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인, 문화 재정향·재구성 참여
그리스도인 예술가 청지기직 수행
SNS에서 공동선과 상식 존중해야
희망의 불씨 전해주는 일에 많은
예술가들 동참해 널리 확산되길
칭찬 릴레이처럼 ‘애도 릴레이’를

명민호 일러스트레이션
▲명민호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 ⓒ작가 제공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엄습한 대지진으로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낸 참사 가운데, 한 일러스트레이터(삽화가)의 그림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명민호 작가는 튀르키예 국민들을 위로하는 작품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개하였다. 평소 청춘 남녀의 로맨스를 즐겨 다루어온 작품 경향에 비추어 이번 작품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위급하게 보았다는 뜻이리라.

그의 작품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온 소식으로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는 동시에 인류애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림에는 튀르키예 국민에게 보내는 애도와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다. 작가는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많은 도움과 큰 희생을 했던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에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다시 한번 잊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하였다.

그의 그림은 두 컷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점은 6.25 당시 기와집과 초가집 폐허 앞에 선 한국인 소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초콜릿을 건네는 튀르키예 군인 모습이 담겨 있고, 다른 한 점은 부서진 건물 잔해 앞에서 튀르키예 소녀가 한국 긴급구호대가 건네는 물을 마시는 장면을 비슷한 구도로 제작하였다. 우리 구호대가 구조한 여아 ‘루즈’를 소재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점의 컷은 SNS와 인터넷을 타고 한국은 물론, 튀르키예 국민들에게 전해져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수통을 든 튀르키예 군인이 무릎을 꿇고 한국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흑백그림은 ‘기적의 아이 아일라’(잔 울카이 감독)라는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화는 2017년 튀르키예에서 개봉돼 그해 박스 오피스 2위를 기록했고, 국내에서는 2018년 개봉되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명민호 작가의 그림에 대해 쿨후리예트, 7뉴스 등 현지 매체들은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가 73년 전 한국전쟁에서 튀르키예의 지원을 그림으로 표현해 튀르키예 국민들을 위로했다”고 보도했다. 튀르키예 국민들도 “우리를 잊지 않고 도와주어 고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튀르키예 국민들은 왜 이렇게 이 그림에 반응을 보였을까? 그것은 아마 튀르키예 피해 현장의 한 가운데서 한국전쟁의 고아 ‘아일라’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7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인들은 한번에 그림속 병사가 슐레이만이며, 소녀는 ‘아일라’라는 것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영화 ‘아일라’는 한국전쟁 당시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도 튀르키예 병사 슐레이만이 5세 여아 아일라를 딸로 삼은 파병 군인과 전쟁고아 사이의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다.

당시 튀르키예 종군 통역관을 지냈던 백상기 씨는 튀르키예 군인들이 “혹독한 겨울에 콧물을 흘리고 잘 데 없고 갈 데 없는 고아들을 부대로 데리고 와 천막에 같이 재워주고 먹여주고 심지어 전투를 갈 때도 고아들을 데려가며 챙겨주었다”고 회고하였다.

슐레이만은 아일라를 고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애썼으나 불발로 끝났고, 튀르키예에 돌아간 뒤에도 그는 아일라를 데려오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허사였다고 한다.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면서 연락이 두절되었고 아일라의 행방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국내 언론의 노력으로 두 사람은 60년 만에 재회할 수 있었고, 이때 실제 인물 김은자 씨는 “내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감격의 소회를 밝혔다.

슐레이만 역시 헤어질 때 ‘꼭 돌아오리라’고 한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쁘다며 “당시 5살 어린 아이가 이만큼 커서 어른이 되었다”고 놀라워했다. 슐레이만은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였던 아일라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숨을 거두었고, 그 소식은 튀르키예 방송보도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명민호 작가의 작품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지켜보면서, 작품에 반응하는 문화 현상의 배경을 돌아보게 되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웃을 섬기도록 보냄을 받은 미션을 지닌 그리스도인이기에, 이번 문화 현상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종래 일러스트레이션이 종이라는 지지체 위에서 붓과 물감을 사용한다면, 태블릿 일러스트레이션은 디지털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 다를 뿐 전 과정이 유사하다. 다만 형태와 채색, 수정 작업이 용이하고 복제성이 수월하다는 점에서 기존 일러스트레이션과 구별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역설적으로 예술적 천박성이나 상업주의에 빠질 위험성도 그만큼 높다.)

디지털 도구의 발명은 사람들이 그들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을 더 쉽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지구촌 유저들과 연결되는 새로운 통로를 제공하였다. 이로써 물리적 공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가능하게 된 셈이다.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은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제공하면서 전통적 형태의 의사소통보다 더 수월한 방식으로 그들의 아이디어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한다.

명민호의 작품에 30만 명 넘는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하고, 1만 1천 개 넘는 댓글이 달린 것은 SNS 공간을 그들의 소통 무대로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이런 일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명민호의 튀르키예 그림을 계기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 셈이다. SNS 공간을 긍정적인 문화를 창조하고 유통시키는 무대로 여긴다면, 그것의 중요성은 점점더 커질 것이다.

앤디 크라우치(Andy Crouch)의 말대로 사람들이 더 많은, 더 좋은 문화를 만들어낼 때 문화가 변한다. 문화를 변화시키고 싶고 또 그럴 의도라면, 우리는 인간의 문화적 활동 속으로 뛰어들어 문화를 재정향하고 재구성하는 일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 책임의식을 지닌 그리스도인 예술가로서 문화의 청지기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소셜미디어에서의 활동은 상대를 배려하는 ‘공동선’(commom good)과 ‘상식’(common sense)이 존중되는 균형잡힌 자세를 전제로 할 때 신뢰성을 얻게 되지만 말이다.

명민호의 작품은 참혹한 재난으로 낙심하고 슬퍼하는 현지인들을 위로하고 애도해 주었다. 우리 시대는 불행하게도 재난 외에도 폭력, 갈등과 불신, 인종차별 등이 만연해 있다. 폭력과 갈등은 더 큰 폭력과 갈등을 부추긴다.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다. 일단 터지면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런 차에 작가는 전쟁으로 맺어진 두 사람의 강하고 순수한 유대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희망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튀르키예 국민은 소녀를 구하는 한국 구조대의 활동을 보면서, 우리에게는 위기에 빠졌을 때 도와주는 좋은 친구가 있다고 자부했을 것이다. 종교와 문화는 다를지언정 얼마든지 그들과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가 아닐 수 없다.

바람이라면 희망의 불씨를 전해주는 일에 많은 예술가들이 동참해서 이 운동을 널리 확산시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예전에 ‘칭찬 릴레이’가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애도 릴레이’가 봇물 터지듯 나왔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서성록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