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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포스트의 객원 칼럼니스트인 댄 댈젤(Dan Delzell) 목사가 ‘당신이 영생을 아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댈젤 목사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파피온에 있는 리디머루터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그는 칼럼에서 “당신이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는 것은 오만함의 전형은 아닐까? 글쎄, 그 모든 것은 당신의 확신(assurance)에 달려 있다. 만일 당신의 확신이 자신의 의로운 행위와 (당신이) 가정한 도덕적 완전성에 기초한다면, 그것은 오만의 전형”이라며 “결국 당신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고 솔직히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반면 당신이 믿는 대상이 예수님과 십자가에서의 그분의 희생이라면, 당신의 초점은 겸손히 제 위치에 놓여 있다. 전도자 D. L. 무디는 ‘믿음은 뿌리이며, 확신은 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최전선에서 천국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값없이 받는다.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그 죄를 씻어 주실 것을 믿는 것”이라며 “당신이 믿을 때 (영생을) 받는다”고 했다.

댈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가끔 천국에 갈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된다. 그런 불확실성이 당신이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당신이 믿는 대상이 자신의 선행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라면, 당신은 구원을 받고, 구속되며, 거듭나고, 의롭게 되어 용서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의심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그는 “신앙이 믿음에서 확신으로, 뿌리에서 꽃으로 자라나는 길은 하나님 말씀의 약속 위에 서는 것이다. 예컨대 요한일서 5장 13절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실”이라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실제로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지식을 ‘성결한 이성(sanctified reason)’이라고 부른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 있을 때 이 복된 확신을 주신다”고 했다.

또한 “예를 들어,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정죄를 받지 아니하리라 그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말씀했다. 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말씀하셨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서도 천국에 가는 것에 대해 의심이 든다면, 믿음을 더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그 구절들을 계속 살펴 보라.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당신의 의심을 몰아내고, 확신과 성결한 이성과 당신이 진정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지식을 주실 것”이라며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은 이러한 확신을 경험했더라도 오직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야 한다”고 했다.

이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은 어떨까? 그런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요일 4:20)라고 선언한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했다.

또 “사탄은 당신의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보다 당신의 믿음의 강함이나 약함에 집중하도록 유혹해 구원의 확신을 훔치려 든다”고 덧붙였다.

댈젤 목사는 이 문제로 고민을 겪다가 극복해 낸 독자의 편지를 소개했다. 다음은 그 편지의 요약.

저는 앨라배마주 터스컬루사에 사는 앤드루 브래들리입니다. 저는 2017년 크리스천포스트에 게재된 ‘당신에게 믿음을 두는 것은 의심을 낳는다(Placing Faith in your Faith Produces Doubt)’라는 글을 읽고 이메일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자면, 저는 어렸을 때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예수님을 떠나 방황했지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지 않았던 때가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19살쯤 될 무렵, 저는 제 구원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정말 믿었는지 믿지 않았는지 몸부림치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끔찍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 없이는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어 성경 책을 집어 드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저는 수 년간 그러한 생각과 씨름하다가 루터가 자신의 상념과 소심함을 다룬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고, 제게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강박증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탐색을 거친 결과,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때, 항상 제 자신의 믿음을 구원받은 확신으로 여긴 것이 제 문제임을 깨달았고, 마침내 평화를 찾았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게 22, 22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두려웠던 제 어깨 위에서 세상이 벗겨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이제 28살이고, 수 년간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 예수님을 훨씬 더 잘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까지 마귀는 그런 생각을 다시 끄집어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한 의지에 의해 저는 귀하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기사는 제가 처음 그분이 계시해 주신 곳으로 되돌아가도록 정확히 알려 주었습니다. 제가 믿는 대상은 나의 믿음이 아닌 예수임을 확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평화를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천국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끝으로 댈젤은 “여러분도 앤드루처럼 이번 부활절에 영생에 대한 그리스도의 약속을 몸소 받아들여서 큰 기쁨과 위로를 경험하길 바란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이것을 믿는가? 그런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기다리는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