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크 신학포럼
▲순서자들 모습. 왼쪽부터 임우성 목사, 박응규·정일웅 교수, 총평 박종구 목사, 대독한 최원호 목사. ⓒ이대웅 기자
‘교회사로 보는 박조준 목사의 설교와 목회신학’을 주제로 한 제2회 웨이크 신학포럼이 22일 오후 서울 노량진 CTS 아트홀에서 (사)국제독립교회연합회 및 웨이크사이버신학원 주최로 개최됐다.

이날 포럼에 앞선 개회예배에서는 웨이크 사무총장 및 신학원 이사장 임우성 목사 인도로 김명기 목사(국민일보 목회자포럼 사무총장)의 기도, 최원호 목사(은혜제일교회)의 성경봉독 후 신학원 석좌교수 민경배 목사가 ‘소명의 천로역정(행 20:24)’을 제목으로 설교했다.

민경배 목사는 “박조준 목사는 한국교회 주류인 복음주의 보수 전통의 서북 장로교회를 전승한 한경직 영락교회의 계승자였다. 서북 장로교회는 역사상 한국교회 2/3을 차지하던 주류였고, (영락교회는) 아직도 장로교 대표교회로서 위치를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며 “해방 후, 6.25의 격동과 고난 중에도 전통과 실상을 확고하게 보존하고 빛낸 것이 영락교회요, 그 설립자가 한경직 목사였다”고 말했다.

민 목사는 “박조준 목사는 한국 기독교 복음주의의 연수(淵藪)인 서북 출신이요 서울 문리대와 장신, 美 프린스턴 출신으로, 한경직 목사의 뒤를 이어 당시 최대 교회였던 영락교회를 37세에 맡았다”며 “더구나 그는 1977년 미군 철수 위기 때 분연히 나서 美 고위 관리와 단독으로 만나 철수 계획을 강력하게 반대하며 구국의 대역을 성취했던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박 목사는 한국교회 복음주의 목회의 대표요 복음적 설교의 상징이다. 그의 설교에는 복음의 선포가 파도처럼 넘쳐 다가온다. 그 정묘(精妙)와 감동은 성서 전체에 대한 관주(貫珠) 박식에 근거가 있다”며 “그 설교의 음조(音調)에는 장대와 온유가 조화(調和)하는 정상(頂上)의 수사(修辭)가 울린다. 그 선포는 때로 예언자의 경고로 엄부(嚴父)이지만, 때로 자애(慈愛)의 억양(抑揚)은 어머니의 소정(素情)이다. 거기 천국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고 했다.

웨이크 부서기 박순형 목사의 헌금기도 후 축사한 고만호 목사(여수은파교회 원로)는 “박조준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위로가 되고 꿈과 소망이 생긴다”며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느껴지고, 구령에 대한 열정이 생긴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말씀의 위기다. 강단의 위기에서 모든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교회 개혁과 연합의 선구자

이어진 포럼에서는 먼저 정일웅 박사(총신대 전 총장)가 ‘한국교회 개혁과 교회 연합의 선구자로서 박조준 목사’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면서, 그가 평생 연구해 온 17세기 교육가 및 종교개혁가 아모스 코메니우스(1592-1670)와 비교했다.

정일웅 박사는 “한국 사회 변화의 극심한 소용돌이 가운데, 한국교회는 어떤 역할을 감당했는가? 먼저 6.25 전후 분단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한 북한 기독인과 주민들과 함께 전쟁 상처 극복과 가난에 시달린 국민을 위로하고 영적으로 돌보는 일에 크게 공헌했다”며 “1960년대에는 정부 주도로 가난 극복과 경제 부흥을 위해 노력한 가운데, 교회는 전 국민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기회로 삼았다”고 분석했다.

박조준 목사
▲박조준 목사. ⓒ크투 DB
정 박사는 “한국교회는 개개인 영혼 구원뿐 아니라, 가난 극복을 위해 믿음과 용기와 희망과 꿈을 갖게 하는 일에 국민 곁에 함께 있었다”며 “그러나 반성해야 할 일도 많다. 구원신앙 이해가 개인 영혼 구원에 다소 한정됐다. 이에 1980년대 일어난 정치권력 투쟁과 관련, 복음의 영향력을 사회에 적극적으로 전파하지 못했다. 나아가 참된 신앙양심으로 교회 개혁과 연합에 한마음이 되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그는 “이러한 가운데 박조준 목사는 43년의 긴 목회 동안, 한국교회 개혁과 교회연합 정신 등 2가지가 돋보였다. 먼저 박 목사는 한국교회 개혁을 설교하고 실제로 행동한 선구자였다”며 “박 목사의 예언자적 설교는 회개와 고침과 개선이 함께 전제된 개혁적 성격을 지녔다. 그런 점에서 예언자적 설교자였고, 실제로 개인과 교회 공동체의 책임을 일깨울 뿐 아니라 교회의 잘못된 제도를 직접 고치는 선구자였다”고 했다.

정 박사는 “박조준 목사는 1970년대 후반 주한미군 철수 위기 가운데 반대 연합기도회를 개최했고, 미국 교회 지도자와 정치인들을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신군부 세력을 향해서는 불의를 외치며 행동했다”며 “여기서 박조준 목사는 교회 개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교뿐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는 기꺼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참된 제자이면서, 독일 히틀러에 대항했던 젊은 신학자 본회퍼와 맞먹는 행위”라고 밝혔다.

