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연애는 다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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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갈수록 배우자감을 고르면서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을 찾는다. 예전이라고 외모를 따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점점 더 집착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적당한 짝을 만나 살던 어르신 세대보다 더 오래 잘 사는 것도 아닌데, 여러 가지 요인들이 이런 분위기를 더욱 부추기는 것 같다. 이제는 외모가 기대 수준에 못 미치면 차라리 싱글로 살겠다는 이들도 꽤 있을 것 같다.

외모는 중요하다. 긴 세월 함께 살아야 하는데, 볼 때마다 아쉬운 느낌이라면 좋을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형이나 지나친 꾸밈이 필요하다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2008년 ‘소울’이라는 자동차가 나왔을 때, 디자인이 뻔하지 않고 무척 예쁘다는 소문이 났다. 얼마 후 본격적으로 홍보가 시작됐는데, 광고 문구가 바로 이거였다.

“무조건 예뻐야 돼!”

운전을 하든 집 앞에 세워놓든, 일단 모양이 예뻐야 기분이 좋다는 얘기다. 성능도 중요하지만 예쁜 것이 좋다는 유혹이었다.

근데 그거 알아?

아무리 배려가 좋아도 예쁘지 않으면 눈길도 안 준다는 거.

무조건 예뻐야 돼. Get a Soul.

이런 카피는 남녀에 빗댄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배려가 좋다’는 것은 남자 이야기 같고, ‘예쁘지 않으면’은 여자를 노린 것 같다. 기능도 외형도 출중한 차라고 남녀 모두를 공략한 것인데, 광고에는 주로 여자가 등장한다. 불과 15년 가량 지났지만 예쁘지 않으면 눈길도 안 준다니, 요즘 이런 식으로 말하면 ‘성인지 감수성’ 결여로 비난받기 좋은 부적절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진으로 보면 차가 참 괜찮아 보였는데, 실물로 굴러다니는 것을 보니 생각만큼 예쁘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차체가 두툼하니 왠지 둔탁해 보였다. 그런 디자인에는 경차 정도의 아담한 크기가 더 어울리는데 그보다는 차체가 좀 커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소문에 비해 입소문이 적어 기대만큼 많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결국 차는 아무리 광고를 해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소용이 없다.

나도 차를 살 때 고민을 하지만, 일단 차를 잘 모르고 비교적 자족하는 편이다. 비를 피하고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서 나를 의미 있는 장소로 데려다 주는 자체를 좋아하고, 마치 사람이 자기 얼굴을 볼 수 없듯 운전석에 앉으면 보이지도 않는 차체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차의 종류와 사양까지 줄줄 꿰는 등 차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남자들도 있는데, 그런 집 아들들을 보면 꼬마 때부터 차를 공룡만큼이나 잘 아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집은 그렇지 않았다.

2006년경 차를 바꿀 때, 딜러로 일하던 친누나가 ‘i30’라는 차를 소개했다. 아반떼와 같은 엔진의 차였는데, 원래 해치백 스타일을 선호하기도 하고 보는 순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 실물을 보고 바로 결정했다.

세차 안 해도 티가 잘 안 나는 샴페인 실버라는 색이었지만, 금빛도 은빛도 아닌 한 마디로 황사 모래 색깔을 선택했다. 그런데 잠깐 고민할 그때, 문득 떠오르는 멜로디가 있었다. 이 자동차의 광고 CM송이었다.

‘달라, 달라, 달라 난 달라! 내가 타는 차가 바로 그 차 아이써티~.’

모르는 새 각인되는 광고의 무서움을 그때 절감했다. 차를 골라야 하는 순간이라 그랬는지 남들 보기에는 그거나 그거나 크게 다를 바 없는 차를 사면서도, 문득 떠오른 그 광고 문구가 선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람 사는 일도 이와 같다. 무조건 예뻐야 한다고 생각해서 선택해도 다 보기 나름이고, 각자가 상대방의 특별한 다름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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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외모를 중시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말씀은 어떤 외모를 선호하는 것까지 정죄하는 것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외모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잘났다고 재판에서 선처하거나 못났다고 차별해 인격적으로 무시하지 말라는 의미다. 얼굴과 신체 조건도 물론이지만, 사람의 재력이나 권력, 영향력 등에 휘둘리지 말라는 뜻이다.

어떤 외모를 좋아하고 선호하는 것이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하나님도 만물을 만드시고는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아름다움과 매력을 지닌 상대를 찾고자 애쓰는 것은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그래도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라서 외모를 보는 순간부터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므로, 외모를 중시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외모를 선호하는 자세까지 포함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는 실수를 할 때, 첫 느낌이 “보기에 아름다우며(창 3:6)”라고 기록된 것을 상기해야 한다.

