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문제에 있어 금전적 배상보다는 도덕적 우위를 택한 것은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다.
올해 ‘김대중·오부치 선언’ 25주년 대한민국은 선진국 지위에 올라선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반일 종족주의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일본을 대해야 한다.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3년 3월 16-17일 일본을 방문하여 기시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그동안 비정상이었던 양국 관계를 정상으로 복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3월 6일 한일 관계 정상화의 최대 걸림돌로 꼽혀 온 징용 배상 문제를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푸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해법은 ‘강제 징용 해법 입장’에서 장기 간 경색되어 온 한일 관계에 새로운 미래로 가는 모멘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어려운 결단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리하여 5월 7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했다. 이는 지난 3월 윤 대통령 방일 이후 52일 만에 이뤄진 기시다 총리의 답방으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25주년이 되는 올해 양국 정상이 빈번하게 상대국을 오가는 ‘셔틀 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됐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내놓은 징용 해법이 완벽할 순 없다. 일본 피고 기업을 대신해 국내 재단이 변제 책임을 떠안는 방식 자체가 일반 국민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국이 있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다른 해법이 없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문제를 방치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북핵 위협이 심각해진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2012년 대법원은 강제 징용 배상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됐다는 종전 판결을 뒤집고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해석을 내렸다. 이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연속 선상에서는 내릴 수 없는 판결이었다. 이러한 대법원의 논리는 국제법의 논리를 모르는 운동권 국수주의적 판결이요 국경 밖에선 안 통하는 우물 안 법리(法理)다.

유럽연합(EU)은 한국 정부의 해법에 대하여 “한일 간 양자 관계를 개선하고 미래 지향적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발표된 중요한 조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수미 테리 윌슨센터 국장과 맥스 부트 칼럼니스트는 3월 7일(현지 시각) WP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반일(反日) 감정이 한국 정치에서 여전히 강한 힘으로 남아 있지만 윤 대통령은 오랫동안 곪아온 일본과의 역사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용감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며 “관계 개선에 성공한다면 그간 걱정스러웠던 한일 관계에 희망찬 새 장을 쓸 것이고 윤 대통령은 용기 있는 인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했다.

샬롬나비는 윤석열 정부의 미래지향적 징용 배상 해법을 환영하면서 다음같이 천명한다.

1.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와 일본 방문 정상회담 및 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정부 배상방안은 그동안 꼬인 한일관계의 물꼬를 텄다.
각국 법원이 타국과의 분쟁에서 ‘애국적 판결’을 남발할 경우 국제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조차 법적 근거가 소멸됐다고 판단한 징용 배상에 일본이 응할 가능성은 0%다.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기대할 근거도 없다. 징용 기업 자산을 현금화한들 현재까지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 15명에 대한 배상액을 채울 수 있을지, 또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도 불투명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3월 8일 “한국 정부의 강제 징용 해법은 대법원 판결과 국제법, 한일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했다. 3월 16-17일 윤대통령의 일본 방문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은 양국의 협력적 관계를 확인, 한국의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구상권 청구 포기, 일본의 수출 규제,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복원 등 실타래처럼 얽힌 양국 현안을 포괄적으로 풀어낸 의미가 있다

2. 문재인 정부의 짐을 윤석열 정부가 받아 풀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 징용을 우리가 선도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결심한 이유도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야기한 국내 사법 문제라는 인식 때문이다. 서두른 것은 일본 징용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를 대법원이 언제 결심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법원이 집행을 미뤄 놓은 현금화를 결정하는 순간 한일 관계는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2015년 12월)를 뒤집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일본 징용 기업의 자산 현금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문제만 인정하고, 징용 문제 해결에 나서 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대신 나서서 중재안을 냈을 때도 눈치만 보다가 여론이 심상치 않자 등을 돌렸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뒤집는 것을 보면서 일본은 한국 정부와의 합의는 언제든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며 불신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각종 중재안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래서 윤 정부가 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정부 배상을 표명한 것이다. 이는 윤대통령이 선도적으로 용기 있게 결단한 미래지향적 외교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주할지 모른다, ‘삼전도 굴욕’ ‘일본 하수인’ 같은 야당 대표의 극언은 국가 이익보다는 반대를 위한 당략적 발언이다.

3. 한일관계는 우리 세대보다는 미래 세대를 위하여 결단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일제 징용 배상 방안(제3자 변제)을 밝히고 한일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국민 과반은 부정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KBS·한국리서치가 7~8일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부 발표에 대해 ‘잘못한 결정(53.1%)’이라는 응답이 ‘잘한 결정(39.8%)’이라는 응답보다 많았다. 특히 20대의 경우 긍정이 과반이었다. 20대의 51.2%가 ‘잘한 결정’이라고 답했다. 30대도 36.5%가 잘했다고 답해 40대(23.5%), 50대(21.5%)와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외교관계는 국제 관례에 따라서 해결해야하는 만큼 윤 정부는 바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4. 금전적 배상보다는 도덕적 우위를 택한 것이 도덕적 우위 국가의 위상에 맞다.
일제 침략의 고통은 겪은 중국은 1973년 중일 수교 1년을 앞두고 진행된 일본과의 청구권 협상에서 배상액에 집착하기보다는 명분을 택한 일화가 있다. 당시 청구권 협상을 진행한 중국의 영원한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는 과감하게 청구권 배상을 포기하고 도덕적 명분을 선택했다. 당시 저우언라이가 강조했던 용어가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이덕보원(以德報怨)이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것은 하수이며 덕으로 원한을 갚는 것이 상수다. 도덕적 명분과 우위를 점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과거를 묻지 않고 미래지향적으로 협력 파트너로 삼는 것은 도덕우위의적 접근이다.

