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
▲천종호 판사는 “비행소년들은 마음 둘 곳도 편히 쉴 곳도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며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지만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몸과 마음을 누일 작은 자리만 있어도 아이들은 분명 달라질 수 있다”고 책에서 강조했다. ⓒ이대웅 기자

“안 돼, 안 바꿔줘, 돌아가!”

천종호 판사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소년보호처분재판(소년재판) 중 청소년들에게 호통을 치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호통판사’로 유명해졌다. 그의 이런 면모는 여러 매스컴 인터뷰와 그를 모티브로 제작된 tvN 드라마 <소년심판> 등으로 더욱 알려졌다.

어린 시절 부산 달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그는 소년재판을 통해 열악한 위기 청소년들의 현실을 새삼 알게 됐다. 이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기도해 주는데 그치지만, 그는 그들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그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출소 또는 퇴소해도 돌아가 안길 가족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위기 청소년들을 위해 ‘대안가정’ 청소년회복센터를 설립했고, 재범률을 현저하게 낮추는 데 공헌했다.

이 외에도 대한민국 모든 청소년들의 건전한 성장을 돕기 위해 자나깨나 소년들 생각만 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별명을 딴 사단법인 ‘만사소년’을 설립해 멘토·멘티 2인 3각 사업, 매주 금요일 함께 축구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를 쏟아내며 단체활동을 경험하게 하는 만사소년 FC, 각종 여행과 캠프, 명사초청 인문학 북콘서트 등을 함께하고 있다.

천종호 판사는 최근 집필한 기독교 3부작 이전에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세 권의 책에서 ‘엑기스’를 모은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이상 우리학교)> 등에서 소년재판과 위기 청소년 문제 등에 대한 생각을 가감없이 풀어놓으면서, <더 글로리> 같은 이슈가 있을 때만 반짝 관심을 끄는 위기 청소년 문제 해결에 지속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실 천종호 판사가 ‘호통’을 치는 이들은 대부분 가벼운 범죄를 저질러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소년원에 보내야 하는 아이들은 이미 무거운 처벌을 받은 상태에서 호통까지 더하면 심리적 부담을 줄 뿐이기 때문이란다.

천종호 판사의 ‘호통’은 재판에서 한 아이에게 주어진 3분 남짓의 시간에 조금이라도 잘못의 무게를 깨닫게 하고, 다시는 법정에 서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가 마음 속에 늘 담고 있는 ‘따뜻하면서 엄격하게’라는 지침에 따라 치는 호통은 부모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책에서는 ‘호통’뿐 아니라 청소년들을 위한 그의 다양한 노력을 만나볼 수 있다. 다음은 천종호 판사의 마지막 이야기.

교회, 위기 청소년 위한 사역팀을
문제는 교회 아닌 결국 가정 책임
성도들 파송해 아이들 보살핀다면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법

-위기 청소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부터 소위 ‘문제아’들은 교회에 아예 오질 않는 것 같습니다.

“위기 청소년들이 교회에 오지 않는 것이 교회의 책임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도 교회에 소위 모범생들만 있다는 느낌을 좀 받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교회가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와 보니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다’ 하고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그런 아이들을 불편해하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거나 그런 문제로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좀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천종호
▲천종호 판사가 한 청소년회복센터를 방문한 모습. ⓒ만사소년

저는 교회가 그런 아이들을 위한 전문 사역팀을 구성해 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이 아이들은 주일 한 번 교회에 와서 관리가 되지 않잖아요. 평일에도 전문성을 갖고 교류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거나 금전적 지원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아이들을 위한 별도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차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일반 아이들이 있는 곳에 갑자기 확 들어와버리면 조금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기간을 거쳐 됐다 싶으면 함께 예배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 청소년 문제는 교회 책임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1차로 가정의 책임인데, 이들이 교회에 왔을 때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이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교회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성도님들이 그런 아이들의 가정에 파송돼서 보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예가 김진동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포항 양포교회 집사님들이 20년 전부터 마을에 있는 한부모 가정 아이들을 저녁마다 찾아가 밥을 해주고 책을 읽어줬습니다. 교회에 오든 안 오든 그렇게 했더니, 아이들이 엄청나게 잘 성장했어요. 집사님들이 관리했던 아이들은 비행도 없고 교회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졌습니다. 이런 사역이 하나의 답이 되지 않을까요.”

-성경에 의외로 법률과 판결 이야기가 꽤 나오는데, 법관으로서 성경을 읽으면 어떻게 다르신지 궁금합니다.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법(法)이고, 두 번째가 선(善), 세 번째가 정의(正義)와 공의(公義)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정의와 공의가 잘 구분이 안 되는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등 신약에서는 뭉뚱그려서 의(義)라고 하지만, 원어를 보면 정의입니다. 이 세 단어는 성경에서 배제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적 선과 정의, 법에 대해 누군가 정리해 주시기를 바랐는데 그게 없어서, 제가 첫 번째 책 <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에서 이를 정리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법입니다.

법이 왜 생겼을까요? 공동체가 형성되면 서로 불편함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화장실은 어느 장소를 어떤 순서로 사용하는지 그런 규칙을 정했습니다. 그 공동체뿐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가 들어와도 그 규칙을 따라야 하죠. 이것이 지속성을 갖고 공동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면 ‘일반성’을 갖는다고 합니다. 전 세계인에게 적용되면 ‘보편성’이 되겠지요.

