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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8:19-20

주님과 바리새인의 주장이 계속되는 장면입니다. 바리새인은 급기야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합니다. 자꾸만 주님이 아버지를 말하니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나요?” 하고 질문합니다. 아버지를 보이라는 말입니다. 아버지를 잘 알고 있는데, 자꾸만 아버지를 들먹이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한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육신적으로 알지 말아야 한다
인간적으로 알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두 증인, 아버지와 함께 하는 두 증인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인정하지 않아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나요?” 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주님과 바리새인의 논란 이유는 하나입니다. 아는 방법의 차이입니다. 바리새인은 주님을 육신적으로 알려고 합니다. 그리고 바리새인은 현실적 지식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한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주님의 증거가 받아들여지려면, 주님 아버지가 그들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리새인은 목수 요셉 외에는 주님의 아버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목수 요셉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증언할 정도의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때 주님은 그들에게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이유를 댑니다. “너희가 나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마 주님은 “너희가 모르는 것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증인이 둘인가 하나인가의 수(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을 영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아들에 의해, 아들을 통해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 너희는 나를 믿지 못하고 있다
주님을 알려고 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와 하나임을 누차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들이 나를 모르니 내 아버지도 모른다”고 설명해 줍니다.

주님과 바리새인 간의 갈등과 대립이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이는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차이 때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는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 차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 중 영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원리는 믿음으로써 알게 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방법은 알아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방법은 먼저 믿어서 알게 되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사람이 아무리 알려 해도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두뇌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으로 믿게 될 때,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의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왜?’라는 모적을 알게 되는 믿음의 방법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실로 영적인 방법은 먼저 믿어서 나중에 알게 되는 원리입니다.

비행기의 원리를 모두 알고 타려면, 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조종사를 믿고 타면 됩니다. 조종사가 목적지까지 무사히 태워다 줄 것을 믿고 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모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자신이 거듭난 것을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십니다. 물론 성격이 화끈한 사람에게는 성령이 화끈하게 체험하도록 해주시기도 합니다. 제가 그와 같은 화끈한 체험을 했으니까요.

3. 나를 믿으면 아버지를 알게 된다
나를 믿어야 아버지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지금 바리새인들에게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설명합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말입니다. 이는 삼위일체론을 믿어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주님과 아버지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와 하나 됨을 성경 여러 부분에서 말씀합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하나임을 역설하셨습니다. 삼위가 위격이 같은 하나라는 본질의 연합입니다. 이 연합은 인간적인 두뇌로는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제자들도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요한복음 14장 9절의 빌립이 특히 그랬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바리새인들만 아니라, 주님의 제자들에게도 삼위일체론은 어려운 문제였던가 봅니다. 그럴 수밖에요. 이는 믿어야 알게 되는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 기독교 교부였던 터툴리안은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합리적이면 두뇌로 이해하게 되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점은 믿어서만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사람은 살면서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때입니다. 그때는 따져서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가는 인생 길에 주님을 만나 주님이 의심 없이 믿어지는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을 육신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 알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과 하나됨을 믿게 하옵소서. 주님이 하나님과 하나됨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전 한일장신대 교수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문의: www.kocpt.com
상담: 02-2202-3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