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3년 3월 19일
장소: 수원 옥토교회
본문: 시 51:17, 마 4:17, 눅 24:47,48, 롬 7:18,19,24

기독교학술원 이사장 취임식
▲설교하는 김명혁 목사. ⓒ크투 DB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회개와 참회의 삶으로 시작하고 회개와 참회의 삶으로 지속되고 회개와 참회의 삶으로 마무리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일 처음에 전파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성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회개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7,48).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 제일 먼저 전한 설교도 회개하라는 설교였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7,38).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선교지에서 전하고 가르친 것도 회개와 믿음의 도리였습니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 20:18,20,21).

회개 없이는 천국도 없고 죄 사함도 없고 구원도 없고 성령도 없다는 말씀들입니다. 회개는 한 번 크게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것을 말하고 참회는 계속해서 울면서 돌이키고 또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한 번 돌이키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계속해서 울면서 돌이키고 또 돌이켜야 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회개와 참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한국 교회 안에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께서 하셨던 회개와 참회가 있다면 한국 교회는 오늘의 한국 교회와 사회를 살리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한국 사회와 정치 안에 모두가 내 탓이고 내 잘못이고 내 부덕의 소치라고 말하는 회개와 참회의 지도자들이 일어날 수 있다면 오늘의 한국 사회와 국가는 희망찬 사회와 국가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드린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저들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1. 다윗

첫째로 회개와 참회를 가장 많이 가장 처절하게 한 사람이 다윗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 받으시는 제사는 회개와 참회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회개와 참회의 시 다섯 개가 시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6편 32편 38편 51편 143편이 다윗의 회개와 참회의 시들입니다. 제가 매일 읽는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처절하게 회개하며 참회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10,17).

다윗은 날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서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 56:8).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진솔하고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고 다윗을 아주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가리켜 “다윗의 자손” 이라고 부르시기까지 했습니다.

2. 바울

둘째로 사도 바울도 다윗의 뒤를 이어 처절한 회개와 참회를 계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귀중한 종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표현하면서 자기 실패와 자기 멸시와 자기 비하의 표현들을 거리낌 없이 진솔하게 사용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18,19,24).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아무 것도 아니로다”(고전 3:5,7).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 4:13).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전 15:8,9).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8,9).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처절한 참회의 고백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귀중한 종으로 순교의 제물로 받으셨고 그리고 사도 바울의 이 처절한 고백 때문에 성 어거스틴과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도 같은 참회의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귀중한 종들로 쓰임을 받으셨다고 생각합니다.

3. 성 어거스틴

셋째로 성 어거스틴이야말로 처절한 회개와 참회를 평생토록 계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이 개종한 후 11년 되던 해인 397년, 그가 43세 되던 해에 저술한 「참회록」은 어거스틴의 “지극히 낮아진” “비관적인” “참회의” 모습을 잘 드러낸 작품인데, 어거스틴의 전 생애의 내면 생활의 변화 과정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묘사한 “영혼의 자서전”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갓난아기 때 어머니의 젖을 게걸스럽게 빨던 탐욕과 시기가 가득한 자신의 모습을 비롯하여, 십대 소년으로 남의 집 배나무에서 배를 몽땅 털어 따서 돼지에게 던지며 좋아하던 장난꾸러기의 모습 그리고 정부와 동거하다가 그를 내버리는 육욕에 얽매여 있던 청장년 시절의 방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했으며 마니교, 신플라톤주의 등을 추구하다가 결국 롬 13:13을 읽고 극적 회심을 경험한 회심 사건과 카시키아쿰에서 은거의 생활 등 자신의 내면 생활을 솔직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참회록」 1권 초두에서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러면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지와 재와 같은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조롱할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긍휼을 바라보고 말씀 드리옵니다.”

그는「참회록」10권 2장에서 개종 후의 자기의 내면상을 아직도 갈등과 어두움에 싸인 불완전하고 무능한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내 속에 있는 것을 어찌 당신에게 숨길 수 있나이까? 나는 내 자신에게 만족을 느끼지 못하므로 아직껏 탄식하고 있나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나 자신을 거부하고 당신을 택하옵니다.”

어거스틴은 「참회록」10권 28장에서 자기 내면의 병들고 추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진솔하게 묘사했습니다. “나는 망할자이옵니다. 주님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의 악한 슬픔이 나의 선한 기쁨과 싸우고 있는데 승리가 어느 편에 돌아갈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나는 망할자이옵니다. 주님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망할자이옵니다. 보시옵소서 나는 내 상처를 감추지 않습니다. 당신은 의사이시며, 나는 병든 사람입니다. 나의 모든 소망은 당신의 넘치도록 크신 자비에만 있습니다. 당신이 명하시는 것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그리고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나에게 명하시옵소서.

