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는 은, 신학은 동, 기적은 철이다. 금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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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 설교]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

▲김명혁 목사. ⓒ크투 DB

▲김명혁 목사. ⓒ크투 DB
일시: 2023년 2월 5일

장소: 남양주시 수동감리교회
본문: 마 5:43, 44, 막 10:45, 요 13:14

저는 성자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온유와 겸손” 그리고 “사랑과 섬김”을 가장 귀중하고 아름답고 축복된 삶으로 여기시는 삶과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성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 하시므로 성자 예수님을 믿는 수 많은 죄인들을 구원하게 하시는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수행하셨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오셔서 수 많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심으로 수 많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수행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께서도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구원사역을 함께 수행하심으로 “사랑과 섬김의 사역”에 참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죽으실 때까지 극심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을 몸에 지니고 사시면서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수행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두 마디로 요약하시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라고 지적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그리고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라고 말씀하시면서 온갖 종류의 병자들과 죄인들의 몸을 따뜻하게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면서 부드럽게 섬기셨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3). 영국의 존 스토트 박사님은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가장 정확하고 올바로 묘사하는 말씀이 바로 막 10:45 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또한 주님을 믿고 따르려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귀중한 말씀도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면서 온갖 죄인들과 병자들을 사랑으로 섬기시는 착한 일을 하셨다고 사도 베드로가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여기 성자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병자들을 사랑으로 섬기시는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수행”하신 일이 성자 예수님께서 혼자서 하신 일이 아니고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신 일이고 성령 하나님과 함께 하신 일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 4:1).

저는 하늘 영광을 모두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온갖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성자 예수님의 귀중하신 사역들 중에서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수행하신 삶과 죽음”보다 더 귀중하고 더 보배로운 삶과 죽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따라서 세상에 오셔서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사시다가 죽으신 성자 예수님께서야말로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최고로 지니시고 실천하시면서 사시다가 죽으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죽으실 때까지 극도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을 몸에 지니고 사시면서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최고로 수행하시면서 나타내 보이셨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두 마디로 요약하시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라고 지적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그리고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라고 분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라고 말씀하시면서 온갖 종류의 병자들과 죄인들의 몸을 따뜻하게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면서 부드럽게 섬기셨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3). 영국의 존 스토트 박사님은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삶을 가장 정확하고 올바로 묘사하는 말씀이 바로 막 10:45 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귀중하고 천사의 말도 귀중하고 예언의 능도 귀중하고 구제도 귀중 하지만 “사랑과 섬김”이 없는 믿음과 천사의 말과 예언의 능과 구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단언을 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13).

그리고 “섬김”의 귀중성을 강조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롬 15:25).

성자 예수님의 가르침과 본을 받아서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수행” 하는데 전력을 다한 교회들이 여기 저기 생기게 되었습니다.

1.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

첫째로,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이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쓴 것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 2:44,45).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바나바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2-37).

결국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수행” 하는 일들로 인해서 예루살렘교회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고 그 결과로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예루살렘교회 신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수행” 하는 아주 귀중한 신자들이었습니다.

2. 예루살렘 교회 집사들

둘째로, 예루살렘교회의 집사들이 무엇보다 먼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살았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행 6:3,4).

일곱 집사들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전력을 다하면서 전도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사랑과 섬김의 일과 함께 전도하면서 순교의 제물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한 스데반 집사의 마음 속에는 자기를 돌로 쳐 죽이는 사울에 대한 분노와 증오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악한 세력을 향해서 진리의 칼을 휘두르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온유 겸손한 착한 마음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는 사울을 위해서 속죄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하신 기도와 비슷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처절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기도로 사울이 나중에 회개하게 되었고 사도가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는 크게 부흥하게 되었고 사도행전의 역사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충실한 스데반 집사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억지로 전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으로 일로 인해 전도가 저절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 교회 집사들은 무엇보다 먼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 데 최선을 다한 귀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3. 욥바에 살던 도르가

셋째로, 욥바에 살던 도르가도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 9:36).

가난한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 나누어 주는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수고”를 너무 많이 해서 그랬는지 도르가는 병들어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르가의 선행과 구제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고 수 많은 욥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결국 도르가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함으로 인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억지로 전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행 9:36-42).

