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건네는 거울>, 두 자아의 대화와 치유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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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우화


유혜목 우화 『말 건네는 거울』

유혜목은 여러 권의 시집과 시 연구서 그리고 수필집을 간행한 바 있는 중량 있는 문인이다. 그의 시는 오늘과 같이 메마른 시대, 특히 ‘영적 가뭄’의 시대에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한다.

그가 생각하는 이 세상 ‘언어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종교적 신실과 신앙의 실천이 문학에 반영되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러기에 그의 시 배면에는 언제나 기독교적 믿음의 그루터기가 잠복해 있다.

유혜목이 지난해 가을에 내놓은 우화소설 『말 건네는 거울』의 경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은 ‘소희’라는 인물과 그가 대화하는 ‘마음속 새사람’의 이야기다. 그 새사람이 누군가를 확인해 가는 것이 곧 이 작품을 읽는 일이 된다.

소희가 새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소통하게 된 것은 1년 전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이 선물한 손거울로 인해서다.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소희와 삶의 본질에 대한 것을 말하는 새사람은, 어쩌면 일상적 자아와 본래적 자아의 모습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일찍이 우리가 이상의 「날개」에서 보았던, 바로 그 두 자아의 대립이다.

「날개」의 힘겨운 생활인 아내와 사유(思惟)의 방황을 계속하는 남편은, 일상적 자아와 본래적 자아로 분화된 한 인물의 두 형상이다. 그 본래적 자아의 의미가 정오의 사이렌 소리와 더불어 극대화될 때, 이 소설은 신화문학론적 관점에서 1930년대 한국문학의 정점(頂點)에 이르렀던 것이다.

소희는 흉통(胸痛)이라는 가슴앓이의 지병을 안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던 스무 살 무렵부터의 일이다. 의학적 검진 결과엔 아무런 이상이 없으나, 견디기 어려운 아픔은 언제나 소희의 몫이다. 특수전사령부 출신 아버지의 나쁜 영향, 유년기부터 사춘기까지 이어진 구타와 스트레스가 ‘신체화 증상’이 되었다고 거울을 건넨 의사가 말했다.

의사는 거울 속 새사람과의 솔직한 대화를 권하면서, 거울 보기 전에 반드시 거울 면을 깨끗이 닦으라는 당부도 함께 했다. 문제는 이 처방이 효험을 나타내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상황 구성은 창작 언어의 행간에 신의 손길을 매설해두던 유혜목의 글쓰기 방식을 거의 그대로 원용한 것이다.

소희의 증상은 날이 갈수록 호전되어 간다. 어느덧 새사람과의 대화가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된다. 소희가 ‘말 건네는 거울’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어느 날 소희의 세 친구가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이들 사이에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물론 그로부터 모범답안이 도출되진 않는다. 문제가 소희와 새사람 사이에서 해소되는 까닭에서다.

그렇게 본다면 이 세 친구는 성경 욥기의 세 친구와 여러 모로 닮아 있다. 이들은 욥의 세 친구처럼 소희를 비난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 대화를 통해 소희가 당착한 국면을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관찰할 여지를 마련한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조합은 결국 작가가 소희의 심정적 경사(傾斜)를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 장치에 해당한다.

이 작품의 소제목이 헌옷과 새옷, 허물벗기, 날개 짓, 날아오르기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글쓴이의 생각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이 순차적인 과정을 통해 소희 자신이 새사람이 되어가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이 우화는 일찍이 19세기 유럽 시민사회를 바탕으로 한껏 발화한 성장소설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이 작품 가운데 데미안과 에밀 싱클레어가 다양한 형식으로 숨어 있는 터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매우 유연한 상상력을 활용하고 있다. 마치 지하철 벽면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 해리포터의 마법 세계가 존재하듯 말이다. 우화이면서 동화이고,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글쓰기가 이 작품이다.

이 작품을 정성 들여 읽으면 우리가 오래 숙성해야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든지, 다른 이와의 비교가 쓸모없는 것이라든지, 생명체에 대한 예우가 소중한 것이라든지 하는 개념들이 그렇다.

소희에게 있어서 육신의 통증은 이 모든 깨우침의 뒤끝에서 축소되고, 정신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시야를 열고 있으니 이 작품이야말로 하나의 구도문학(求道文學)이라 할 만하다.

다만 전체적인 작품 구조의 균형성 문제나 동어반복과 같은 단처(短處)는 좀 더 개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지엽적인 면모다. 보편적 삶의 원리를 넘어 인간의 내면세계를 가다듬어 나가는 이 우화를 두고 흔연한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김종회(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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