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2023년 4월 둘째 주
▲사랑이를 위한 심방 중인 소강석 목사.

“‘사랑이’를 위한 심방”.

지난주 목요일 저는 ‘사랑이를 위한 심방’ 몇 가정을 하였습니다. 이 용어는 ‘너의 이름을 사랑이라 부른다’라는 저의 시에서 착안한 것인데요. 정말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독거노인이나 성도들을 심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큰 교회 목회자들은 개별 심방을 거의 하지 못합니다. 어쩌다 애경사 심방이나 특별 헌신심방을 할 때가 있긴 하지만요. 그런데 ‘사랑이를 위한 심방’을 할 때는 오히려 구제비를 가지고 갑니다. 그것도 담임목사가 직접 찾아갑니다.

제가 도착하기 전에 이재훈 의료목사님과 메디컬처치팀이 미리 도착해서 혈압이나 혈당 체크를 하고 문진을 합니다. 그 후에 제가 도착해서 예배를 드리고 의료목사님과 함께 안수기도를 해드립니다.

이렇게 하면 그 가난하고 외로운 성도들의 반응이 가히 감읍의 지경에 이릅니다. “어떻게 큰 교회 목사님이 이렇게 누추하고 비천한 집까지 심방을 오신단 말입니까?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담임목사의 심방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때부터 잠을 못 잔다는 것입니다.

오늘 찾아간 가정은 결혼을 하지 않고 30살부터 혼자 사시는 분이셨습니다. 이분은 임대아파트도 구하지 못해 고시원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고시원 방이 너무 좁으니까 주변 사람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복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데 그 성도분께서 눈물을 강처럼 흘리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담임목사님이 이런 비천한 곳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이렇게 대답을 해드렸습니다. “저도 주님 앞에 비천한 종이고 무익한 종입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오면서 사랑의 봉투를 전달하고 왔습니다.

소강석 2023년 4월 둘째 주
▲사랑이를 위한 심방 중인 소강석 목사.

지난번에 심방한 어떤 집은 자녀도 없고 부인도 사별하고 혼자 사시는 남자분이었습니다. 어쩌다가 형제가 연락이 되는데 몸이 안 좋아서 계속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불편한 몸인데도 담임목사가 온다고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를 해놓았는지 모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너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곳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집이었는데 남편은 알코올 중독으로 요양원에 계시고 아들과 손녀는 신경섬유종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투병 중이었습니다. 젊어서는 여집사님이 일을 해서 살림을 꾸려갔지만, 지금은 연세가 드셔서 일도 못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난한 집에서도 담임목사가 온다고 쑥버무리와 묵을 손수 만들어가지고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잘 사는 집이 아닌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성도들을 심방하고 나면 제 마음도 왠지 측은해지고 짠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그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이 선택하고 부르신 사랑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또한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가 되었으니, 저 언덕 비탈에서도 한 송이 진달래꽃이나 백합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꽃을 피우고 순정의 꽃을 피워내자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그분들이 얼마나 은혜를 받고 위로를 받는지 모릅니다.

목회는 두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목양이고 또 하나는 경영입니다. 사실 목양이 본질이고 경영은 차선이고 비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교회 목회자는 목회자로서 경영에도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경영에만 치중하다 보면 본질을 잃어버리고 성도를 향한 처음 사랑과 ‘목양 연가’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달 하루를 정해놓고 ‘사랑이를 위한 심방’을 합니다. 그럴 때 제 마음이 영혼을 향한 측은지심의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물론 그분들을 부교역자들이 관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담임목사가 직접 나서서 ‘사랑이를 위한 심방’을 하면 제 자신의 목회를 돌아보게 되고 목회 본질을 다시 붙잡는 계기가 됩니다.

저도 그렇지만 함께 모인 교구 식구들이 얼마나 은혜를 받고 자기 스스로 위로를 받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병원을 운영하시는 분으로서 부원장들에게 진료를 맡기고 그 소중한 시간을 내어서 심방에 동참해 주시는 이재훈 의료목사님과 메디컬처치 멤버들이 보람과 가치를 느끼는 것을 봅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해서 ‘사랑이를 위한 심방’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할 것입니다. 제 목회 현장에 이끼가 끼지 않고 아름다운 사랑과 순정의 꽃이 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죠. 이러한 ‘사랑이를 위한 심방’이 푸른 바다를 더 푸르게 만드는 고래와 같은 역할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