욥바가 복음화 된 것은 전도 프로그램이나 행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도르가의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으로 인해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도르가는 무엇보다 먼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4. 로마 백부장 고넬료

넷째로, 가이사랴에 살던 로마 사람 백부장 고넬료도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아직 예수님을 정식으로 믿지 않았지만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많이 구제하는 착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 10:1,2).

그런데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와 착함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고 유대인들의 칭찬을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천사를 고넬료에게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행 10:22).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증거했을 때 성령께서 임하시고 가이사랴의 복음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베드로의 인간관과 그리스도관과 세계관과 선교관이 달라졌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행 10:38).

결국 귀중한 모든 일이 착한 사람 고넬료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무엇보다 먼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5. 안디옥 교회 설립자 바나바

다섯째로, 안디옥 교회의 설립자였던 바나바는 누구보다도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 11:24).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안디옥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은 바나바의 착한 모습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37).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행 9:27).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5,26).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 11:29).

나중에는 바나바와 사울이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2,3).

선교사 바나바와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기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고난과 핍박의 길로 달려갔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가결하였노라”(행 15:26).

착하지 않은 이기적인 사람은 순수한 선교사가 될 수도 없고 복음을 위해서 고난과 핍박을 받지도 못합니다. 착한 사람만이 누군가를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버릴 수가 있습니다. 결국 바나바 때문에 사도 바울이 생겼고, 바나바 때문에 안디옥교회가 생겼고, 바나바 때문에 소 아시아 선교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서 사도행전의 역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무엇보다 먼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6. 사도 바울의 후계자 디모데

여섯째로, 사도 바울의 후계자가 된 디모데도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자기 아들로 삼았고 자기의 후계자로 삼았는데 디모데는 무엇보다 먼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착한 사람이었고 자기의 일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일을 더 돌아본 이타적인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행 16:1,2).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빌 2:19,20).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사람이고 그리고 자기 일보다 다른 사람들의 일을 더 잘 돌아보는 사람인데 디모데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착한 사람 디모데가 보고 싶다고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고백했습니다.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딤후 1:4,5).

사도 바울은 그의 마지막 서신을 디모데에게 쓰면서 디모데보고 빨리 오라고 두 번씩 부탁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 4:9).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딤후 4:21). 착한 사람은 보고 싶어지는 사람입니다. 디모데는 무엇보다 먼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7. 빌립보 교회 설립자 루디아

일곱째로, 빌립보 교회의 설립자 루디아도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일 사랑하고 제일 보고 싶어하고 제일 귀중하게 여기던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7).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사는데 최선을 다한 착한 사람 루디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자 예수님의 영에 이끌려 빌립보 강변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기도하던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루디아가 사도 바울을 만났을 때 마음을 열고 사도 바울의 말씀을 청종했다고 했습니다. 착한 사람은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온 집이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착한 사람은 청종도 잘 하고 순종도 잘 하고 결단도 잘 합니다. 그 다음 집을 열고 지갑을 열어 사도 바울의 일행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행 16:15).

착한 사람은 집을 열고 지갑을 엽니다. 착한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사람인데 지갑도 열고 집까지 엽니다. 결국 루디아의 집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가장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착한 사람 루디아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루디아는 무엇보다 먼저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28년 동안 목회하면서 빌립보교회를 모델로 삼으면서 목회를 했습니다.

성 프랜시스(프란치스코)와 손양원 목사

성 프랜시스는 모은 종류의 사람들과 동물들과 자연 만물을 “사랑하면서 섬겼는데” 결국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을 몸에 지니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귀중한 말을 남겼습니다. “가난은 나의 애처이고 고난은 나의 스승이고 죽음은 나의 자매입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은 성 프랜시스를 바라보면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과 섬김”은 하나님 “사랑과 섬김”으로, 나환자 “사랑과 섬김”으로, 원수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1945년 8월 해방 후 다시 애양원 교회로 돌아와서 그의 남은 생애를 애양원 나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 부으면서 따뜻하게 섬겼습니다.

