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딜레마: 정의 구현과 공동체 번영이 충돌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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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원 칼럼] 아들 암논과 압살롬

이복누이 강간한 큰아들 암논
불의하다며 그 암살한 압살롬
아버지이자 왕 다윗, 처리 갈등

고대 문명에서 공동체의 정의,
공동체 생존·번영 수단적 가치
나라 정의로워야 백성들 번성

▲17세기 작자 미상의 그림 ‘암논과 다말(Amnon and Tamar)’.

▲17세기 작자 미상의 그림 ‘암논과 다말(Amnon and Tamar)’.
다윗에게는 왕위를 이을 만한 여러 아들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암논은 다윗이 사랑한 아들이었다. 그가 이복 누이 다말을 강간하고 버렸을 때 다윗은 크게 분노했지만, 암논을 따로 벌하지는 않았다. 이는 그가 암논을 ‘사랑했기’ 때문이다(삼하 13:21 ὅτι ἠγάπα αὐτόν 칠십인역).

암논도 그것을 인지했는지, 죄를 짓고도 절대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누이 다말을 강간한 암논이 궁중의 다른 여인들에게 저질렀을 악도 눈에 선하다.

물론 다윗이 암논을 사랑했다 해서 그를 세자로 생각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태어났을 때 하나님이 주신 이름 여디디아(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는 다윗의 후계자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이 솔로몬의 다른 이름을 감추고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제들은 암논에 대한 다윗의 사랑을 왕위에 대한 그의 뜻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암논에게 강간당한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은 암논의 악한 행실을 보고 그는 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듯 하다. 이후 압살롬이 다윗에게 반란할 때의 명분이 정의였을 고려할 때(내가 정의를 베풀기를 원하노라, 삼하 15:4) 그가 암논을 암살한 것은 단순히 누이에 대한 복수라기보다 불의한 자가 유다의 왕이 될 가능성을 없애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암논의 죽음이 압살롬의 대권 가능성을 높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행위에는 늘 명분과 이익이 공존하기 때문에, 암논의 죽음이 압살롬의 정치적 이익에 기여했다 해서 그 명분 자체를 폄훼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다윗이다. 아무리 암논이 궁에서 ‘망나니’처럼 행동했어도, 다윗에게는 사랑스런 장손이었다. 이런 다윗의 사랑은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무슨 합리적인 이유가 있겠는가?

하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자식은 물론 사회를 해치는 경우이다. 암논에 대한 다윗의 사랑이 그러했다. 다윗은 암논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가 어떤 악을 저질러도 벌을 내리지 않았다.

암논은 권력감에 취해 어떤 범죄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것은 다윗에게 큰 상처였겠지만, 국가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었는지 모른다.

▲니콜로 드 시몬(Niccolò de Simone)의 ‘압살롬의 암살(The Banquet of Absalom)’.

▲니콜로 드 시몬(Niccolò de Simone)의 ‘압살롬의 암살(The Banquet of Absalom)’.
하지만 다윗은 암논을 죽인 압살롬을 용서할 수 없다. 다윗은 그와 대화하는 대신 ‘가짜뉴스’에 의존한다. 사람들은 다윗에게 “압살롬은 왕이 되기위해 암논뿐 아니라 모든 다른 왕자들까지 죽였다”고 거짓 보고한다(삼상 13:30).

다윗은 암논을 죽인 압살롬이 자신도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 압살롬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이런 다윗의 살기를 느낀 압살롬은 외국으로 도망했다. 그곳에 3년을 머물면서 압살롬이 무엇을 했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망명한 왕자가 몇 년 후 정복 왕으로 본국에 귀한하는 이야기는 매우 흔하다. 앗시리아의 삼시아닷이 그랬고, 알렙포의 이드미리 왕이 그랬고, 다윗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고, 여로보암도 그랬다.

압살롬이 어머니의 나라 그술에서 3년을 절치부심하고 있을 때 요압이 움직였다. 요압은 암논의 죽음 이후 실질적 장남이 된 압살롬이 다윗과 나쁜 관계 속에 해외에 오래 머무는 것이 국가에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압살롬이 반란의 뜻을 품었다 해도 그를 유다 땅에 살게 하는 것이 쿠데타 방지와 관리에 도움이 된다 여겼을 것이다.

문제는 다윗의 마음을 돌리는 일이다. 다윗에게 압살롬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죽인 원수이다. 암논을 죽인 일에 대해 압살롬이 유감이나 사과를 표한 적이 없다. 살해 후 바로 어머니의 나라 그술로 도망가 버렸다. 그 후로 편지 한 통도 없다.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감정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압살롬도 아들이기 때문에, 또한 그에게는 왕위를 이을 만한 재능도 있었기 때문에 국가 대사를 위해 협력해야 할 대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다윗의 장손을 죽였지만 아직 처벌받지도 반성하지도 않은 원수에 불과하다.

당시 ‘피의 보복’ 관습에 따르면 가족에 대한 살인은 반드시 살인자를 죽여야 정의가 실현된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그술에 있던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감정을 표현하는 성경 본문도 이런 모호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는 줄/반하는 줄 알고’”(לב המלך על אבשלום, 삼상 14:1).

