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도 50억 클럽
▲곽성도 전 의원 아들 50억 원 퇴직금 무죄 관련 보도 화면. ⓒTV조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 함은,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에 대한 가장 명료한 표현입니다.

사도 요한 생존 당시 가현론자(假現論者)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추악한 인간이 되어 자신의 신성을 더럽힐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실제로 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인 것처럼 보이고 행동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러한 황당무계한 이론을 단호히 배척합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구절의 문자적 의미는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셨던 광야의 장막과 예루살렘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

“독생자”라고 번역된 헬라어 ‘모노제네스’는 모노스(하나)와 게노스의 합성어입니다. 여기서 ‘제노스’는 ‘낳다’는 의미의 동사 ‘게나오’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이 되다’는 의미의 헬라어 ‘기노마이’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의 의미는 독생자라기보다, 오히려 ‘유일하신 자’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에는 이삭이 ‘아브라함의 독생자’라고 언급돼 있는데, 아브라함에게는 이삭 외에도 다른 아들이 있었습니다. 즉 성경에서의 독생자란 약속의 아들 또는 각별한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말은 예수가 하나님의 각별한 아들이심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과 예수의 각별한 관련성이 요한복음의 주제가 되는 것임을 주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매주 우리 신앙인들은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립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주의 종으로부터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는 그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나의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귀를 쫑긋 세워 듣고 계십니까? 물론 말씀을 잘 듣기 위해 집중하고 계시겠지만, 저는 이렇게 되묻고 싶습니다.

주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글자 하나도 흘려듣지 않기 위해 온전히 집중하고 계시는지, 아마 예배드리는 성도들 중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흘려듣는다는 면에서, 우리는 주님 앞에 당당하게 서 있기 한없이 부끄러운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귀로는 당신의 말씀을 너무 쉽게 흘려버리기에, 이제 더 이상 흘려버리지 않도록 말씀을 귀가 아니라 입으로 모셔야 합니다. 말씀은 스스로 빵이 되신 예수님을 통째로 받아 삼키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잘해서 또는 자격이 있어서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겠지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지 않으시고, 그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완전하게 당신 것으로 삼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인들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로움을 능가합니다. 말씀을 듣고 열심히 실천하려 노력하는 그들과 달리, 우리는 말씀을 통째로 삼키고 말씀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주님의 제자로 살아갑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재판에도 넘겨져야 하고 불붙는 지옥에도 떨어져야 하며, 손발도 다 잘려야 하는 존재들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주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써 우리를 완전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그런 주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온 시간이 더 많습니다. 돈, 권력, 명예는 노력해도 가지기 어렵고, 가지면 더 갖고 싶어 하는 욕심으로 충만해집니다. 세상살이는 더욱 힘들고 각박해져, 지치고 어두운 마음으로 사는 시간은 더 늘어납니다.

신앙이란 세상 것보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으로 나를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은혜는 차고 넘치는데, 그것을 채우려는 내 그릇이 너무 작은 것 아닌지 부끄러울 뿐입니다.

누구나 세상 직분과 사명이 있어 열심히 살아가지만,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 내 욕심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이 시간을 통해 나를 성찰해도 좋겠습니다.

지금 이 나라는 야당 이재명 대표의 검찰 출석으로 매우 분주하고 시끄럽습니다. 국민들은 지친 듯 사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합니다. 보통 국민들은 조금만 잘못해도 즉시 구속하는데, 정치인들은 갖은 혜택을 누리니까요. 죄를 지어도 국회의원은 체포조차 하지 못하는 실태를 보노라니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조국 전 장관 재판에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까? 이제 겨우 1심 재판이 끝나 단죄를 받았는데, 당사자는 항소하고 나섰습니다.

야당 대표는 어떻습니까? 자신이 원하는 날짜에 검찰에 출두하고, 시간도 지키지 않은 채 마음대로 사법부를 농락하고 있으니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검찰 조사가 끝나고 나와서 기자들에게 하는 말은 또 어떻습니까? “이럴 시간에 50억 클럽을 수사하든지, 전세 사기범을 잡든지, 주가조작 사건을 조사하든지,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진정한 검찰의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구역질이 나올 지경입니다.

검찰은 조사가 지연된 것에 대해 사실상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며 신경질적으로 갖가지 이의를 제기한 야당 대표 탓이라고 말하는데,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피의자가 되레 큰 소리를 치고 있으니 이 또한 참담한 현실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그토록 많은 인력과 시간, 그리고 물질을 소모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거짓 증언을 일삼고 불리한 증거가 나오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모르는 일이다” 하면서 질문을 피해가고 있으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라와 국민들, 후손들의 몫인가 싶습니다.

자신들의 이념과 사상에만 몰두하는 쓰레기보다 못한 정치 모리배들 때문에, 나라를 위해 피땀 흘리며 목숨까지 내놓았던 우리 선조들께서 안타깝게 울부짖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50억 원이란 어마어마한 거금을 퇴직금으로 지급했다는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척동자도 이 거금이 무슨 의미인지 다 알 수 있는데, 판사들은 어떻게 무혐의 처리했을까요? 참으로 해괴한 판결 아니겠습니까.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만 면죄부를 주는 김명수 대법원장 치하 사법부의 재판을 보면서, 권력을 가진 자들 모두에게 금품이 전달된 탓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라 미래를 위해 이참에 전수조사를 해서 환부를 도려내야 하지 않을까요.

겉으로는 자유와 평등, 정의의 기치를 들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 같지만, 속내는 이리 떼와 하이에나처럼 사납고 추잡한 이중인격자들입니다. 나라를 풍비박산내는 이완용 같은 아첨꾼들 같습니다.

지금 입법부와 사법부에 많은 크리스천들이 있지만, 날이 갈수록 부패한 정치인들과 공무원들, 판검사들의 수효는 늘어만 가는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소통과 화합은 사라진 채 서로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 선조들의 귀한 속담 역시 사라져 감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아들과 각별한 아들을 선물로 받았는데, 무엇이 두려워 세상 권력과 돈, 명예에 짓눌려 살아가는지요? 잠시 부귀영화를 누리다 영원히 세상을 이별하는 날,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대에 가서 뭐라 증언하실 것인지요?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