한 번은 박옥선이란 여 환자가 발 밑에 난 종기 때문에 다리를 절단해야 할 만큼 심각하였습니다. 손양원 전도사는 194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나환자들을 계속해서 지극하게 사랑하시면서 입으로 악취 나는 나환자들의 피고름을 빨아 주셨습니다. 나병의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은 약이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들에게 극도의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신 한국의 프랜시스였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딸 손동희 양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아버지는 분명 우리 남매의 아버지인데 내가 볼 땐 나환자들의 아버지인 것만 같아 보였다. 아버지는 병든 육신일지언정 저 바깥의 표리부동한 자들보다 몇 배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라 하며 그들의 정신적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다음과 같은 아버지의 노래도 그런 심정의 한 표현이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극치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사랑하던 믿음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혀 순천 경찰서 뒷 마당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예수를 증거하다가 총살을 당해 순교 당했습니다.

10월 25일 반란군에 의해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양원 목사님 내외는 엄청난 충격에 쌓여 비통해 했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님은 밤을 새워 통곡하며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양원 목사님은 딸 동희 양을 계엄사령관에게 보내어 그를 사면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를 양자로 삼아 교육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안 가겠다고 반항하며 대드는 딸 동희 양을 설득하여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습니다. 결국 딸은 자기 의지에 반해 아버지의 하나님 절대 신앙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국군 심문자에게 그대로 전하므로 처형되기 10여 분 전에 원수를 살려냈습니다. 동희 양은 취조 군인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고요. 성경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이래요.”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을 토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동희 양의 말이 끝나고 동희 양이 울음을 터뜨리자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취조를 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위대하시다” 라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안재선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이 떨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뿐 아니었습니다. 성 프랜시스를 너무 존경하면서 평생토록 온갖 종류의 자선 사역에 전념하신 한경직 목사님도 “사랑과 섬김”과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희생의 삶을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예수라고 불리시던 장기려 박사님도 “사랑과 섬김”과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희생의 삶을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은 자기 자신의 평안과 부귀와 영화를 다 포기하고 3무 4무 5무의 가난과 고난과 청빈의 삶을 살면서 불우하고 불쌍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너무너무 귀중한 삶을 살았습니다.

한국교회 선배님들인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과 최봉석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들도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기보다는 불우하고 불쌍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사랑과 섬김”과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청빈의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지녔던 순수한 “믿음과 소망”과 함께 “사랑과 섬김”보다는 지나친 의인 의식을 지니고 소위 진리의 깃발을 휘두르며 모두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증오와 분노와 분쟁의 모습이 팽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들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들이 모두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순수한 “믿음과 소망”과 함께 “사랑과 섬김”의 부스러기를 몸에 지니고 모두를 끌어안고 울면서 사랑으로 녹일 수 있는 “사랑과 섬김”의 도구들과 제물들로 만들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저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이고 게으르고 나태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사랑과 섬김”의 부스러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면서 아프리카로 방글라데시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파키스탄으로 중국의 연변 지역으로 때로는 북한으로 달려 다니면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려고 애를 쓰곤 했습니다.

설교는 은이고 신학은 동이고 이적은 철이고…

오늘의 한국과 세계에 필요한 것은 유창한 설교보다는 심오한 신학강의 보다는 놀라운 이적을 나타내 보이는 것보다는 순수한 “사랑과 섬김”의 삶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설교는 은이고 신학은 동이고 이적은 철이고 사랑은 금이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의 손길을 펴시고 또 펴셔서 한평생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을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제가 15년 전에 “사랑하고 싶어라” 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그 글을 인용함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주님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한 평생 나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과 사랑이 어찌 그리 크고 어찌 그리 많은지! 실로 모래알보다 더 많은 주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나의 가슴에 눈물을 자아낸다.

사랑하고 싶어라.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어린이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귀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 저들의 얼굴과 마음과 영혼 속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고귀한 인성과 신성의 흔적을 보기 때문이다. 저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어라. 모슬렘도 공산주의자도 상관이 없다. 저들은 무슬림이나 공산주의 라는 불행한 유산에 쌓여있는 가련한 영혼들일 따름이다.

사랑하고 싶어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2007년 1월 3일 아침 교회로 운전하며 오는 차 속에서 쓴 글).”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셔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귀중한 삶” 을 평생토록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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