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간병하다 학교도 못 가
칼로 찌르던 아버지 은혜로 용서
“네가 천국” 유언하고 예수 영접
원수 사랑, 한국교회가 놓친 영성

서상복
▲서상복 목사는 책에서 “천국 갈 사람은 머문 자리인 결혼 생활에서도 천국으로 산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결혼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면 안 된다. 하나님 나라를 이뤄야 진짜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은 ‘내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갈아타는 환승 열차다.”

결혼하는 이들도, 결혼을 꿈꾸는 이들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가정 자체가 갈수록 줄어드는, 가정의 진정한 위기다. 이러한 시대에 “결혼은 행복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선언한 책이 등장했다. 해피가정사역연구소 서상복 목사(58)의 첫 저서 <결혼 플랫폼>이다.

<결혼 플랫폼>은 결혼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어떻게 결혼을 통해 행복이 오는가? 결혼의 목적이 무엇인가? 등을 선배로서 편안한 문체로 알려주는 책이다. 특히 ‘결혼 예배’의 성경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연애와 결혼, 부부 관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저자는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화율이 낮은 데다 ‘가정사역자’도 전무한 영남 지역에서 척박한 환경을 뚫어가며 교회와 학교, 개인과 단체 등을 망라해 사역하고 있다. 다음은 가정의 달 5월 들어보는 서상복 목사의 가정 이야기.

-가정사역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안동에 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지금의 한센병(나병) 환자이셨고, 아버지는 가출했습니다. 초등학교를 못 다니고 산골에서 할아버지와 개간을 하면서 살았어요. 학교는 한 달 정도 갈 수 있었고, 6년간 할아버지를 돌봐야 했습니다.

그러다 3학년 때 8km 떨어져 있는 교회를 처음 갔어요. 당시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집이 7km일 정도로 외딴 산골에 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한센병이어서, 폐가 같은 집에 살았어요. 어머니는 일거리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셨지요.

교회에 갔더니, ‘사람마다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했어요. ‘내가 왜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할까? 할아버지는 왜 하필 한센병에 걸렸을까?’ 생각하는데, 성경 속 예수님께서 한센병 환자를 만지시는 장면이 나왔어요. 그때부터 몸은 의사들이 치료하니, 저는 마음과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할아버지 목욕을 시키는데, 그때부터 하나도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한센병은 살아 있는데 몸이 시체가 되어가는 병입니다. 찔러도 아프지 않아요. 그처럼 이 시대가 창조주를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할 수 없는 병이 한센병입니다. 그때 할아버지의 병과 그런 사람들 마음의 병이 같게 느껴졌어요.

창조주를 모르니, 가족들도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가정사역이 뭔지도 몰랐지만, 그런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싶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저를 불쌍히 여겨 주셨어요. 제가 학교를 안 가니까, 건빵을 한 달치 모아서 산꼭대기까지 올라와 갖다 주셨어요. ‘물 한 잔 다오. 결석 처리 안 할 테니, 중학교 잘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저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선생님이 동료 선생님들에게 ‘상복이는 학교 온 날을 결석한 날로 표기해라. 우리가 뭔데 쟤를 중학교에 안 보내나’고 하셨답니다.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중학교 때 할아버지를 소록도로 모셨어요. 강원도 탄광에 있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다시 뭉쳐서 살게 됐습니다. 새벽기도를 다녀오면 아버지가 식칼로 찌르려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알콜중독, 성중독, 우울증, 조현병, 공황장애, 화병, 감정표현 불능 등 정신질환 11개 정도를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일중독도 있어, 새벽부터 일어나 나가셨어요(웃음).

이런 아버지들이 많았던 시대입니다. 그런 핍박과 연단을 받으면서 모든 상담 케이스를 다 보게 하셨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밉지 않았어요. 주무시면 이불을 덮어 드렸어요. 돌아보면 그때 왜 그랬을까 싶은데, 성령님께서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셔서 저도 불쌍히 여기게 되는 ‘관계의 영성’이 임한 것 아닌가 합니다.”

결혼 플랫폼
▲결혼 플랫폼(서상복 | 글과길 | 340쪽 | 18,000원).
-들어보니 가정사역에 딱 맞는 분 같습니다.

“현실에서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한국교회가 놓친 영성이 아닐까요? 칼에 찔려도 왜 아버지가 밉지 않았을까요. 제가 따로 노력한 것도 아니었어요. 용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같습니다. 저절로 아버지가 좋아졌어요. 스데반이 돌에 맞으면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했던 장면이 이해가 됐습니다.