둘째로 교회연합 정신과 리더십에 대해 “박조준 목사는 1990년대 한기총과 NCCK로 나뉜 연합기관에 대해, 교회 연합의 참된 화두를 가장 먼저 사용한 연합정신의 선구자였다”며 “이후 1995년 독립교회연합회를 발족시키는 등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새로운 교파를 만든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가 복음 전파와 교회 사역 독립권을 확보해, 총회·노회의 교권이 지나치게 간섭하지 못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정일웅 박사는 “17세기 교육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코메니우스는 그 시대 떠오르던 계몽주의·경건주의 등을 섭렵해 통전적 새로운 신학 사상으로 전환기에 처한 당대 유럽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려 했고, 교회 연합을 강조해 무너진 유럽 기독교를 새롭게 세우려 했다”며 “박조준 목사가 보여준 교회 개혁과 연합 정신도 코메니우스의 정신과 맞닿은 것이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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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호 목사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말씀 그대로 대언하는 선지자

나사렛대 전 총장 임승안 박사는 ‘박조준 목사, 그 삶의 이야기 세 편’이라는 제목으로 나섰다. 그의 발표는 최원호 목사가 대독했다.

임승안 박사는 “박조준 목사의 타고난 기질은 이 혹독한 세상을 살기에 몹시 힘겨운 성품과 기질로 보인다. 그러기에 모질고 벅찬 삶이었고, 지금도 진행형인 것 같다”며 “그러함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범사가 협력해 항상 선하게 이루어짐을 믿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며 승리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노라 고백했다”고 소개했다.

임 박사는 “박조준 목사는 기질상 청렴결백한 목회자로 보인다. 목회에만 전심전력했고, 특히 설교 사역에 집중했다. 자연히 말씀과 삼위일체 하나님과는 가까워졌지만, 반대로 총회와 교단 목사들과는 시간적·공간적으로 가깝게 지낼 수 없었다”며 “심지어 담임하던 교회 장로들은 물론, 다른 직분자들과도 인간적 교제를 왕성하게 하지 않았기에, 자연히 사람 관계에 소홀한 것처럼 보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더욱이 군사정권 하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의 초청을 받을 때에는 더 단호하게 거부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주일 설교를 비롯한 많은 예배시간에 성도들과 나눌 설교를 위해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 묵상하고 가슴이 뜨거워질 때까지 성경 말씀을 떠나지 않았다”며 “성도와 설교자를 위한 말씀으로 들려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이러한 박 목사에게 세상 명예와 부귀와 권세는 한 포기 풀잎에 불과했다”고 진단했다.

임 박사는 “박조준은 ‘목사’보다 ‘목회자’를 선호하는 듯 싶다. 제도권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대언하는 선지자이다. 동시에 길 잃고 방황하는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를 잠시 뒤로 하며 발바닥이 해어지고 먼지와 땀이 범벅돼 양의 이름을 소리 높이 부르는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다”며 “오늘날 ‘한국교회’가 침몰하는 근본적 이유 가운데 중요 원인은 이러한 ‘박조준’을 찾기 힘들기 때문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임승안 박사는 “박조준 목사는 ‘목회자들의 목회자’, 곧 미국 교회 전통적 사고대로 ‘감독(Bishop)’ 직분을 수행하신다. 힘겨워하는 목회자들이 ‘한 마리 양(마 18:12-14)’으로 보이기에,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도록 돌보는 목자”라며 “박 목사는 한국교회를 아파하고 책임을 통감하며, 말씀에 근거해 개혁·재건·회복하고 싶은 심정이 가득하다. 때문에 후배 목회자들과 고민하며 나누는 시간, 목회나눔 설교 33편을 하신 것”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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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규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목회자가 지향해야 할 지표

끝으로 박응규 교수(아신대)는 ‘박조준 목사의 목회 사역과 한국 교회사’를 제목으로 박 목사의 사역이 교회사적으로 공헌한 점에 대해 발표했다.

먼저 ‘복음전도의 우선성과 사회적 봉사를 통한 빛과 소금의 역할 감당’에 대해 “박조준 목사에 의하면 사회가 타락해서 교회가 타락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타락하면 사회가 타락한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하고, 그러려면 먼저 목사가 바로 서야 한다”며 “이러한 신학적 특성과 목회철학이 복음 전도에 우선성을 두면서도 다양한 사회적 관심과 봉사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도록 견인했다”고 했다.

둘째로 ‘복음적이고 예언자적 설교를 통한 영향력 확산의 모델 제시’에 대해선 “박조준 목사의 올곧은 설교인으로서 삶과 사역은 초대교회 ‘황금의 입을 가진 설교자’로 알려진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을 연상케 한다”며 “박조준 목사는 누구보다 들리게 설교하는 대가였지만, 들어야 할 말씀을 예언자적으로 외쳤다. 그러다 고난도 많이 당했지만, 설교의 영향력이 여전히 살아 있다. 그는 설교자로서 ‘시대의 파수꾼’이라는 정체성을 평생 지켰다”고 평가했다.

셋째로 ‘교회개혁과 교권적 장로교 제도 혁신을 통한 새로운 교회연합운동 전개’에 관해 “교회 개혁과 교권적 교단 제도 혁신을 위해 1995년 ‘독립교회연합회’를 발족하고 1998년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KAICAM)’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으로 봉직했다”며 “이후 국제독립교회연합회를 결성해 교단 간섭과 통제와 정치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는 운동을 계속했다”고 전했다.

끝으로 ‘목회자 및 설교자 교육과 갱신을 위한 헌신’으로는 “후배 목회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평생 쌓아온 사역 실천 능력과 자질을 기꺼이 전수했다”며 “지난 60여 년 동안 박조준 목사의 목회 사역과 삶은 한국교회와 목회자가 지향해야 할 지표(指標)가 무엇인지를 제시했다”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