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즈베리 대학교
▲애즈베리 대학교에서 야외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학생들 모습. ⓒ페이스북

결론부터 말하면, 마틴 로이드 존스는 부흥 자체를 반대하거나 부흥으로 여겨지는 모든 사역을 최대한 의심하면서 우려하는 입장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은사주의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오늘날 보수적인 몇몇 복음주의자에게, 부흥을 지나치게 추구하려다 성경적인 성령 세례의 개념을 벗어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성령 세례)가 거듭날 때 모든 사람에게 일어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 신약 성경을 부인할 뿐 아니라, 분명히 성령을 확실히 소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마틴 로이드 존스, <성령세례> CLC, 2010). 그만큼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부흥의 역사를 간절히 기대하고 사모했던 사람이다.

오늘날 마틴 로이드 존스가 살아있다면, 미국 켄터키 주 애즈베리 대학교에서 2월 8일부터 3주에 걸쳐 이어진 부흥 집회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좀 더 시간을 두고 참된 부흥의 열매가 나타나는지 지켜보자는 신중론, 틀림없이 성령께서 기름 부으신 놀라운 부흥의 역사라고 보는 긍정론 중 어느 쪽으로 기울까?

존 파이퍼는 영적 거장 특강 시리즈 마지막 9권인 <부흥의 영웅들>에서 마틴 로이드 존스를 다루며, 성령의 강력한 부흥의 역사를 기대했던 그가 비판한 오순절주의를 다뤘다(부흥과개혁사, 2022).어쩌면 우리는 여기서 조심스럽게 로이드 존스의 평가를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54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Wretched의 진행자 토드 프리엘(Todd Friel)은 애즈베리 부흥에 ‘어쩌면’ 역사하고 계실 성령을 절대 소멸해서는 안 되지만(살전 5:19, do not quench the Spirit), 동시에 범사에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살전 5:21, “test them all”).

이어 토드는 애즈베리 부흥을 평가할 8가지 신중한 질문들을 제시하는데, 흥미롭게도 존 파이퍼가 소개한 마틴 로이드 존스의 평가 항목과 유사한 항목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토드 프리엘 영상). 세 가지로 요점을 정리해서 살펴보자.

1. 건전한 교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가지고 있지 않은가?

(1) 로이드 존스는 부흥이 건전한 교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토드는 애즈베리 부흥의 열매를 신중하게 살펴보기도 전에, 성령의 역사라고 칭송한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한다: 타드 벤틀리(33명의 죽은 자를 살리고, 100명 이상의 청각장애인을 고쳤다고 주장하는), 션 포이트(벧엘뮤직), 셰인 클레이본(기독교 활동가, 작가). 이들의 공통점은 건전한 교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토드는 애즈베리 채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활동은 ‘워십’(찬양)이 대부분이고, 성경을 강해하는 설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경이 말하는 부흥과 얼마나 다른가? 에스라는 율법책을 백성들 앞에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가르쳤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느 8장). 참된 부흥은 이처럼 건전한 교리적 근거 위에 일어난다.

토드는 이어 애즈베리가 ‘웨슬리의 성결 운동’의 분파라고 평가했다(토드는 웨슬리가 아니라 그 이름을 딴 성결 운동을 비판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죄, 하나님의 심판, 회개가 거의 언급되지 않으며, 애즈베리에 방문한 몇몇 사람의 말에 따르면 복음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고 고발했다.

성령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성령은 믿음을 주시고 회개에 이르게 하시며 복음의 효력을 맛보게 하신다. 이런 건전한 교리적 근거 없이 성령이 일으키시는 부흥은 정말 참된 부흥인가?

2.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인가? 사람이 만든 이벤트인가?

(2) 은사주의자는 자기가 하는 일을 너무 강조하고 성령이 자신의 마음대로 오시고 가시는 자유와 주권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는다

(3) 은사주의자들은 때때로 방언을 성령 세례의 표지로 주장하지만, 로이드 존스는 당연히 그것을 거부한다

(4) 그러나 훨씬 더 자주 대부분의 은사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원할 때마다 방언을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4번까지, 존 파이퍼가 정리한 로이드 존스의 평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성령이 일으키신 부흥은 인위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교회사에서 진짜 부흥의 역사는 분명 있었다. 이안 머리는 1차, 2차 영적 대각성 운동이 실제로 성령의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후에 곧바로 ‘부흥주의’라는 인위적인 운동이 뒤따랐다는 것을 냉철하게 지적했다(부흥과개혁사에서 나온 <부흥과 부흥주의>를 읽어보라).