분명히 당신은 내가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명하십니다. 당신은 음란을 삼가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나의 옛 습관이 고착시켜 놓은 그와 같은 것들에 대한 영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와 같은 영상이 내 속에 들어와 나에게 즐거움을 제공할 뿐 아니라 나의 동의를 얻어내고 그리고 실제 행동과 매우 유사한 행위를 유발하고 맙니다. 오, 주 나의 하나님이시여! 그와 같은 때에 나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손에 내 영혼의 모든 병을 고칠 수 없으십니까?”

결국 어거스틴은 바울처럼 죄성으로 인한 심각한 고민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속의 은혜를 의지하며 십자가로 달려갔습니다. “나의 죄악들과 불행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나는 공포 가운데서 빈들로 도망갈 생각을 했으나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금하셨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나의 모든 근심을 당신께 맡깁니다. 당신은 나의 무능과 약함을 아십니다. 나를 가르치고 나를 고치시옵소서. 당신의 독생자가 그의 피로 나를 구속하셨는데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사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나의 마음에 꼭 붙잡으며 나의 음식과 음료인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그를 먹는 자는 충족하게 될 것이고 그를 찾는 자는 그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한 평생 하나님 나라와 아프리카 교회를 위해서 헌신 봉사하다가 430년 8월 열병으로 드러누웠습니다. 그는 자기의 마지막 시간을 조용히 있기를 원했습니다. 다윗의 참회의 시편 네편을 써서 자기가 앓아 누워있는 방 벽에 붙여 놓게 했습니다. 그 시편들은 시편 6편과 32편과 38편과 51편이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십 일 동안 날마다 그 참회의 시편들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깊이 통회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히포의 모든 교회들과 특히 평화의 성당에 모여든 신자들이 그를 위한 사랑과 슬픔의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어거스틴은 430년 8월 28일 참회의 기도를 드리다가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그렇게도 사모하던 천국으로 옮겨졌고 그가 그렇게도 추구하던 의에 도달한 것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시신은 그가 세상을 떠난 그날 히포에 소박하게 매장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정말로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사람이었습니다.

4. 길선주

넷째로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도 철저한 회개와 참회의 고백을 하시므로 한국교회를 탄생시키셨습니다.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렸는데 그 당시의 상항을 묘사하는 글들을 소개합니다. “2천명 이상을 수용하는 장대현 예배당에 회중이 차고 넘치도록 모인 사경회원 전체가 성령의 휩쓸린바 되어 혹은 소리쳐 울고 혹은 가슴쳐 통곡하며 혹은 흐느껴 울면서 기도하고 혹은 발을 구르고 자복하며 혹은 춤을 추면서 찬미하니 소리소리 합하여 소리의 기둥은 번제단에 타오르는 불기둥 같이 하늘로 떠 떠올랐다.”

“길선주 장로는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이 이상한 귀빈이라는 것이었다. 존귀하신 분이 비천하고 누추한 땅에 오셨으니 이상한 귀빈이고, 귀중한 몸인데도 오셔서 밖에서 오래 기다리시니 이상한 귀빈이며, 전능하신 분이 간절히 두드리시니 이상한 귀빈이라는 것이었다. 귀빈을 맞아드리지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라는 것이었다. 자애하신 귀빈을 환영치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고, 간절하신 음성을 듣지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며, 굳게 닫은 방문을 열지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라는 것이었다. 길 장로는 ‘문을 열라 문을 열라 문을 열고 환영하라’고 준엄하게 외쳤다. 길선주 장로의 ‘마음의 문을 열고 성령을 영접하라’는 열띤 설교가 시작되었다. 설교가 끝나고 길 장로의 기도가 시작되자 감동을 받은 회중은 자기들도 모르게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지르며 통회 자복했다. 장내는 금새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는 기도회 도중에 갑자기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치기를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올시다’ 라고 하면서 지난 날의 죄를 뉘우치면서 회개했다. 길 장로는 기도하기를 ‘나는 하나님을 속였고 그 친구와 그의 부인을 속인 도둑놈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이 그 돈을 부인에게 돌려주겠습니다’ 라고 공중 앞에서 눈물과 함께 자복하였다. ‘나 때문에 온 회중이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죄인 중의 죄인이올시다’ 라는 자복기도는 쉬지 않고 계속하였다. 회중은 이 때 모두 마루 바닥을 치면서 회개하기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태어나게 된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은 진솔하고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사건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처절한 회개와 참회를 하는 가운데서 탄생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진정한 회개와 참회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로만 일어나고 회개와 참회의 사람에 의해서만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5. 이기풍

다섯째로 제주도 복음화의 선구자 이기풍 목사님도 회개와 참회의 고백을 평생토록 계속하신 분이셨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의 딸 이사례 권사님은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회고하면서 아버지 이기풍 목사님은 “솔로몬의 영광보다는 욥의 고난과 인내”를 사모하시던 분이시라고 간증을 했는데 그 간증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나는 제주도에서 지나던 어린 시절에 현재 제주도 성내교회의 목사관에서 자라났습니다. 이때에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평생 제 머리에 남아있습니다. 유치원 시절에 아버지가 새벽기도회에 가셔서 식사 때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을 때 아버지를 모시러 심부름을 가끔 다녔습니다. 하루는 교회 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버지의 큰 음성이 들렸습니다. 강대상을 부여잡으신 채 ‘나는 죄인 중의 괴수외다’ 라고 큰 소리로 울면서 기도를 드리고 계셨습니다.

