 아픈 사연들을 껴안고 사는 세상에서 인간의 슬픔과 고뇌를 보듬고 치유해주는 하늘의 터치를 묵상하며 제작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만지심 없이는 하루도,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슬픔과 고뇌를 불행으로 인식하기보다, 새로운 삶의 씨앗들이 파종되는 순간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부를 새벽의 노래를 준비하는 것이리라. 조혜경의 작품은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알려준다.
서성록(안동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