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2023년 3월 둘째 주
▲세계 한인 목회자 세미나에서 강의하는 소강석 목사.
“상남자보다 중요한 것은….”

수요일 저녁 예배에 갑작스럽게 미국 뉴욕에서 목회를 하시는 김성국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퀸즈 장로교회 장영춘 목사님의 지도 아래 목회 훈련을 받고, 아주 충직하게 부목사 생활을 하였던 분입니다.

장영춘 목사님은 뉴욕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디아스포라 세계 한인 목회자들을 하나로 묶는 세미나와 포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 저희 교회도 적지 않은 후원을 해 주었는데요.

한번은 장 목사님이 한국에 오셨다고 해서 제가 식사를 대접했는데, 다음날 캄보디아로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얼굴이 밝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캄보디아에 가지 마시고, 한국에서 쉬시다 미국으로 가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 선교지에 꼭 가야 된다고 하시며, 그 마음을 꺾지 않으시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소식을 들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뇌졸중이 와서 급히 미국으로 가셨다고 말입니다. 전화를 해보니 언어도 불편하신 듯 느껴졌습니다. 사모님께 자초지종을 들으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소강석 2023년 3월 둘째 주
▲이제 고인이 되신 장영춘 목사(세계 한인 목회자 세미나에서).
그런데 중풍에 어떤 특수 약재가 정말 효과가 있다는데, 미국에서 구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더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어찌 해서 그것을 하나님 은혜로 구하여 오전 비행기를 타고 뉴욕까지 갔습니다.

제가 갔더니 목사님이 너무 감격해서 막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이 의리가 있고 신의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토록 상남자인 걸 몰랐습니다. 그간 한인 목회자를 섬겨준 것도 감사한데, 약재까지 가져온 게 너무나 고맙습니다.” 저는 그 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드리고, 그날 저녁 비행기로 다시 왔습니다. 돌아와서 계속 전화로 확인해 보니까 그걸 드시고 아주 좋아지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세월이 흐르고, 그 일은 세월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 목사님을 모시고 부목사를 하다 퀸즈 장로교회 담임 목사가 되신 김성국 목사님을 대면하니까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김 목사님도 “온 교인들이 소 목사님의 그 헌신과 섬김에 위로를 받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라고 설교 서두에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때 장 목사님께서 하셨던 그 한 마디가 요 며칠 동안 계속 뇌리에 스쳐 갔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상남자’라는 단어입니다.

소강석 2023년 3월 둘째 주
▲세계 한인 목회자 세미나에서 강의하는 소강석 목사.
돌이켜 보면, 저는 상남자의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합니다. 항상 약자를 보면 보호해 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강자 앞에 전혀 굴하지 않는 용기와 패기가 넘쳤던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의리와 신의를 중히 여기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오죽하면 한동안 우리 교회 당회에서 “믿음이 없으면 의리라도 있자”를 슬로건으로 삼았겠습니까?

모름지기 남자로 태어났으면 상남자가 돼야 합니다. 대장부가 돼야 합니다. 제가 키는 작아 어찌 보면 소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저의 가슴 안에는 대장부의 심장이 꿈틀거리고 있고, 대장부의 기상과 결기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의 종이라면 무엇보다도 소명감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소강석 2023년 3월 둘째 주
▲故 장영춘 목사 후임 퀸즈장로교회 김성국 목사.
특별히 요즘 하나님께서 저에게 온유와 겸손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옛날 같으면 누가 저를 욕하거나 비방을 하면 당장 찾아가거나 전화를 했을 것입니다. 버럭 화를 내며 “왜 그러냐”고 그럴 텐데, 요즘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참는 훈련, 또 온유 훈련, 겸손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제가 누구보다 배짱이 있고, 용기와 결기가 가득한 사람이잖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참아야 할 때는 참고, 온유해야 할 때는 온유하게 만드십니다.

어느 현인의 말처럼 말이 되지 않는 사람과 말을 섞으면 ‘실언(失言)’을 하게 되고, 말이 되는 사람과 말을 하지 않으면 ‘실인(失人)’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이 되지 않는 사람들과는 아예 말조차 꺼내지 않으셨던 것을 보지 않습니까?

글을 쓰는 이 시간, 상남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 속에 새겨봅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