나는 문간 옆에 있는 신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아버지가 울고 계시니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나서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평생을, 순교하시는 날까지 ‘나는 죄인 중의 괴수’ 라는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셨습니다. 제주도를 방문할 때마다 성내교회에 유물로 남아있는 강대상을 볼 때 아버지의 눈물 어린 기도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은 밖으로 나타나는 대단한 사역을 하기에 앞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지극히 낮추는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삶을 살았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6. 이성봉

여섯째로 한국의 무디 라고 불리시던 이성봉 목사님도 회개와 참회의 고백을 평생 계속하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신 분이셨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과 설교는 회개를 통한 중생의 은혜를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새벽기도회의 시간은 추상같은 권위로 죄를 책망하는 시간이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은 죄를 자복하며 회개했습니다. 자신의 삶이 철저한 회개에 기초한 삶이었기 때문에 이성봉 목사님은 항상 죄를 무섭게 지적하며 회개할 것을 강하게 촉구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에게는 대중들을 아부하는 설교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철저한 회개를 강조했습니다. 목사님 자신이 오직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살려는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평생토록 스스로 크고 작은 일들을 회개하면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설교 때마다 회개를 통해서만 죄인이 중생하고 구원 얻어 천국 간다고 강조했습니다.

“죄 지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이 아니요, 회개하지 못한 사람이 지옥에 간다. 개인이나 국가나 사회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신다. 회개는 방향 전환이다. 회개는 또한 숨은 부끄러움 곧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다 들추어내는 것이니 법률상으로 지은 죄, 도덕상으로 지은 죄를 다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사람과 관련된 것은 또한 사람과 해결 지어야 한다.”

이성봉 목사님은 “회개하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회개는 주님의 명령이요 소원인데, 회개란 지,정,의,행의 전폭적인 변화라고 폭 넓게 설명했습니다.

“회개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주님의 소원이며 뜻이다. 회개는 구원의 입문이요 기초이니, 복음의 대지가 회개요, 저주와 멸망을 막는 요새가 되는 것이다. 죄 지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지옥에 간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회개할 것인가? 그것은 지. 정. 의. 행으로 나타낼 수 있다. 회개는 지적으로 죄를 깨닫는 것이다. 회개는 정적으로 슬퍼하는 것이다. 회개는 의지적으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회개는 행위적으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그런고로 철두철미하게 회개하라.”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크신 은혜 중의 하나는 제가 중학생 때 대구에 있었는데 3년 동안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깊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특히 회개와 참회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7. 김치선

일곱째로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도 회개와 참회의 고백을 평생 계속하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신 분이셨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때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창동교회에 다녔는데 김치선 목사님께서는 새벽기도회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시곤 하셨는데 그 때도 저는 회개와 참회의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는 새벽기도회때마다 다음과 같은 찬송을 부르시면서 우시곤 하셨습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그래서 저는 새벽기도회후 남산에 올라가서 20여 분 이상 더 기도하고 집으로 내려오곤 했습니다. 저는 또한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산 기도회는 어디든지 참석하면서 은혜를 받곤 했는데 삼각산 관악선은 물로 대구 주남산 기도회까지 참석하면서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사실 저는 중학생 때와 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때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께서 전해주신 회개와 참회의 메시지와 은혜 사모의 메시지는 오늘의 저를 만드는 거름과 씨앗과 자양분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고 축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8. 결론

이제 “회개를 가장 귀중하게 여기신 신앙의 선배님들을 기리며” 라는 제목의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회개하면서 그리고 참회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회개하면서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첫째 색깔은 회개와 참회이기 때문입니다.

회개가 없는 믿음은 형식적인 믿음이고 위선적인 믿음이고 거짓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사람과 함께 하시고 상하고 통회하는 사람의 영을 소성시키시고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 57:15).

다윗과 사도 바울을 비롯한 우리 믿음의 선배님들은 모두 철저한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드리면서 살았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고 날마다 회개와 참회의 제사를 드리면서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로만 진정한 회개와 참회의 기도와 제사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길선주 목사님께서 집회 때마다 부르시던 김치선 목사님께서 새벽기도회 때마다 부르시던 찬송가 177장(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회하시고” 를 우리들도 다 함께 부르시겠습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