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원평 교수(전 부산대 물리학과, 현 한동대 석좌교수)
▲길원평 교수(전 부산대 물리학과, 현 한동대 석좌교수)는 “20년간 투병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죽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의 문제점을 알게 된 것이 만 50세가 되던 해였다”며 “하나님께서 제가 하는 일을 기뻐하셨는지, (두 번의 암 수술과 콩팥 제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몸이 좋아지고 있다. 마음껏 일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했다. ⓒ송경호 기자

“미국과 서구는 무너졌지만, 한국은 이길 수 있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모르면 찬성하고 알면 반대한다”는 말이 있다. 세부 설명 없이 진행한 설문에서는 43.8%가 찬성하고 41.5%가 반대했다. 반면 “자신이 여성이라 생각하는 남성의 여자화장실 출입이 허용되고, 학교에서 동성애·성전환을 정상이라고 가르칠 수 있으며, 이를 따르지 않을 시 최대 3천만 원을 ‘반복적으로’ 부과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알렸을 때는 28.4%가 찬성하고 59.9%가 반대했다(2022년 8월 리얼미터).

2006년도 우연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의 문제점을 알게 된 후 기나긴 투쟁의 길에 뛰어든 ‘물리학자’ 길원평 교수(전 부산대 물리학과, 현 한동대 석좌교수)는 자신이 본래 철저한 유물론자였다고 했다. 그는 “중학생 시절 책을 읽다가 ‘인간의 마음은 뇌에서 생긴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허무주의에 빠져 괴로워했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물주’를 향해 울부짖던 중, 하나님을 만났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부산대 교수직에 임명돼 촉망받던 그는, 이듬해부터 간경화로 30대와 40대를 오직 투병생활로 보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죽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중 법안의 문제점을 알게 된 것이 만 50세가 되던 해였다”며 “하나님께서 제가 하는 일을 기뻐하셨는지, (두 번의 암 수술과 콩팥 제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몸이 좋아지고 있다. 마음껏 일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장기전이다. 어느 한 쪽이 완승하는 싸움도 아니다. 음란과 거룩의 싸움”라며 “교육과 언론, 문화가 중요하다. 특히 교육계를 탈환해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길러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서구도 무너졌는데 과연 한국이 이길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 시선이 많은데,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길원평 교수의 일문일답.

‘죽음’ 고민하다가, ‘죽음 앞 용서’ 예수님께 감동받아

-젊은 시절 철저한 유물론자였다고 들었다.

“인간에 대한 책을 읽고는 중학교 3학년 때 유물론자·무신론자가 됐다. ‘인간의 마음은 두뇌에서 생긴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갔을 때 허무에 빠졌다. 인간은 죽음과 함께 흙으로 없어지는 존재라는 생각에, 서른살쯤 됐을 때 연구실에서 연구는 하지 않고 ‘왜 살아야 하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인 고민과 허무주의에 휩싸여 살았다. 죽으면 존재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이 너무 허무했다.

15년을 허무감 속에 살았다. 그러다 조물주에 대한 분노가 생겼다. 나를 위에서 내려다 보며,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며, 하나님이 있다면 이 시험으로부터 건져 달라고 울면서 부르짖었다. 그냥 죽기는 싫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마 어머니의 기도와 어릴 적 교회를 다니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기독교가 맞는지 한번 확인해 보자는 생각이었고, 이게 아니면 다른 종교라도 믿어야겠다는 생각에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3주쯤 읽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며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대신 용서를 구하신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저는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선 죽으면서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신 것이다. 스데반 역시 똑같았다.

얼마 후 1인용 쇼파에서 낮잠을 자는데, 스스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게 아닌가.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다. ‘이게 죽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다 잠에서 깼다. 책상 위에 일기장이 펴져 있는데 ‘영혼’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성경에 단어가 계속 나오니 이게 무언가 하고 일기장에 적어 놓고 잠이 든 것이다. 성경을 보니 ‘썩어질 몸과 썩지 않을 몸’이 있다고 했다. 눈물이 글썽였다. 또 비슷한 문구가 나오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단번에 믿게 된 것이다. 서른 살이 되던 여름날, 정말 하나님께서 계신지 알고 싶은 마음에 기도했고, 그때부터 기도한 100개의 기도제목이 다 응답이 됐다. 그해 박사학위를 받고, 부산대 교수가 됐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됐다.

영이 있고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까지는 알게 됐는데, 다음은 죄의 문제였다. 거짓, 뇌물, 탈세 등의 유혹이 컸다. 동시에 간경화 투병생활을 하게 됐고, 내가 죄인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기나긴 스토리가 시작됐다. 30대와 40대를 완전히 누워 투병생활을 했고, 50세부터 일어나 활동하게 하신 하나님의 신비로운 계획이 있었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생명, 약하기에 교만하지 않게 돼

길원평 교수(前 부산대 물리학과, 現 한동대 석좌교수).
▲1956년생인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 수 차례 삭발식은 물론 국회 앞 단식투쟁도 불사했다.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를 펼치던 길원평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뛰어든 것은 2006년인데, 이후 17여 년의 시간 동안의 이 일을 하면서 외롭진 않았나.