왕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자 요압이 나선다. 다윗의 조카였던 요압은 암논이나 압살롬과 사촌 관계였다. 고대 왕실에서 사촌은 왕위를 이어받지 못하지만, 왕위 계승에 중요한 조력자로 역할하곤 했다. 왕위 계승의 이해 당사자인 왕자들이 서로를 경계한 것과 달리 사촌들과는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다(cf. 암논의 친구 요나답, 삼하 13:3).

왕자들은 사촌들의 조언에 크게 의존한다. 요압은 다윗과 압살롬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을 다윗에게 보낸다. 이 여인은 드고아에서 선지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선지자가 왕에게 찾아와 조언하는 일은 유다 왕국에서 헌법으로 보장된 일이기 때문에, 그녀는 상복이라는 이례적인 옷차림으로도 궁 안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상복 입은 모르드개가 궁 안으로 진입 못한 사건과 비교, 에스더 4:3).

그녀의 모든 말은 요압이 적어준 대본에 따른 것이지만, 요압은 그녀의 대화를 선지자들의 전형적 어법—다윗에게 먼저 제3자적 비유를 말하고, 다윗이 그 비유에 반응했을 때 다윗이 그 비유의 주인공임을 밝히는 어법—에 따라 구성했다.

드고아의 여인의 비유는 다음처럼 요약될 수 있다: 최근에 남편을 잃은 과부가 있다. 그녀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둘은 인적이 없는 들에서 싸우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때려 죽이게 된다. 비유는 명시적으로 그 싸움이 ‘상속’에 대한 것이라 말하지 않지만, 후에 친척들이 살인한 아들을 ‘상속자’로 칭한 것으로 볼 때, 상속 문제로 다투다 살인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여하튼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피의 복수법’이 발효된다. 즉 친족 중 하나가 억울하게 살해당한 다른 친족을 위해 복수해야 했다. 이 경우 과부의 하나뿐인 상속자 아들을 죽여야 ‘피의 복수’라는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온 족속이 일아나서… 그의 동생을 쳐죽인 자를 내놓으라 우리가 그의 동생 죽인 죄를 갚겠다(삼하 14:7)”고 주장한다. 하지만 드고아의 여인은 피의 복수를 멈추고 살인자 아들을 상속자로 인정해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에 따르면, 친족들이 하는 것은 정의를 위한 것 같지만 결국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내 남편의 이름과 씨를 세상에 남겨두지 않는” 악한 일이다.

▲압살롬의 죽음을 그린 그림(Muerte de absalon).

▲압살롬의 죽음을 그린 그림(Muerte de absalon).
여기서 우리는 상충하는 두 가지 가치를 본다. 하나는 피의 복수법이 대표하는 ‘정의’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이름과 유업이 상징하는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이다. 어느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가치이다.

어떻게 보면 다윗이 직면한 딜레마도 이와 같은 내용이다. 다윗은 암논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함으로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동시에 그는 국가의 생존과 번영도 구해야 한다.

정의를 위해 압살롬과 원수가 된다면, 유다 왕국은 내전으로 멸망할 수도 있다. 다윗의 이름과 유업이 영영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압살롬이 벌을 받지 않고 유다의 왕자로 정치를 재개한다면 그것은 암논을 사랑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다시 한 번 못을 박는 일이다. 정말 해결하기 힘든 딜레마이다. 다윗이 3년이 지나도록 압살롬에 대한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때 요압은 “이 일의 형편을 바꾸려 하여” 다윗을 설득한다. 압살롬이 해외에 머물며 다윗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를 키울 경우 오게 될 재앙적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그리고 요압의 노력 덕분에 다윗도 결국 압살롬의 귀국을 허락한다.

하지만 그가 마음 속의 딜레마를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그 후 2년 동안 압살롬을 보지 않았으며 요압의 중재로 5년 만에 압살롬을 대면했을 때도 아버지는 아들과 완전히 화해하지 못했다. 얼마 후 압살롬의 난으로 나라의 근간까지 흔들리게 된 일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적어도 고대 문명에서 공동체의 정의는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수단적 가치를 지녔다. 왜 나라가 정의로워야 하는가? 그 이유는 정의로울 때 나라가 잘 되고 백성들이 번성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라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수단일 때 정의가 의미를 가졌다.

문제는 역사 현실은 정의의 이론보다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정의의 가치와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이 상충하는 듯 보이는 상황을 만난다. 다윗은 압살롬과의 관계에서 이런 딜레마를 체험한다. 그리고 그 딜레마를 잘 다루지 못해 결국 나라를 거의 잃을 뻔했다.

김구원 교수
단국대 사학과 고대문명연구소
저서 통독주석 <사무엘상>과 <사무엘하>, <김구원 교수의 구약 꿀팁>, <쉬운 구약 개론(공저, 이상 이상 홍성사)>, <가장 아름다운 노래> 등
역서 <하나님 나라의 서막>, <이스라엘의 종교>,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 <고대 근동 역사>, <고대 근동 문학 선집(공역, 이상 CLC)>, <구약 성서로 철학하기>, <에스더서로 고찰하는 하나님과 정치>, <출애굽 게임(이상 홍성사)>, <책의 민족(교양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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