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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막기증인 故 이숙경 집사와 딸 임지원 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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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엄마가 기증하신 각막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무사히 이식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엄마의 눈을 통해 어둠 속에 있던 누군가가 빛을 되찾았다니, 하늘에 계신 엄마가 무척 기뻐하실 거예요.”
얼마 전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보낸 고인의 딸 임지원 씨(30, 여)의 표정이 어쩐지 밝았다. 임 씨는 고인을 떠나보낸 후 매일 저녁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엄마는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어요. 지는 게 이기는 거고, 남을 위해 사는 게 나를 위해 사는 거라고요.”
일찍 혼자가 된 이숙경 집사는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 온 가장이었다. 하지만 당장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하루 끼니를 걸러서라도 기꺼이 도울 만큼 나누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고인의 따뜻한 성정은 2016년 임지원 씨가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한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임 씨는 고인이 입버릇처럼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대신 이웃을 위해 생명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3개월 시한부 선고에도 마지막까지 나누는 삶 염원
이 집사에게 비극이 찾아온 건 지난해 7월이었다. 평소 소화가 안 돼 병원을 찾은 이 집사는 췌장암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암의 전이 속도가 빠른 데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더 손을 쓸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이 집사는 시편 23편 다윗의 시를 붙들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고통에 비하면 이 만한 고통은 감사하다. 살려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자”라고 말하는 등 오히려 딸을 위로했다.
지난 1월,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했던 이 집사는 가족들을 불러 놓고 각막기증을 유언으로 남기며 생명나눔을 향한 뜻을 다시 한 번 확고히 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30일 오후, 질병의 고통으로 힘겨워하던 이 집사의 호흡이 일순간 안정적으로 바뀌더니 이내 숨을 거뒀다.
“마지막 순간, 병실 창문 너머로 따뜻한 햇살이 비춰 엄마의 얼굴에서 빛이 났어요. 엄마가 그토록 소망하던 하나님을 만난 게 틀림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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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근조기가 세워진 故 이숙경 집사의 빈소 모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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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성정 빼닮은 딸 임지원 씨, 생존 시 신장기증에 대한 의지 밝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엄마를 만나러 천국에 오면 그때에도 엄마와 딸로 살자.”
고인이 남긴 마지막 편지를 읽고 또 읽는다는 임 씨는 엄마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감사함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어서 임 씨는 고인을 간호하며 물 한 잔 온전하게 마실 수 없는 환자들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며, 최근 생존 시 신장기증을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언젠가 생존 시 신장기증인이 되어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다는 임 씨는 “제 생이 언제 다할지는 모르지만,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각막기증자 수, 2016년 이후 회복될 기미 안 보여
한편 지난 2022년 뇌사자를 포함해 사후 각막기증을 실천한 이는 132명이었다. 지난해 11월 기준 연간 사망자가 338,867명인 점을 고려하면 0.04%도 안 되는 사람만이 각막기증을 실천한 셈이다. 각막기증자 수는 2016년 293명에서 2017년 204명으로 급격히 줄어든 이후, 2018년 173명, 2019년 163명, 2020년 144명, 2021년 159명을 기록하며 200명대를 넘어서지 못한 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각막이식 대기자는 지난해 기준 2,128명이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