아버지는 71세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돌아가셨어요. ‘네가 천국이다’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저를 핍박했던 아버지 입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경상도에는 저희 아버지보단 낫지만 비슷한 분들이 많아요. 겪어볼 일을 다 겪고도 행복해 보이니, 사람들이 저를 좋아합니다.

제 가정사는 제 가정사역의 근원적인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재능이나 기술을 넘어, 과거 누구보다 불행했지만 지금 더 행복한 제가 바로 복음의 증거 아닐까요. 이것이 에너지이고 설득력입니다.

이후 한동대 상담대학원과 고신대 기독교교육학 박사과정을 거쳤습니다. 가정사역만 하다 보면 자칫 이단이나 이상한 논리에 빠질 수도 있지만, 학교에서 정통 신학을 제대로 배웠습니다.

가정사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는 20여 년 간 교사로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교사를 하면서 계속 가정사역을 했던 것입니다. 이후 1대 가정사역자들인 송길원·이기복 교수님께 배워서, 2세대 평신도 가정사역자가 됐습니다.

방학 때는 풀타임, 학기 중에는 저녁마다 상담을 했어요. 학교에 있어도 이웃부터 동료 교사, 부모나 아이들이 자꾸 찾아왔습니다. 생활부장이었는데, 아이들이 자꾸 오니까 교장선생님이 ‘너는 애들 상담해 줘라’고 결국 밀어주셨어요. 교사를 하면서 대학원 5곳에 다녔고, 상담 자격증을 11개 취득했습니다. 상담이 너무 많아져서, 결국 학교를 그만둔 지 10년째입니다.

15년 안수집사, 15년 목사로 총 30년 간 가정사역을 하다 보니, 평신도와 목회자 사이 균형을 갖게 됐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에게 ‘평신도 시절’이 없어요. 안수집사로 사역할 때는 홀대받은 적도 많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사례도 훨씬 적었어요(웃음). 저녁예배에 강의하러 가면, 담임목사님과 인사를 나눈 적이 1/3 정도뿐이에요. 만인제사장설을 외친 마르틴 루터의 후예인 한국교회가 이래선 안 됩니다.”

자녀와 불화, 복음 인격화 못해서
결혼 회피, 교회가 잘못 가르쳐서
결혼 예배, 예수님이 중심 되셔야

-코로나 때 상담을 어떻게 하셨나요.

“요즘 주로 하는 상담이 ‘중독’입니다. 이제 각 교회 담임목사님이 상담을 배워서 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갔다고 봅니다. 사례가 너무 독특하고 어려워졌어요. 옛날처럼 잘 듣기만 해도 좋아지는 수준이 아닙니다. 전문가가 아니면 손도 못 댈 부분들이 많아졌어요.

1등만 알아주는 세상에서 생존 경쟁을 하고, 모든 것이 경제 논리로 돌아가니, 교회 안에도 그런 사상이 들어왔어요. 거기서 밀려난 사람들이 병들고 있습니다. 선교사·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은혜가 없어요.

코로나 때 상담이 20배쯤 늘었어요. 코로나 전에 많았던 세미나나 강의는 확 줄었지만, 그래서 여전히 바빠요. 목회자와 선교사 상담이 늘어났어요. 사역이 힘들고 어렵다 보니 가정에서 숨겨왔던 문제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좀 더 복잡해진 상담 내용을 토대로 책을 내게 됐어요. 일반인 상담도 3배 정도 늘었습니다.

목사님, 선교사님들께 상담을 하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분들이 잘 모르세요. 예수님 때문에 운 적도 없어요. 그러니 힘들어지면 아내에게 함부로 하게 되지요.

목회자 자녀들과 캠프를 했는데,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다 상태가 안 좋았어요. 아버지가 너무 싫은 사람 손 들라고 했더니, 80%가 들어요. 어머니도 50% 들었어요. 엄마보다 아빠를 2배 싫어해요.

왜 목회자들이 자녀들에게 분노를 안겨 줬을까요? 복음이 인격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관계 속에 원수도 사랑하고, 아이들도 예수님처럼 불쌍히 여기고 존중해야 하는데, 야단치고 닥달합니다. 어디서부터 병들었을까 고민하다 보니, 한국교회에 대한 아픔이 커집니다.