“사실 저는 이 일이 너무 재미있다. 40대 후반 하나님께 ‘나도 하나님의 일을 좀 하다 죽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 주셨다. 이 일을 하며 오히려 몸이 많이 좋아졌다. 이전까지 수업하고 누워 있고를 반복하며 겨우 교수직을 유지했는데, 정년 퇴임 후 한동대 석좌교수로 불러 주셨다. 그동안 수고한 것에 대한 상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겨우 살았던 사람이, 지금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지금 67세인데 (투병 기간인) 20년을 뺀 47세라고 보면 된다.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지칠 줄 모르고 즐겁기까지 하다. 저의 꿈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더 가까이 가느냐이다. 그간 공부만 했지, 시민단체 일을 해본 경험이 없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에 할 일을 생각나게 하신다. 그리고 그대로 되게 하신다. 그러니 행복하다.”

-주변의 교수들은 어떻게 바라보던가.

“놀란다. 부산대에서 겨우 교수직을 유지했으니. 자기 과목만 겨우 가르치던 사람이 이러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도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이렇게 열심히 할 것이라고 생각 못했다. 전화와 이메일로 주로 연락했으니, 우리 학과 교수들은 제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줄도 사실 잘 몰랐다. ‘정년퇴직이나 할 수 있을까’ 약간 불쌍한 눈빛이었다. 휴직을 해도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했는데, 하나님께서 점점 건강하게 하셔서 오늘의 저를 만드셨다.”

-두 번의 암 수술과 콩팥 제거라는 큰 수술을 받을 때 심정은 어땠나. 가족들의 반응은.

“32살부터 35년을 아파 왔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생명을 가지고 빙판 위를 걷듯 살아 왔다. 두 딸이 있는데, 병원에 간다고 하면 아빠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그것이 어릴 때부터 일상이었다. 아빠는 늘 아팠고,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전국을 다니니 너무 좋아한다. 두 딸이 모두 결혼했고, 너무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제가 하는 일을 기뻐하셨는지 오히려 몸이 좋아지고 있고, 정상인과 같은 느낌이다. 30대 때 누워 있던 것에 비하면 지금 너무 건강하고 마음껏 일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

동성애자 비난한 적 없어… 합리적 증명 노력해 공격 안 받아

-교수님의 노력을 비난하는 이들은 없었나.

“그런 건 없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격려를 많이 해 줬다. 건강하긴 하지만 여전히 간경화 환자이고 계속 암체크를 해야 한다. 약한 가운데 이런 일들을 하니 귀하게 여겨 준다. 약한 몸이 나에겐 큰 장점이다. 약하기에 교만하지 않게 된다. 다행히 많은 성과가 있었다. 2017년 동성애를 기본적인 인권에 포함시키려는 개헌 시도를 막아냈고, 최근 2022 개정 교육과정 문제까지 ‘하면 된다’고 느꼈다. 어떤 분들은 동성애 진영에서 공격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공격할 근거를 찾지 못해서인지 아직까지는 하지 않는다. 사실 저도 동성애자들을 비난한 적이 없다. 그것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합리적으로 증명하려 했기에 그랬을 수 있다.”

길원평 교수(전 부산대 물리학과, 현 한동대 석좌교수)
▲길원평 교수는 “장기전이다. 어느 한 쪽이 완승하는 싸움도 아니다. 음란과 거룩의 싸움”라며 “교육과 언론, 문화가 중요하다. 특히 교육계를 탈환해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송경호 기자

-학부모들의 절박함이 크던데,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론 다 알 수 없다. 당사자인 부모들의 아픔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분들이 울며 호소할 때는 ‘포괄적 차별금지법’만큼은 꼭 막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 진짜 동성애자들은 0.5%가 되지 않지만, 동성애를 한번이라도 경험한 이들은 여섯배인 3% 가량 된다. 적지 않은 숫자다. 특히 젊은 층이 그렇다. 서구도 마찬가지다. 자녀가 동성애자가 된 부모의 마음은 너무 아플 텐데, (법이 이미 제정돼) 이젠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없게 됐다.”

한쪽이 완승하는 싸움 아닌 장기전… 다음 세대 길러내야

-올 한 해 바람과 계획은 무엇인가.

“이 싸움은 장기전이다. 금방 끝나는 것도, 어느 한 쪽이 완승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 세 가지가 중요한데 첫째는 교육, 둘째는 언론, 세 번째는 문화다. 언론도 불리하고 문화도 불리한데, 그 중 제일 해볼 만한 것은 교육이다. 교육은 정부가 주도하기에 충분히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교육계를 탈환해 아이들에게 나쁜 것을 없애고 좋은 것을 넣는 한 해가 되도록 계획하고 있다. 언론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보도준칙(제8장 성적 소수자 인권)’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없애야 보수 언론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동안 수비하기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거룩 운동, 회개 운동을 펼쳐야 한다. 음란과 거룩의 싸움이라고 보기에, 우리 편에서도 믿음의 사람이 많아지고 그것이 다음 세대로 전파되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진짜 하나님의 사람들로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배턴을 이어받아 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소망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부정적인 마음을 먹지 말자. ‘미국도 서구도 무너졌는데 과연 한국이 이길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 시선이 많은데,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기 때문이다. 영적 지도자들부터 거룩 운동을 펼쳐, 존경받는 기독교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