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개인 사독 솔로몬
▲코르넬리스 데 보스(Cornelis de Vos, ?-1651)의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는 사독 대제사장(The anointing of Solomon, 1630년경).

2. 사두개파(Sadducees)의 특성

솔로몬 때 사독 대제사장이 기원
마카비 혁명 후 왕위까지 겸직해
율법 위반이라며 도피, 에세네파

1) 사두개파의 기원

사두개인들에 관한 기록은 매우 적기 때문에, 그 기원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사두개인이라는 이름은 ‘사독(Zadok)’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독은 솔로몬 왕 때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왕상 2:35). 다윗 때는 대제사장이 둘 있었는데, 솔로몬이 왕이 된 후 대제사장들이 사독 가문에서만 나왔습니다.

미래 성전을 묘사하고 있는 에스겔(40-48장)도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기는 제사장 직분이 성소의 직분을 끝까지 지킨 사독의 후손들에게 위임되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겔 40:46, 43:19, 44:15, 48:11).

이렇게 제사장 직분을 독점한 사독 집안은 B.C. 538년 고레스 왕 칙령에 따른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다윗 가문의 왕이 사라진 이스라엘에서 사독 가문은 이스라엘에 대한 실질적 통치권을 행사하는 제사장 가문으로서 합법적인 지위를 인정받게 됩니다.

이후 마카비 혁명(B.C. 167-164) 때까지 사독 집안은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제사장 가문이 됩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사독 가문 출신 대제사장이 장로회의에서 선출되면, 평생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형태의 자치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마카비 혁명으로 하스모니아 왕가가 권력을 잡자, 이들은 왕위는 물론 대제사장직까지 강제적으로 겸직하였습니다. 비록 일부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 중심으로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저항하였지만,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왕가의 뜻을 굽히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때 대제사장을 비롯한 일부 사독 가문 제사장들이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유대 광야에 위치한 쿰란으로 도피하며 독자적인 예배 체계를 갖춘 것이 바로 에세네파의 기원입니다.

이들은 자격 없는 대제사장이 드리는 성전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타락한 성전을 떠나 유대 광야에 숨어 운둔 생활을 하면서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정결 예식을 매우 강조하였는데, 이는 선택받은 ‘빛의 자녀’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조건이며 이렇게 준비가 되었을 때 메시야가 오셔서 부패한 ‘어둠의 자녀들’이 제사 드리는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빛의 자녀’가 주도하는 새로운 성전을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독 가문 제사장들은 하스모니아 왕가가 대제사장직을 불법적으로 강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남아 성전에 남아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사독 제사장 가문 출신의 제사장’이라는 의미로 ‘사두개인’이라 불렀으며, 성전 제사를 주관해야 하는 자신들의 책임과 또 성전에 걸려 있는 많은 특권과 이권들 때문에 성전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여 나갔던 것입니다.

에세네파들은 이들을 ‘가짜 사두개인들’ 즉 ‘사독 가문 가짜 제사장들’이라고 불렀고, 자신들이 ‘참된 사두개인’이라 주장하였습니다.

사두개인
▲뉘른베르크 연대기(Nuremberg chronicles) 속 사두개인 삽화.

대제사장, 이스라엘 지도자 역할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권력 중재
사두개인, 특권층 전체로 확대돼

2) 사두개파의 발전

B.C. 63년 하스모니아 왕가가 로마 제국에 멸망한 후, 대제사장직은 돈으로 거래되는 부패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성전을 지배하는 이 자리에는 권력과 부가 함께 하였기 때문에, 헤롯 왕가와 로마 제국은 사독 가문과 관계없이 자신들에게 뇌물을 주거나 적극적으로 자신들에게 협조하는 제사장을 골라 대제사장에 임명하였습니다.

엄청난 이권이 달린 대제사장직을 탐낸 제사장들은 엄청난 돈을 주고 대제사장직을 샀으며, 임명된 뒤에는 쓴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수탈하고 임명권자의 취향에 맞는 정책으로 보답을 하였습니다. 예외적으로 제1차 유대-로마 전쟁(B.C. 70-66) 때는 열심당원들이 제사장들 중 제비뽑기로 대제사장을 선출하였습니다.