여기까지가 규칙인데, 규칙도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도 ‘언약’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법입니다. 진정한 법이란 위반했을 때 강제로 뭔가 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들은 법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지옥과 천국을 가르는 최종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없다면, 사실 법으로서의 의미는 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고 당장 심판하진 않지만,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을 단순한 도덕 법칙으로 받아선 안 됩니다. 엄중한 심판이 있음을 전제로 살아야 합니다. 법을 어긴 사람이 세상 법정에서는 벌벌 떨지만, 하나님 명령을 어겼을 때 그 정도로는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판의 엄중함을 늘 기억하는 일이 진정한 믿음일 것입니다.”

천종호
▲천종호 판사와 청소년들이 손흥민 선수의 ‘찰칵’ 세리머니를 따라하고 있다. ⓒ만사소년

솔로몬의 재판, 감정 치우쳐 위험
민족 구한 에스더 ‘입법 투쟁’ 주목
결국 법 제정과 폐지에 미래 달려

-개인적으로 성경에서 가장 인상적이거나 훌륭한 판결이 있으실까요.

“가장 잘못됐다고 할 수 있는 판결이 아기 엄마를 밝혀낸 ‘솔로몬의 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조인 입장에서 그 판결은 감정적이고 직관적이었습니다. 판결은 이성적으로 해야 하는데, 인간의 보편적인 감수성 차원에서 접근했습니다. 결론은 좋았지만, 과정은 다소 위험했습니다.

저는 구약 성경 속 에스더의 사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왕 에스더가 유대 민족을 구했습니다. 에스더가 유대 민족을 구하기 위해 나섰을 때, 왕으로부터 먼저 허락을 얻습니다. 왕이 내린 조치가 바로 어명, 즉 그 시절에는 법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만이 유대 민족을 몰살시킬 권한을 쟁취한 것도 왕이 내린 명령, 법에 의해서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가인공동체와 같습니다. 가인공동체에서는 ‘입법’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만은 유대 민족을 죽이기 위해 감정에 호소한 것이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을 설득시켜서 법을 제정합니다. ‘입법 투쟁’을 한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당시 주권자였기 때문입니다. 주권자가 만든 법은 주권자 자신도 위반할 수 없습니다. 하만이 이를 통해 157개 도에 있는 유대인을 다 죽일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습니다.

이후 아하수에로가 에스더의 요청을 받고 어떻게 했습니까? ‘하만이 만든 법은 무효’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기존 법을 폐기시키고 ‘이 법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에스더는 목숨을 걸고 ‘입법 투쟁’을 한 것입니다.

가인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법안을 하나 만들고 고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법조인의 시각에서 성경을 읽으니 보였습니다. 그래서 ‘좋은 판결’보다 ‘입법 투쟁’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날은 ‘입법 투쟁’의 시대입니다. 세계관과 문화, 교육 등 이 모든 투쟁이 결국 그 수단이 되는 법의 제정과 폐지에 달려 있습니다. 간통죄를 폐지했더니, 간통을 처벌할 수 없게 됐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아무리 그들을 전도하려 해도 ‘나를 왜 정신병자로 보느냐’며 오히려 소송을 당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입법 투쟁’에 얼마나 현명하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의 미래까지 결정될 수 있습니다. 에스더가 ‘입법 투쟁’에서 실패했다면, 유대 민족은 몰살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내 권리만 주장하며 투쟁하는 상대주의적 세계관이 아닌, 공동선을 위해 서로 양보하고 협조하는 세계관으로의 입법이 이어져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1973년 낙태 문제가 헌법상 권리라는 ‘로 앤 웨이드 판결’이 오랫동안 지배했다가 작년에 ‘헌법상 권리가 아니라 각 주별로 관장할 사안’으로 뒤집히지 않았습니까? 이걸 바꾸는데 몇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미국은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유책주의 대신 파탄주의로 바뀌고 좀비 마약까지 등장하면서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없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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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호 판사가 청소년들과 함께 축구하는 모습. ⓒ만사소년

-이번 책도 그렇지만 판사님은 아무래도 이성적·논리적 접근에 강하신데, 신앙이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지 않나요.

“영적인 것으로 가인공동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잖아요? 그들과 잘 대화하려면 우리가 아주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책 마지막 부분에서 ‘소통’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가인공동체의 주도권은 그들이 쥐고 있기에, 우리의 가치관을 그들의 용어를 빌어 이야기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가치관이 전달되지 못하고, 그들이 원하는 테두리 내에서만 논의가 이뤄질 것입니다. 그래서 헤세드(인애)나 아가페(사랑), 샬롬(평화) 대신 꺼낸 용어가 ‘공동선’입니다.

예를 들어 이종(異種)격투기를 하는데 주짓수 기술만 쓰라고 한다면, 이종격투기라 할 수 없습니다. 누구는 복싱, 누구는 유도 기술을 사용해 어떻게든 상대방을 쓰러뜨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공론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 원칙만 정해놓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상대방 입장을 들어가면서 소통하자는 것이 번역·대화 모델과 다른 ‘환대 모델’입니다. 그들의 용어도 배워 가면서 ‘권리 주장도 좋지만, 공동체의 질서도 세워가자’는 소통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소년범 문제를 대하시면서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는 말씀에 회의를 품은 적은 없으신지, 어떻게 그런 회의를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헌법이 있다면, 1조 1항 또는 최고 강령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는 말씀에 회의를 품은 적이 없습니다. 불공평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헌법이 있다면, 1조 1항 또는 최고 강령은 ‘하나님 나라는 사랑과 정의의 왕국이다.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