5. 오늘날 한국은 선진국 위상에 올라선 국제적 위상으로 보다 전향적으로 일본을 대해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는 태도는 세계 10위 경제국이며 한류라는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21세기의 문화 아이콘을 보유한 한국에 맞지 않는다.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역할을 천명한 현 한국 정부의 위상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두 나라에 모두 반일, 반한 감정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세력이 있다. 하지만 국민 교류는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올해 들어 일본을 찾은 관광객 3명 중 1명이 한국인이다. 한국에선 ‘슬램덩크’ 같은 일본 영화가 인기를 끌고, 일본 가요 차트에선 한국 노래가 상위권이다. 한국은 전자부문과 배터리에서 일본을 추월했다. 이러한 위상에서 한국은 더 이상 과거에 매달려 일본과 대립하는 것은 국익에도 맞지 않다.

6. 오늘날 일본은 예전 군국주의 일본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우방이다
중국이 시진핑의 당정군 일인 체제로 나아가며 한국의 쿼드 참여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를 표명하는 시대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오늘날 일본은 더 이상 예전 군국주의 일본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우방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의 직접적 상대국이요, 대만 침공과 남중국해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중국의 안보 위협에 직면하여 우리와 함께 협력해야 할 자유우방이다. 이제 한일관계는 종족적 민족주의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본과의 화해와 협력은 우리의 자유를 지키는 길이다. 이제 양국은 국제적으로 자유 안보를 위하여 공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은 한국이 사실상 G8 반열에 올랐다는 점을 인정하고, 우리 역시 일본이 세계적 리더 중 하나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참에 우리의 G8 진출과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에 공동 보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7. 국제 사회도 윤 정부의 해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제3자 변제’ 해법은 한일 관계 정상화와 일본 문화 수입 개방의 결단을 내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업을 계승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해법에 대해 미 정치권과 언론, 싱크탱크 등 조야(朝野)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정치의 용기 있는 인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기고가 실렸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징용 합의가 한일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이득이 될 것”이라고 했다. 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와 크리스토퍼 존스톤 일본 석좌도 3월 6일 발표한 논평에서 “중국의 군사적 굴기, 북한의 끝없는 탄도미사일 도발에 맞서 양국이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두 석좌는 이번 징용 배상금 해법 발표가 박근혜 정부 임기 중반 발표됐던 위안부 합의(2015년 12월)와 달리 윤 대통령의 임기 초반에 나온 점도 주목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EU, 영국, 독일, 호주, 캐나다도 환영 의사를 밝혔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기부하겠다고 하였다.

8 이제 한일관계는 전적으로 日 호응에 달려 있다. 일본은 독일의 사죄에서 배워야 한다.
국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쓴 윤 대통령의 방일이 양국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려면 일본의 호응이 필수적이다. 기시다 총리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는 것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식민 지배 당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많은 분들이 매우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데 대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사죄와 반성’을 언급하는 대신에 강도 낮은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한국 사회가 바라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왕복 외교 복원으로 최근 1년간 동아시아에서 가장 뚜렷한 변화를 만들어 낸 주역들이 됐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고만 할 게 아니라 기시다 총리은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을 밝혀야 한다. 사과는 피해자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해야 진짜 사과가 된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시 유대인 가해 및 학살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고 실천하는 독일을 배워야 한다. 일본 기업이 징용피해자지원재단에 참여하는 길도 아직 열려 있다. 윤 대통령의 3월 17일 방일이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이제 전적으로 일본에 달렸다. “일본도 이러한 우리의 노력에 성의 있고 진심 어린 자세로 호응해야 한다. 이를 통해 양국 간 진정한 미래 지향적 우호 협력 관계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셔틀 외교 복원으로 한일 양국 정상은 한일 신(新)시대를 열었던 김대중-오부치 관계를 재현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998년 DJ·오부치 선언은 “한일 관계를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며 양국 관계를 획기적으로 도약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2002년 고이즈미 일 총리의 방북, 2003년 북핵 6자 회담도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일 양국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주변 국가를 위협하는 해양굴기(海洋崛起), 북한의 핵·미사일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 더욱이 한일 양국은 경제 위기, 인구 감소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 얽매여 있을 시간이 없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한국의 반일(反日) 좌파와 일본의 혐한(嫌韓) 우파에게 휘둘리지 않고 미래로 나가야 한다. 윤 대통령이 국내 정치의 부담을 안고 용기있게 선도한 한일 관계 개선 노력에 기시다 총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성의와 지혜를 보여야 한다.

9. 한미일 공조로 중국의 대만 침공과 북한 핵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비중을 가진 나라다.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세계적 규모의 경제를 갖고 있고 G20과 OECD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런 나라가 과거사 문제를 갖고 해묵은 갈등을 계속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보기에도 바람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바탕에서 국제사회의 환영 성명이 나오는 것으로 본다.
윤 정부가 징용 문제에 발목 잡혀 있는 양국 관계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고 본 것은 올바른 판단이다. 북핵, 중국 패권주의, 반도체·에너지 문제 대응 등 양국 협력은 더욱 절실해지는 상황이다. 자유·인권·법치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한·미·일이 3국의 협력을 강화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촉진하는 전기를 마련하기를 바란다. 12년만에 셔틀 외교를 복원한 한국과 일본 정상은 5월 19일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다시 만나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찾아 참배하고 양국간 수십 년간 지속된 도전 과제들을 심도있게 상호적으로 논의하고 이번 계기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자유와 연대 협력의 새 시대를 열기를 바란다.

2023년 5월 22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