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목사 순교기념사업회’ 창립총회 및 출범식
▲15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김동식 목사 순교기념사업회’ 창립총회 및 출범식이 북한순교자기념사업회 주최, 선민네트워크 주관으로 열렸다. ⓒ송경호 기자

탈북자들을 돕다가 2001년 북한에 피랍돼 사망한 故 김동식 목사를 기리는 ‘김동식 목사 순교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이 기념사업회 창립총회 및 출범식은 15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북한순교자기념사업회 주최, 선민네트워크 주관으로 열렸다.

1부 예배는 김기용 권사(6.25 납북크리스천가족회 회장)의 기도, 박명수 목사(서울신대 명예교수), 장상익 목사(북한이탈주민사랑협의회)의 축도로 진행됐다. 출범식에서는 김영일 목사(북한순교자기념관 관장)의 사회와 국민의례에 이어 김규호 목사(선민네트워크 대표)가 인사말을 전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 온 고인의 부인
이명박 전 대통령, 소식 듣고 위로 전해
약 15년간 故 김 목사 유해 송환 노력

15년 넘게 故 김동식 목사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고 유해 송환을 위해 노력해 왔던 김규호 목사는, 고인의 부인 주양선 선교사에 대해 전하며 그간의 활동을 소개했다.

김 목사는 “주 선교사님은 고인의 유해라도 찾고자 하는 마음에 곳곳에 요청했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 왔다. 여력이 안 됐지만 외면해선 안 되겠다는 마음의 울림이 있었고, 서경석 목사님에게 말씀드렸더니 더 적극적으로 앞장서 주셨다”고 했다.

이어 “당시 故 조용기 목사님, 김삼환 목사님, 故 최성규 목사님 등에게 직접 편지를 쓰고 서명을 받아 이명박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대통령이 깜짝 놀라 미망인을 위로했고, 이후 국회에서 피랍일인 1월 16일을 기념해 추모예배를 드려 왔다”고 했다.

그는 “몸이 편찮아서 미국 요양원에서 지내던 주 사모님이 건강을 회복해서 한국에 들어 와 순교기념사업회를 계획하게 됐다. 이후 소중한 동역자 분들이 힘을 더해 이 자리를 만들게 됐다”고 전했다.

김동식 목사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돕는 사역을 펼치다 2000년 1월 16일 북한에 피랍돼 이듬해인 2001년 사망한 故 김동식 목사. 오른쪽은 그의 아내 주양선 선교사 ⓒ주양선 선교사 제공
김동식 목사의 약력을 전한 도희윤 대표(피랍탈북인권연대)에 따르면, 故 김 목사는 1947년 4월 15일 경남 창원시 마산에서 출생, 1984년 고신대학교를 졸업하고 ‘작은자교회’를 섬기다가 1995년부터 중국에서 탈북민 선교사역을 펼쳤다.

본인 스스로 장애인이던 김 목사는 중국에서 장애인들을 돕다가 탈북자들을 만나,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듣고 한국으로 데려오는 사역을 했다. 그러다가 2000년 1월 16일 중국 연길에서 식사 후 나오던 길에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됐다. 이듬해인 2001년 감옥에서 순교했으며, 2005년 피랍탈북인권연대를 통해 그 사실이 전해졌다. 김 목사의 유해는 북한 평양근교 상원리 소재 조선인민군 91훈련소 위수구역 내에 안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경원 전 의원 “북한선교 순교자들 기려야”

김성호 목사(북한순교자기념사업회 대표)는 축사에서 “20년간 NGO 활동을 하면서 명분과 이를 이끄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김규호 목사님이라면 이 일을 잘 이뤄낼 것으로 기대한다”며 “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중단될 수밖에 없다. 많은 관심과 후원을 요청드린다”고 했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도 축사를 전해 왔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시절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던 나 전 의원은 “북한 인권과 선교를 위해 힘쓰다 어려움을 당한 선교사님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며 “이번 순교기념사업회를 통해 북한 선교를 위해 애쓰다 순교한 분들을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억류된 선교사들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동식 목사 순교기념사업회’ 창립총회 및 출범식
▲출범식 이후 기념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송경호 기자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선언문에서 “김 목사를 납치한 북한 당국은 온갖 위협과 회유로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전향하고 탈북자들을 도운 과거를 회개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며 “그럼에도 끝까지 사상 전향을 거부한 김 목사는 음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80kg이던 몸무게가 35kg까지 줄고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영양실조로 순교했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선교와 복음통일을 위해 기도해 온 북한인권 관련 기독교시민단체들은 일사각오로 임한 김동식 목사의 고귀한 북한선교의 열정과 업적을 기억하고 그의 숭고한 순교정신을 함양해야 하는 일을 진행하고자 <순교자 김동식 목사 기념사업회> 설립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