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칼럼]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나사렛 예수(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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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V. 고난의 종으로서의 메시아

예수는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비로소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인데 그의 메시아 사명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종교지도자들에 의하여 고난과 거절과 죽음을 당하고 사흘 후에 부활하는 고난의 종 되심을 제자들에게 알리신다.

복음서 저자 누가는 인자(人子, the Son of Man)의 날과 관련하여 인자가 영광 속에 나타날 것을 시사(示唆)한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눅 17:24). 인자의 날이란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지니고 천사들과 같이 재림하실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前)에 인자는 먼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어 이 세대로부터 버림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눅 17:25). 복음서 저자 마가는 예수께서 인자의 고난 사상을 이미 구약성경 읽기를 통하여 알게 되신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막 9:12-13). 세례자 요한의 모습으로 재림한 엘리야도 결국에 예수의 길을 증명해야 했다. 세례자 요한은 이 고난과 죽음의 길을 예수에 앞서 걸어감으로써 예수의 고난의 길을 닦았다. 구약의 구절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시 118:22-23),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시 22:7) 등은 십자가 신학적으로 읽을 때 고난받는 종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VI. 육신적인 생각에 사로 잡힌 제자

베드로는 예수의 고난 예고를 듣고 스승을 붙들고 만류한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 수(首)제자 베드로는 스승에 대한 인간적인 정(情)에 집착하여 고난과 죽음의 길이 자기 스승 예수에게 닥치는 것을 원치 아니했다. 그리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그 시대 군중들 사이에 만연한 영광의 메시아상에 빠져 있었다. 이들은 영광의 메시아가 다윗 왕국의 후예로 와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을 정치적으로 압제하고 있는 로마 제국(帝國)에 대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막강한 힘으로써 로마 군대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에 새로운 신정질서를 세우실 것으로 기대하였다. 이런 관념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가운데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에 대한 기대를 다음같이 피력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눅 24:21). 예수가 부활한 후에도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생각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 군중의 기대란 메시아가 와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로마의 점령군으로부터 해방하고 정치적 해방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을 무력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자들이 당시 열심당원(Zealots)이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때 군중들이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도 예수를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제자들도 이처럼 당시 유대 군중들에게 편만한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사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돌이키시며 베드로를 꾸짖으신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수제자 베드로가 스승을 아끼어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만류하는 것은 인간적인 정(情)으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러한 베드로를 “사탄”(Σαταν, Satan)이라고 규정하고 베드로가 자기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책망하신다. 십자가를 피한다는 것은 인류 구속을 위하여 오신 하나님 아들의 지고한 목적을 파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이러한 꾸짖음은 수(首)제자 베드로가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예수가 그의 수제자를 꾸짖었다는 내용은 초대교회의 창작품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한데 초대교회가 책임 사도를 그처럼 당혹스런 방식으로 묘사할 리 없기 때문이다(당혹성 기준). 이 장면은 복음서 저자 요한이 기록한 예수가 정치적으로 강력한 왕이 되기를 회피하는 다른 본문들과 일맥상통하고 있다(요 6: 13-14).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예수의 인간성은 기도하기를 “아버지여 원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눅 22:42)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인성(고난을 피하고자 하는 본성)의 언약함을 그의 신성의 강함으로 이기셨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인성은 고난과 고통 지기를 싫어하고 피하고자 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여 있는 죄의 장벽을 깨뜨리는 대속의 일은 죄업에 대한 속량의 제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대속의 일을 위하여 나사렛 예수는 도성(道成)인신(人身)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대속의 제물로 드리는 세례의 잔을 마셔야 한다. 이 결정적 순간(kairos)에 예수의 신성은 인성을 성령의 능력으로 신성에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온전한 순종을 감행하신다. 예수는 유대 종교의 중심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VII. 자기 부정(否定)의 제자직

예수는 제자들에게 제자직의 도리를 가르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자기 부정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요, 진정한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는 진정한 자기 부정에서 진정한 자기 발견과 획득이 나온다는 사실을 가르치신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5-26).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 부정을 통해서 진정하게 자기가 긍정되고 획득된다.

십자가의 길은 인간의 신격화 시도에 역행하는 행동이다. 인간의 신격화는 인간이 자신을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교만과 불신앙과 불순종에 기인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십자가의 행동은 자기 신격화를 부정하는 것이며, 자기의 소유와 명예와 권력욕을 부정하는 것이다. 인간이 진흙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자신의 허무성(虛無性)과 허물과 죄책(罪責)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근거이다. 나의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 존엄성의 발견이요, 인간 소망의 근거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개인의 목숨은 천하보다 귀하다는 생명의 존엄사상을 가르치고 계신다. 인간 개인의 목숨이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기에 하나님이 자기 독생자를 주셔서 대속하셨던 것이다. 진정한 신본주의(true theocentrism)는 인간의 존엄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애(true humanitarianism)를 내포하고 있다. 독일의 실존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예수를 소크라테스, 붓다와 공자와 더불어 인류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네 인물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고 올바른 인간상을 추구하는데 기본적인 의미를 지닌 분으로 보았다. 진정한 신은 영광의 길 아닌 고난의 길을 통하여 자신의 거룩한 구속의 섭리를 실행하신다.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인간애가 가장 확연히 드러난 지점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를 대속(代贖, ransom)의 제물로 주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인간애(humanitarianism of God)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기 희생(self-sacrifice of God)이란 인간이 할 수 없고 참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지고한 사랑의 사건이다. 이 지고한 사랑의 사건이 십자가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신구약 성경은 이 사실을 증언하는 하나님의 인간애 사건을 증언하는 책이다.

