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키아행 거부했던 버스기사, 동족이 치료받는 모습 보고…

김신의 기자  sukim@chtoday.co.kr   |  

위험 무릅쓰고 여진 현장서 봉사한 그린닥터스

▲의료봉사 현장. ⓒ그린닥터스 제공

▲의료봉사 현장. ⓒ그린닥터스 제공

튀르키예 지진 봉사 나흘째, 그린닥터스 ‘튀르키예대지진 긴급의료봉사단’은 전날 여진으로 다수의 사상자들이 발생한 안타키아 지역에서 긴급 진료활동을 펼쳤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여진까지 겹쳐 폐허처럼 변해버린 안타키아에서 그린닥터스는 이재민 100여명을 진료했다.

그린닥터스는 당초 나흘째 지진 이재민들이 대규모로 피신해 있는 메르신 난민캠프에서 의료봉사를 하려 했으나, 일정을 급히 바꿔서 여진 현장인 안타키아로 갔다. 봉사지역 변경에 일부 대원이 반대했다. 전날 강력한 여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신변 안전 보장을 할 수 없는 데다, 이미 본지진에다 여진까지 겹쳐 역할이 없지 않겠느냐는 현실론이었다. 정근 단장과 그린닥터스 이사인 임영문 목사(부산 평화교회 담임)가 적극 나서서 안타키아 행을 주저하는 대원들을 설득했다.

“지금 안타키아에서는 그린닥터스 봉사단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지난 주일 무너진 교회에서 진료할 때 만났던 이재민들이 안전한지 너무 걱정스럽다. 설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힘든 이재민들을 외면할 수 없지 않느냐.”

결국 정근단장과 임영문 목사에게 설득당한 그린닥터스의 튀르키예 봉사단 16명 가운데, 당초 일정 지역인 메르신 캠프에 구호물품을 전달하기로 한 2명을 제외하고는 14명 모두 여진 현장인 안타키아에 합류했다.

아다나에서 버스로 안타키아로 이동하기로 했다.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잇따른 여진 속보에 튀르키예인 버스기사가 안타키아행을 거부한 것이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 버스 운행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한나절 정도로 진료활동을 단축하고, 가다가 도로가 막히면 곧바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서야 튀르키예 버스기사는 안타키아행에 동의했다.

규모 6.4의 여진으로 안타키아(안디옥)는 참혹했다. 모든 게 무너진 상태였다. 반듯이 서 있는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진 현장의 이재민캠프가 있는 베드로동굴 밑에 도착하니, 산 위의 거대한 암석이 굴러 떨어져 이재민촌 입구에 멈춰져 있었다. 아찔했다. 조금만 더 굴렀더라면 바위가 이재민 캠프를 덮쳤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이 이재민캠프엔 튀르키예인뿐만 아니라 시리아인 이재민들도 많았다.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진앙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설치된 이재민캠프였다.

▲의료봉사 현장. ⓒ그린닥터스 제공

▲의료봉사 현장. ⓒ그린닥터스 제공

그린닥터스로서는 지난주일 이틀째 봉사활동을 벌였던 터에 안타키아 주변이 낯설지는 않았다. 일요일엔 멀쩡했던 산중턱의 집들이 여진으로 바위와 흙더미에 매몰돼 있었다. 도착 즉시 이재민들의 도움으로 책상 2개, 의자 3개만으로 신속하게 임시진료실을 차렸다.

그린닥터스 봉사단 도착 소식을 들은 이재민들이 몰려왔다. 소아청소년과 오무영 과장, 성형외과 김석권 과장, 외과 박무열 과장, 안과 정근 단장 등 의사 4명이 진료에 참여했다. 주로 감기와 피부질환, 타박상 등 외상 환자들이 많았다. 2, 3시간 일정으로 차린 진료소여서 의사들이 100여명의 환자들을 돌보느라 바삐 움직였다.

의사들의 진료 속도에 발맞추려고 임영문 목사가 나서서 약봉지 싸는 것을 도왔고, 유일한 간호사인 주명희 온종합병원 간호과장도 네 명의 의사를 돕느라 눈 코 뜰 새 없었다. 소방공무원 출신 최찬일 그린닥터스 이사가 응급구조 치료를, 그린닥터스 박명순 사무부총장과 온종합병원 총무팀 정명규 주임, 취재기자로 합류한 최혁규 국제신문기자까지 나서서 환자 접수 등 임시진료소 활동에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도 긴급한 상황에서 차려진 허름한 여진현장 진료소였는데도, 진료활동을 차질 없이 진행하게 된 것은 튀르키예 앙카라의 김홍기 목사, 이정진 선교사의 원활한 통역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정근 단장은 “우리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다윗과 같은 용기로 재난지역 지원에 나섰고, 프로처럼 야전병원(?)을 신속히 차림으로써 지진에 고통 받고 있는 이재민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었다”며 모든 대원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정 단장은 특히 “처음에 여진 현장으로 운행하지 않으려고 했던 튀르키예 버스기사도 안타키아에서 자기 나라 사람들이 치료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린닥터스 대원들에게 오기를 잘했다며 감사해했다”면서 “점심식사도 거른 채 뛰어다녔지만 모두가 가슴 뿌듯이 행복해하는 의료봉사 단원의 마음이, 진정한 봉사이자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의 실천”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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