비록 사독 가문 출신이 아니더라도 임명된 대제사장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백성들은 이율배반적으로 대제사장의 부패를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복종을 하였습니다.

신약 시대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통치자 사이 중재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양쪽 입장을 중재함으로써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였지만, 로마 제국에 의하여 임명된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이 오직 1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마 21:45; 요 7:32, 45). 여러 제사장 가문의 대표들이 서로 돌아가며 일년씩 대제사장직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요 11:49, 51).

이처럼 대제사장은 율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권위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힘이 센 제사장 가문 사이에서 서로 돌아가며 하는 경향이 있었고, 로마 제국도 제사장들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하여 이를 수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성전에서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사두개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범위를 확대시켜 나갔습니다. 사독 가문 출신 제사장에서 시작하여 다른 제사장 가문 출신의 성전 봉사자들 그리고 성전을 기반으로 하는 상업에 종사하는 상인들도 이 그룹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귀족 계급들과, 성전과 관련하여 생계를 유지하거나 이권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사두개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두개인들은 성전을 통하여 얻은 특혜로 부유한 삶을 살았으며 또 그 특권을 오래 유지하기 위하여 로마 제국에 협조하는 공생 관계를 형성하였습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1836–1902)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예수를 유혹하기 위해 오다(The Pharisees and the Saduccees Come to Tempt Jesus)’.

율법 연구보다 성전 제사에 관심
현실적 신학 갖는 것 당연한 결과
재물 제공해주는 성전 포기 못해

3) 사두개파의 신학

이들의 신학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자료 부족으로 인하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을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두개파, 바리새파, 그리고 에세네파 모두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였다는 점과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 유대인들이 어떠한 성격의 민족인지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특징에 불과하며, 좀 더 깊이 들어가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매우 다른 믿음(혹은 사상)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율법 연구보다 성전 제사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던 사두개파 신학이 매우 현실적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화수분처럼 엄청난 재물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는 성전은 이들의 세계관에 중심이 될 수밖에 없으며,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엄청난 기득권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사두개인들은 △성경에 쓰여진 613개의 율법만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점 △최후 심판, 부활 그리고 천사나 악마 같은 영적인 존재들을 믿지 않는다는 점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며 하나님이 항상 이 땅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 등에서 다른 유대 그룹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구전 율법은 말씀 인정하지 않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실천 강조
율법 세분화한 바리새인에 반대

①율법의 범위

사두개인들에게 율법은 성전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제사 대신 율법 연구와 실천에 몰두하기를 기뻐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율법은 성전 제사를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 범위였으면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오직 구약에 기록된 613가지의 율법이면 충분하였고, 굳이 성전 제사 이외의 다른 세세한 규정은 오히려 백성들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장애물로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구전 율법은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지킬 필요가 없는 것으로 치부하였습니다.

이처럼 율법 해석에 대한 집중을 반기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성경 해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의미를 찾기보다는 문자가 드러내는 구체적인 의미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리새인들이 오랜 시간 머리를 짜내 만들어낸 안식일에 대한 자세한 해석(구전율법: 장로들의 전통)이 오히려 안식일 계명을 약화시키거나 거스르게 만든다고 비난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될 일로 엄청나게 세분화시켜 구별하여 놓았는데, 이는 오히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는 다르게 성경에 쓰여진 그대로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는데, 심지어 율법을 어길 때의 처벌도 율법에 쓰여진 대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안식일을 어긴 경우 성경에 기록된 대로 ‘돌로 쳐 죽이는 것’을 옹호하고 실행하였습니다(출 31:12-17, 민 15:32-36).

사두개인 대제사장
▲1890년대 홀맨 바이블(Holman Bible) 속 대제사장(The High Priest) 삽화.