VIII. 역사적으로 나타난 정치적 메시아 사상

역사적으로 많은 군중들은 고난의 종의 사상보다는 영광의 메시아 사상에 매료되어 왔고, 예수의 사상을 그렇게 오해하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유대의 열심당은 로마 점령새력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그 결과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은 로마군에 의하여 함락된다. 그리고 주후 2세기에는 시몬 바르 코크바(Simon Bar Kokhba)가 반란을 일으킴으로,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로 유배되고, 이 유대 지역의 이름이 팔레스타인이라는 지명을 바뀐다. 이들은 모두 정치적 메시아 사상을 실현하고자 한 자들이다.

예수 이후 근 2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지하동굴인 카타콤(Catacomb)에서 숨어 지내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카타콤(Catacomb)은 헬라어 '카타콤베'('낮은 지대의 모퉁이'란 뜻)에서 유래한 말이다. 1세기부터, 개종한 유대인으로 간주되었던 기독교도들은 종종 로마 영토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바위 무덤에 매장되었다. 성 베드로가 바티칸 언덕에 있는 커다란 공동묘지에 묻혔고 성 바울이 '오스티엔세 길'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힌 것도 이러한 연유이다. 2세기부터, 로마의 기독교도들은 지하에 공동 매장 공간을 두는 유대인들의 풍습을 물려받았다. 카타콤은 지하 동굴에 마련된 기독교 초창기 성도들의 피난처요, 예배처인 동시에 공동 지하 묘지를 뜻한다. 깊이 10-15m, 폭 1m, 높이 2m 정도의 지하 통로를 종과 횡으로 뚫고 계단을 이용해 여러 층으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직분별로 묘실이 구분되어 있기도 하며, 벽면에는 물고기 그림 등 많은 벽화가 새겨져 있다. 나폴리, 소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많은 카타콤 유적지가 발견되고 있는데, 특히 로마 아피아 가도 주변의 카타콤이 유명하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콘스탄틴 황제의 공인이 있기까지 근 2세기 동안 로마의 박해를 피하여 이 지하공동묘지(Catacomb)에서 신앙생활하였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귀의하면서 로마는 주후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기독교를 공인하게 된다. 로마제국이 기독교화 되면서 기독교는 이 지상 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제도적 교회로 대체하였다. 스위스의 개혁신학자 브룬너(Emil Brunner)가 말한 바 같이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은 한편으로는 기독교가 서구 역사의 주류가 되도록 하는 크나큰 영향을 끼치도록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가 지닌 영성을 제도화함으로써 교회의 영적 공동체 모습을 변질시킨 것도 사실이다. 11세기 성지 예루살렘이 이슬람에 의하여 함락되자 성지 회복을 목적으로 당시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요청으로 서구 기독교계가 군대를 동원하여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다. 4차례나 있었던 십자군 전쟁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 지상에서 추구하려는 영광의 메시아 사상에 지배된 것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에는 재세례파들이 정치적인 혁명을 일으켜서 독일 뮌스터(Münster)에 새 예루살렘을 세우고자 하였다. 19세기에는 자유주의 신학이 이 세상에 인간의 이성과 도덕에 의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면서 예수의 사상을 인본주의적 평화의 나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는 해방신학과 혁명신학이 하나님 나라를 정치적인 민중해방을 통하여 이 지상에 실현하고자 하였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 당시 군사정권에 대항하여 사회적 인권과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민중신학이 시작되었다. 당시 권위주의적 군사정권 아래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민중신학은 공헌을 하여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관하여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베드로가 한 예수에 대한 인격적 신앙고백보다는 사회적 관심에 치중함으로써 교회의 정체성 문제를 야기시켰다. 더욱이 오늘날 한국에서 민주화가 실현된 이후 민중신학은 한계를 맞고 있다. 그리고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은 집단적으로 구국기도회, 각종 궐기대회를 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나사렛 예수의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사회정치적인 운동을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의 반석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 반석 위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워지고 교회는 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이 지상 위에서 사랑과 평화의 헌신의 조용한 변혁적 누룩운동을 통하여 단편적(斷片的)으로 이루어진다.

IX. 종교 개혁자 루터를 통한 베드로 신앙고백의 새로운 발견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의 열쇠는 제도적인 열쇠가 아니라 신앙의 열쇠요 약속이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로마 천주교는 이것은 베드로가 제도적으로 받은 것이고 그 이후 로마 천주교가 이를 교황이 세습하는 것으로 주장하여 왔다. 이것이 중세 천년 동안의 신앙적 암흑기인 것이다. 로마 천주교 신부(神父)였던 루터는 스스로 경건에 힘쓰다가 “자비로운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피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하여 노력하다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을 통하여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 근 1천 5백년동안 묻혀있었던 신앙고백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칭의(稱義, justification)는 인간의 종교적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나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선사된다. 그것이 루터가 발견한 종교개혁의 근본착상이었다.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미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다시 발견한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칭의(稱義, justification) 신앙은 바로 예수가 메시아이심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신앙고백 위에 먼저 우리 개인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제도적 교회가 진정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제도적 교회는 그 안에 역사적 예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신앙고백하는 신자들을 유형적으로 그리고 무형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 이신칭의의 신앙을 고백하는 종교개혁 전통의 교회는 ‘역사적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져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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