우리가 왜 행복하지 않습니까? 복음이 환경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담하다 보면 선교사·목사들이 ‘헛 믿었다’고 많이들 우십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 종교개혁 수준의 화두를 던지고 싶습니다. 목사가 되고 보니, 본질에서 벗어난 것들이 보이고 그 원인도 조금씩 보입니다.

아내와 31년째 살고 있는데, 한 번도 상처를 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하는데, 예수님을 믿으면 원수를 사랑하게 되거든요. 자녀들이 ‘아빠를 보면 하나님 나라가 보인다. 천국 가면 우리 집과 같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부족한 종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시는지 감동이 있습니다.”

서상복
▲서상복 목사는 “우리의 결혼 예배는 인간만의 잔치인가, 하나님 나라 잔치인가”라며 “결혼 예배는 예비부부의 하나님 나라 만들기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대웅 기자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첫째는 자녀 양육에 대한 짐 때문입니다. 둘째는 부모와 교회 선배들의 가정이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하나님 나라로서 행복해지는 것을 잘 보지 못했는데, 본인들도 그 길을 가려니 엄두가 안 나는 것입니다. 말만 들어보면 가정 생활에도 복음이 있는 것 같지만, 철저히 교회와 가정이 이원화돼 있어요. 교회에선 거룩하게, 집에서는 성질대로.

세 번째는 근원적 문제인데, 교회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교회 전체가 개인화·자기중심화 되면서, 신앙도 개인화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는지 하는 소명 의식이 약해졌습니다.

힘든 건 하기 싫고, 배우자에게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문화 명령이라는 인식도 없어요. 예수님 잘 믿는다는데, ‘생육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을 지키려면 결혼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결혼하면 힘든 일 있죠. 결혼하면 좋다고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조하실 때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 주시면서, ‘할지 말지 선택하라’고 하셨나요? 편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관점으로 들어가는 순간, 하나님은 수단화돼 버립니다. 결혼을 똑바로 가르치지 못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결혼을 가르쳐야 할 사람들도 잘못 살았지만, 사실 ‘내가 잘 살았으니까 결혼해서 잘 살라’고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다. 내가 부족했을 뿐, 결혼이 잘못된 건 아니다’라고 설득하지 못했어요.

요즘은 권사님들도 ‘결혼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들 하십니다. 문화명령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입니다. 편하고 풍요로운 걸 천국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요.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찬양했습니다. 이것이 천국 아닌가요?

이런 쏠림 현상이 결혼 기피 제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의 연애’ 속 핵심이 배경 좋고 사람 괜찮으면 결혼하는 것이죠. 결혼 속에 있는 복음이나 창조 명령과는 관계가 없어요.

한국교회 결혼예비학교와 부부학교의 위험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문화명령과 놀라운 신비를 전하지 않고, 프로그램화·인본주의화돼 있습니다. ‘결혼하면 잘 살 수 있고 행복하다, 대화법은 이러저러하다’ 하고 스킬 위주로 가면 결혼이 뭔지 모르니 싸우면서 기대만 커지고 생활은 팍팍해집니다. 인본주의가 너무 강해졌는데, 신본주의로 돌아가야 합니다.

결혼이 진짜 무엇인지 알면, 결혼하기 싫던 마음이 사라집니다. ‘진짜 결혼’을 가르쳐줄 시대가 됐습니다. 다 결혼을 잘하고 있다면,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결혼예배를 상당히 중요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적 기쁨은 2부 만찬이나 축하 순서에서 누리고, 1부 결혼예배에서는 ‘예수와 나의 결혼’이 부각돼야 합니다. 결혼식이 어느 순간 신랑과 신부 둘이 즐기는 것으로 전락하고 예배는 형식화되고 말았어요. 그 결과 예수님은 결혼식의 초라한 들러리가 되셨습니다. 그러면 결혼생활에도 예수님은 들러리가 되고, 싸울 때도 ‘예수님은 저리 가 계시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이혼할 때도 예수님은 고려 대상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이혼율이 신자나 비신자가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것에 대한 의미가 없어졌어요. 교회 다니는 청년들의 혼전 성관계가 비율이 60-80%에 달합니다. 평균 70%입니다. 열에 일곱은 이미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녀 차이도 없어요. 대신 남자는 횟수가 두 배입니다.

상담 비율이 불신자가 60% 정도로 불신자를 자주 만납니다. 불신자들의 혼전 성관계 비율도 70% 정도로 비슷합니다. 교회 청년들 속에 ‘예수’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유혹이 다가올 때, 예수님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겠지요. 복음이 초라해진 실상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구석에 처박혀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