영적 세계 및 사후 세계 불인정
이 땅에서 주시는 물질 풍요 추구
부활도 성경에 없다며 믿지 않아

②영적 세계 부정

성전 제사 중심의 삶을 영위하고 또 율법의 문자적 의미만을 받아들이는 사두개인들은 매우 현세적인 삶의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요세푸스는 사두개인들의 이런 태도를 희랍의 에피쿠로스 학파와 비슷한 것으로 분류하였는데, 영적인 세계나 이생의 삶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이 땅에서의 쾌락(즉 풍요)을 추구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물론 소위 쾌락주의로 불리는 희랍의 에피쿠로스 학파는 물질적 풍요나 육체적 쾌락이 아니라 ‘신체에 고통이 없는 완벽한 상태(이는 쾌락을 최소로 함으로써 얻을 수 있음)’를 추구하는 반면, 사두개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적 풍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두개인들은 영적 세계에 대해 바리새인들이나 에세네인들과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오직 성경에 기록된 것만 믿었고 바리새인들의 구전율법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약에서 부활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있기는 하지만, 문자 그대로 믿는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 12장 2절은 부활과 심판에 대한 암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이사야 26장 19절도 부활에 대한 암시로 읽을 수 있지만, 사두개인들은 부활이나 심판 등에 대한 명확한 표현이 아니라 은유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였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모세오경의 율법만 하나님 말씀(명령)으로 받아들이고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였기 때문에 이런 구절들을 무시하였습니다.

부활을 부정하였다는 것은, 곧 사후 세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두개인들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영혼도 사라지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들은 천사와 영의 존재를 믿지 않았으며(행 23:8) 또 죽은 자들이 최후 심판일에 부활할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막 12:18-27).

이런 세계관에 따라 사두개인들은 사후 세계를 위하여 선을 쌓는 것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았고, 따라서 남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는 결국 선을 베푼 것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부정하는 것으로 자신의 힘으로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이들의 삶의 목표가 되었던 것입니다.

요세푸스는 사두개인들을 ‘잔인하고 야비한 자들’로 묘사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런 태도에는 특권층으로서 (마치 ‘조센징’이라고 하면서 자국 국민들을 무시하고 학대한 일정 시대 친일파 귀족들처럼) 사두개인들의 자존심과 교만함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남에게 선을 베풀어야 하는 의미를 찾지 못한 결과, 오히려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잔인함과 이 땅에서 가능한 한 최대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극단적 이기심의 소유자들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에서 하나님 간섭하심 부정
율법 지키되 인간 자유의지 중시
복음 전파한 제자들 가장 핍박해

③현세적 세계관 소유

사두개인들이 이처럼 영적 세계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부정하는 것은 이 땅에서의 하나님 간섭을 부정하는 결과로 귀착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이 땅의 모든 일이 하나님 뜻에 따라 결정되어 이루어진다고 보지는 않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초월자(Idea)가 이 세상을 만들었지만 더 이상 이 땅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고 초월하여 있다”는 플라톤의 이원론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입니다. 더 이상 세상에 간섭하지 않는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오히려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자신의 의지로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말씀인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며 사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선과 악의 문제 혹은 상과 벌의 문제가 아니라, 성전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유지를 위한 것입니다. 개인은 이러한 성전 중심 세계의 한 부분이지만,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우 현실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사두개인들은 하스모니아 왕가든, 헤롯 왕가든, 혹은 로마 제국이든 가리지 않고 각각의 환경에 적응하며 나름대로 부와 권력을 추구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로마 제국에 대한 적개심조차 옳지 않은 것으로 감싸고 도는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움을 샀으며, 나아가 열심당원들의 살해 목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두개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런 세계관을 반대하는 그룹들입니다. 자칫하면 기득권을 빼앗길까 두려워하였던 이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었던 바리새인들과 원수처럼 지내었습니다.

또 성령 강림 이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던 베드로와 바울을 처음부터 가장 심하게 핍박한 것도 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의 주장에 유연한 자세를 보였지만, 제사장을 포함한 사두개인들은 처음부터 몹시 분개하여 예수의 부활을 주장하는 사도들에게 감정적인 대응을 하였던 것입니다(행 4:2, 5:17).

강한 권력과 자신들의 믿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이들은 다른 믿음을 가진 그룹들에게 매우 잔인하게 대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 문화 배경사 류관석
▲류관석 교수.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