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고난에도 정체성 지켰던 위그노 예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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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미술에 대한 위그노의 시각

열정적 도예가 베르나르 팰리시
독특한 세라믹 유약 기술 발명해
창조 세계 아름다움과 경이 표현
굽히지 않는 신앙으로 박해 표적
비참함과 궁핍 속 하나님 부르심

▲베르나르 팰리시, 세라믹 도자기, 16세기 중반.
▲베르나르 팰리시, 세라믹 도자기, 16세기 중반.

위그노 신자 베르나르 팰리시(Bernard Palissy, 1510-1589)는 초기에 스테인드글라스 견습공으로 출발하여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아름답게 유약을 바른 솜씨 좋게 만들어진 도자기 찻잔”에 매료되어 그 비밀을 캐보기로 결심한 것이 그가 도예가가 된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살던 마을에서는 도자기를 배울 수 없었으므로 그는 독학으로 “마치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듯 에나멜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백 차례 실패의 고배를 마신 후에야 비로소 그만의 독특한 세라믹 유약 기술을 발명할 수 있었는데, 이것으로 그는 매우 섬세하고 복잡한 표현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열정적인 도예가인 팰리시는 어류, 식물 및 파충류 등 자신의 작품에 사용할 실제 표본의 모형을 만들고 거기에 다양한 유약을 발라 이른바 ‘팰리시 도기’(Palissy ware)를 개발해냈다.

시골에서 성장한 덕에 팰리시는 들과 산, 연못에서 볼 수 있는 자연주의적인 모티브를 접목한 작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 점은 다른 도예가들의 작품에서는 흔치 않은, 이채로운 특징이다.

그의 작품들은 연못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그안에는 물고기, 개구리, 뱀, 도마뱀, 물 딱정벌레, 가재 및 다양한 조개껍질, 양치류 등 다양한 생명체들이 빼곡하게 운집해 있다. ‘작은 연못’이라고 할 만큼 온갖 생명체들을 작품에 응축해 놓은 것 같다.

통상 도자기라고 하면 ‘실용 도자기’를 연상하는 데 비해 그는 놀랍게도 눈으로 즐기는 ‘감상용 도자기’를 제작했고, 이런 시도는 도자기에 대한 통상적인 인식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의 자연친화적인 작품은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의 도자기작품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예술적인 작품과 함께, 팰리시는 저술활동을 병행하기도 했다. 그는 자연사와 지질학에서부터 철학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글을 썼다. 특히 그는 신앙과 과학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고, 그의 많은 작품들은 둘 사이의 조화에 대한 그의 믿음을 반영한다.

그의 예술적 성공으로 까뜨린 모후와 앙리 3세의 총애를 받으며 ‘왕의 도예 발명가’라는 공식 직함까지 얻었다. 그러나 위그노와 가톨릭 교회 및 권력층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에, 그는 굽히지 않는 신앙으로 박해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팰리시는 경건한 신앙과 공동체를 지키려는 교회 사역으로 인해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그때마다 큰 고통을 치러야 했다. 한 번은 그가 감옥에 구금되어 있었을 때 앙리 3세가 찾아와 개종하라고 회유하였지만 팰리시는 개혁 신앙을 지켰고,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어 ‘비참함과 궁핍, 열악한 대우’(Pierre L’Estoile)를 받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아브라함 보스, 벽난로 앞의 지혜로운 처녀들, 에칭, 26x33cm, 1635년경, 워싱턴의 내셔널 뮤지엄 오브 아트.
▲아브라함 보스, 벽난로 앞의 지혜로운 처녀들, 에칭, 26x33cm, 1635년경, 워싱턴의 내셔널 뮤지엄 오브 아트.

정교했던 판화가 아브라함 보스
짧은 기간 종교 자유 누리고 표현
예수 탄생과 성경 장면 묘사 즐겨
고전적 방식 쓰면서 선구자 역할
크로스 해칭 기법으로 특성 살려

팰리시가 도예가였다면, 아브라함 보스(Abraham Bosse, 1604-1676)는 판화가였다. 약 1백 년의 갭이 있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둘 다 위그노 출신의 예술가였다는 점이다.

아브라함 보스는 위그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독일에서 이주한 재단사였는데, 그 때문인지 보스의 그림에서는 복장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림을 보면 그 시대의 풍속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가 낭트 칙령이 폐기되기 전에 사망하면서 한정된 기간이나마 종교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 있을 것이다. 위그노 공동체의 존경받는 일원이었던 그는 팰리시와 마찬가지로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표현하는 데 힘썼다. 특히 그는 일상생활을 정교하고 치밀한 표현력으로 묘출하였다.

많은 에칭과 판화 작품에서 보스는 종교적인 장면과 상징들을 묘사했고, 특히 예수의 탄생과 성경의 장면들을 묘사하는 것을 좋아했다. <벽난로 앞의 지혜로운 처녀들>과 <잠자는 어리석은 처녀들>은 한 쌍을 이루는 작품으로, 그리스도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여인들과 잠을 참지 못하고 졸거나 아예 깊은 잠에 빠진 여인들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자의 지혜로운 여인들 뒤로 십자가와 성경책이 놓여 있는데 반해, 후자의 어리석은 여인들 뒤로는 화려한 장신구들이 놓여 있어 이들의 평소 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떠한 자세로 그 날을 준비해야 하는지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으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눅 12:35-36).”

<벽난로 앞의 지혜로운 처녀들> 주인공들은 주님 말씀을 묵상하거나 혹은 기도하면서 주인이 오실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주위가 캄캄한 것으로 미루어 깊은 밤중임을 알 수 있으며,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가 성경 본문의 ‘등불’을 대신하고 있다. 그에 반해 <잠자는 어리석은 처녀들>에서는 꺼져가는 불길 속에 여인들은 깊은 잠에 곯아 떨어져 있다.

보스의 예술적 스타일은 고전적 방식을 띠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에칭과 인그래이빙 분야의 선구자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입체나 음영 표현에 용이한 크로스 해칭(cross-hatching) 기법을 애용하였는데, 이로 인해 섬세한 표현이나 회화적 깊이감 등 판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활용해내고 있다.

위그노, 16-18C 다수 작품 남겨
직업 하나님 주신 사명으로 여겨
박해와 순교에도 재능 계발 힘써
작품들 문화적·역사적 맥락 반영
공동체 투쟁에 대한 인식 제고도

박해와 순교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도 위그노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위그노 예술가들은 16-18세기 상당한 예술 작품을 남겼고, 그들의 공헌은 유럽 예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위그노 가운데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많이 나온 것은 그들의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여겼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1536년) 초판에서 “이 모든 것들이 어디서 나타나든지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고 하면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강조했다. 이 책을 읽었거나 들었던 사람들은 자신이 왜 세상에 왔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위그노들은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그들의 확고한 정체성을 지킬 줄 알았다. 위그노 성도들이 자신이 속한 지역이나 모임, 무대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성경적 인생관 위에 정초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위그노의 미술을 보는 시각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겪은 삶은 너무나도 가혹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절망하거나 신앙의 유산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작품은 박해와 차별에 직면했던 위그노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위그노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기념하고, 위그노 공동체의 투쟁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자 했다.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서성록 명예교수(안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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