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종교화합 자문위원회 결정 논란
합창, 종교화합 자문위원회 ‘퇴짜’
사전 검열이자 표현의 자유 ‘침해’
자문위 만장일치 허가 규칙 ‘의문’
베토벤 최후의 교향곡 9번 ‘합창’이 난데없는 종교편향 논란에 휘말렸다.
대구시립예술단에서 수성아트피아 재개관을 맞아 대구시향과 대구시합창단이 ‘베토벤 합창 교향곡’ 공연을 주제로 오는 5월 1일 기념 음악회를 계획했다.
그러나 3월 중순 대구 종교화합 자문위원회에서 한 자문위원이 ‘합창’에 대해 “신(God)을 찬양하는 내용이어서 종교적으로 편향됐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합창’ 가사를 보면 ‘환희여,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이여! 신들의 불이여!’, ‘형제들이여! 형제들이여! 별이 빛나는 하늘 저편에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반드시 계실 것이다’ 정도의 언급뿐이다.
물론 베토벤은 기독교 신앙인이었지만, 다른 교향곡이나 오페라 등 클래식 곡들보다 가사가 종교적이진 않다. ‘환희의 송가’ 주요 멜로디를 찬송가 ‘기뻐하며 경배하세’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대구광역시 시립예술단 설치 조례 제16조에 따르면 예술단에 ‘종교화합 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를 두고 정기공연 프로그램 등의 종교 중립성에 관한 사항 등을 자문하게 돼 있다. 조례에 따르면 회의는 ‘종교 중립성’ 관련 안건의 경우, 전원 찬성, 즉 자문위원들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의결이 가능하다.
이에 ‘종교 중립성’ 관련 안건은 현재 9인 체제인 자문위원 중 한 사람만 반대해도 통과될 수 없게 된다. 이번 베토벤 ‘합창’ 관련 자문위에서도 1명이 해당 안건을 부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예술 공연 전 프로그램을 만장일치로 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대구시립예술단의 이러한 규칙은 전근대적 사전 검열 제도이자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하는 악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성택 대구음악협회 회장은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술을 종교로 접근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국악이나 오페라 연주 등은 종교와 관련된 것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대구시 불교계는 지난 2021년 6월 대구시립합창단 공연 레퍼토리에 ‘찬송가’가 다수 포함돼 있다며 사과 요구와 재발 방지를 요구한 적도 있다. 문제의 ‘종교화합 자문위원회’는 그 이후인 2021년 12월 설치됐다.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교향곡 ‘합창’은 ‘악성(樂聖, 음악의 성인)’으로 불리는 독일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 작곡한 최후의 교향곡이다. 4악장 성악 중 ‘환희의 송가’가 대표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합창’이나 ‘합창 교향곡’으로 불리지만, 베토벤 자신은 이런 제목을 붙인 적이 없다고 한다.
베토벤의 모든 교향곡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자필 악보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전작인 8번 이후 11년 만에, 귀가 멀게 된 후 작곡된 걸작 중의 걸작(masterpiece)이다.
작곡을 시작한 시기는 18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이를 타인에게 언급하기 시작한 공식 기록은 1803년 베토벤의 친구가 실러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나와 있다. 작곡을 본격 시작한 시기는 영국 런던 필하모닉 소사이어티가 교향곡 작곡을 구체적으로 부탁한 1817년으로 알려졌다. 이후 1823년 말에서 1824년 초최종 완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연은 그의 직접 지휘 하에 1824년 5월 7일 지금의 오스트리아 빈 쾬트너토르 극장에서 열린 ‘아카데미’ 음악회에서 이뤄졌다. 이는 베토벤의 생애 마지막 아카데미 공연이었다. 그는 직접 지휘를 했지만, 청력 상실 탓에 실제 지휘는 그 앞에 선 미하엘 움라우프가 맡았다.
오케스트라 악기 편성은 베토벤 교향곡 중 가장 큰 편이며, 팀파니 등 타악기들도 첨가됐다. 성악은 4악장에서만 나온다. 9번 교향곡뿐 아니라 베토벤의 후기 작품 대다수가 극악의 연주 난이도와 불가해한 어법 때문에 베토벤 사후 악기 발전 등이 이어진 후에야 제대로 연주되기 시작했다.
‘합창 교향곡’은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 곡을 자주 지휘했던 바그너는 교향곡 장르는 이 곡에서 끝났다고 선언하고, 이후 새로운 음악이 이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하네스 브람스도 베토벤의 후광을 의식해 1번 교향곡을 오랜 고심 끝에 내놓았다. 구스타프 말러도 자신의 2번 교향곡 마지막에 합창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