사울 왕도 보기에 잘 생겼다고 했지만(삼상 16:12) 그에 걸맞은 인격이 아니었고, 밧세바도 다윗이 보기에 매우 아름다웠지만(삼하 11:2) 걸려 넘어지는 대상이었다. 또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지만(삼하 13:25) 그의 인품은 그렇지 못했고, 그것이 자신과 아비 다윗에게 불행이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는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반반함이나 단순한 차원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외형뿐 아니라 자연과 만물이 지닌 모든 속성들, 완벽하게 지어진 그 모든 메커니즘이 좋았더라는 말씀임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징그럽게 생각하는 벌레 한 마리까지도 하나님께는 아름다운 창조물이다. 사람도 자신이 외모 위주로만 사랑하는 것인지 돌아보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차를 살 때 그 자동차의 오너들이 모인 카페에 가보니, 색깔만 몇 종류지 결국 같은 차인데 서로 사진 찍어 올리고 자랑하며 뿌듯해한다. 다 같은 차라는 걸 몰라서가 아니다. 자동차는 소유하는 순간 다 같은 차가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각자가 의미를 두는 만큼, 정을 쏟고 공을 들이는 만큼 차는 달라지고 새로운 저마다의 의미가 생긴다. 차를 세워둔 곳이 다르고, 사진 찍는 각도도, 함께하는 사람도 다르다.

연애와 결혼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평소 기준과 달라도, 갑자기 눈이 멀어 남들은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멋져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새 그는 내 눈에 ‘달라 보이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 사랑한다는 증거다. 그 사람이 세상 어떤 이성과도 다르지 않게 보일 때, 사랑은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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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쁘고 멋진 사람이 많아도 내 차지가 될까, 내가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람이 될까 하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가장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소중한 차를 만나듯이, 서로를 받아들여 줄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

창밖을 바라보며 비교하고 기대치를 자꾸 올리면 끝이 없다. 엄청난 미모의 여성과 사귀던 한 후배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는 ‘모르는 여자’인 것 같다고 진담 섞인 농담을 하는 걸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이처럼 사는 동안 ‘조금만 더 키가 컸으면’, ‘좀만 더 예뻤으면’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떤 대단한 사람을 만나도 느끼는 아쉬움이다. 조금 아쉬워도 예쁘다, 멋지다 하면 더 그렇게 보인다. 또한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은 갈수록 빛이 나는 예쁘고 멋진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 교회 한 권사님은 남편만 보면 아직도 그리 좋은지, 귀엽다고 난리다. 사람들 앞에서도 종종 남편 등을 어루만지며 “아유, 이뻐” 하고, 바라보는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진다. 어떤 때는 민망해하는 남편 뒤통수까지 쓰다듬으며 “이 양반 귀엽지 않아요?” 하고 동의를 구하기까지 한다. 동의 여부를 떠나 참 편하고 행복해 보이는 부부다. 참고로 두 분 다 무척 평범한 외모의 보통 분들이다.

물론 평소 호감을 느끼던 스타일과 너무 동떨어지고 호감이 생기지도 않는데 정붙이면 살겠지 하는 마음으로 결혼하는 것은 반대다. 예뻐 죽겠다던 사람과 살아도 문득문득 미워질 수 있는데, 비호감과 살면 두고두고 눈과 마음이 삐걱거릴 수 있다.

사람은 외모에서도 감동과 기쁨을 느끼는 존재이므로 서로가 어느 정도는 단정함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밖에 나갈 때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집에서도 너무 격의 없는 옷차림은 삼가는 것이 좋다. 아무리 부동의 연인이라도 가릴 건 가리는 것이 좋다.

예전 한 개그우먼이 약속 장소인 영화관에 먼저 와 있는 자기 남친을 멀리서 발견했는데, 어쩐 일인지 불편하게 기마자세로 서 있더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추리닝 바지 무릎이 너무 튀어나와서 엉거주춤하게 선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데이트하러 나오는 사람이 너무 무심하고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서 헤어졌다나.

외모는 솔직히 매우 큰 부분이지만, 시험에 들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하다. 그러니 외모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외적인 조건에서 조금 자유로워져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만큼 서로의 눈은 웬만큼 성능이 저하되기 마련이니,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다 해결된다.

세상에 예쁜 아기만 있는 것은 아닌데도 자기 아이를 낳아 키우면 그 얼굴이 하루종일 들여다봐도 전혀 지겹지 않고, 1초 뒤에 다시 봐도 반갑고 예쁘다. 사랑해서 사랑스럽다.

배우자가 계속 이렇게 보인다면 제정신이 아닌(?) 상태겠지만 마치 그런 느낌처럼 만족도가 높고, 보면 볼수록 정이 가면서 웃음이 나는 사람을 만나면 좋다는 것이다.

외모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예뻐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면 예쁜 거다. 사랑하면 그 사람의 장점과 세상 하나뿐인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깊이 간직해야 한다. 자꾸만 미워지는 위기의 순간을 위해. 언젠가 세월의 질투로 서서히 사라져 갈 그날을 위해.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등 40여 종
https://blog.naver.com/woogy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