로이드 존스는 성령께서 자유롭게 오시고 가시고 역사하시는 주권을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방언만을 특별한 성령의 표지로 여기며 언제든지 원할 때마다 성령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령의 자유와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이고 인위적인 방식이다.

토드 프리엘은 1890년부터 8번의 부흥이 일어났다는 애즈베리의 주장을 조심스럽게 비판한다. 정말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일 수도 있지만, 왜 성령께서 다른 곳에서는 역사하지 않으시고 이곳에서만 반복적으로 일하시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애즈베리는 웨슬리의 성결 운동의 분파 즉 오늘날 ‘오순절주의(은사주의적) 성결 운동’로 분류된다. 토드는 이어 다른 세속 대학이나 상대적으로 보수적 기독교 대학이 아니라 항상 사립 기독교 대학에서 부흥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현실은 조심스러운 분별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성급히 성령의 역사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3. 특별한 은사에 관심을 두는가, 성경적 회심에 관심을 두는가?

(5) 너무 잦은 체험은 간증을 위해 능력을 부여받는 것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 추구된다

(6) 은사주의자들은 어떤 사람이 강력한 은사가 있으면, 그는 좋은 사람이고 인도하고 가르치는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실수에 쉽게 빠질 수 있다

(7) 은사주의자는 독특하게 성경의 설명보다 주관적인 인상과 특별한 은사에 더 관심이 있는 경향이 있다

(8) 은사주의자는 때때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성을 통제하는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놓아 버리도록 부추긴다

로이드 존스는 은사중지론자가 아니었다. 이안 머리는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에 관하여 로이드 존스가 한 말을 소개했다.

“이 모든 은사가 사도들 또는 사도 시대와 함께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 이후로 의심할 여지 없는 기적이 있었다고 믿는다”(존 파이퍼가 인용한 이안 머리의 마틴 로이드 존스 전기, <부흥의 영웅들>, 82쪽).

하지만 로이드 존스는 오늘날 은사 주의자가 추구하는 체험, 능력, 주관적 인상이나 은사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성을 놓고 비이성을 좇는 행위를 좋게 보지 않았다.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고 바랐지만, 중심은 그리스도의 영광, 성경의 설명, 이성을 벗어나지 않았다. 은사의 강력함이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자질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토드 프리엘은 애즈베리에서 지금 성령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지 헤아려보자고 하면서, 성경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추구하며 거룩함을 좇는 개인과 교회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강하게 느끼고 경험하는 주관적 체험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애즈베리 부흥을 경험한 이들의 TV 인터뷰에서는 성령을 강하게 체험했다는 말이 주를 이루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었는데, 토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은 아들의 영광을 알게 하시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애즈베리에서 그들이 강하게 체험한 것은 결국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토드는 로이드 존스가 우려한 체험 중심 부흥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으로, 참된 개혁이 교회 안에서 밖으로 번져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체험이 있는 곳으로 사람을 끌어오게 하는 데서 멈춘다는 것을 지적했다.

또한 애즈베리 채플에서 방언과 여성 목사의 가르침, 심지어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가 일어난 것에 유의하라고 경고했다. 이 또한 주관적인 경험과 특별한 은사에 치우친 부흥 주의의 특징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결론

결론적으로 참된 성령 세례, 부흥을 꿈꾸고 갈망했던 로이드 존스가 오늘날 애즈베리에서 일어난 일을 평가한다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예측해도 신중론을 택할 것이라고 본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회의론까지 갈 수도 있다. 물론 참된 부흥의 열매가 나타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성령의 불길이 일어났다’라고 외치는 곳마다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전 4:20)”. 그리고 우리가 기대하고 성경이 약속한 성령의 능력은 잠시 우리가 뜨겁게 경험하고 체험하는 능력이 아니라 죽은 영혼을 살리고,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능력이다.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고, 세상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추구하게 한다. 비이성적으로 자신을 놓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 사모하게 하며, 천사의 말, 모든 지혜와 지식, 불사르게 몸을 내어주는 봉사 등 외형의 개혁 이전에 오래 참고 온유하고 자랑하지 않고 성내지 않는, 즉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내면이 빚어지는 참 개혁을 일으킨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런 부흥을 갈망했고, 나 또한 그렇다.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