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달리아는 도시, 버가는 작은 마을
앗달리아, 튀르키예 최고 휴양도시
분실한 일지 구입 위해 서점 방문해
경멸당한 이승만 대통령 안타까워
▲안탈리아 시내 번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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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도를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사도행전 14장 24-25절)”.
버가는 앗달리아 동북쪽에 있다. 즉 이고니온에서 앗달리아로 가는 도중에 있는 도시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연히 버가를 먼저 들려 복음을 전하고 앗달리아로 이동했다.
오늘날 앗달리아는 큰 도시이나 버가는 아주 작은 마을이므로, 필자가 이고니온을 떠나 앗달리아로 이동할 때 필자가 탄 버스는 도중에 버가에서 정차하지 않고 막바로 앗달리아에 도착하였다. 이에 필자는 바울의 전도 여정과 반대로 앗달리아를 먼저 둘러보고 버가로 이동했다.
▲서점에 여러 종류의 아타튀르크 책들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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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눈부신 아침 햇살이 호텔 창문을 비추기 전에 필자는 아침 일찍, 항상 여행 배낭 속에 소중하게 넣어 다니는 대한민국 해군 여름 체육복 상의를 입고 운동화 끈을 조이고 넓은 가도를 따라서 해안 쪽으로 달려갔다.
해안 가까이 가는데 보니 현지인 한 명도 아침 공기를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다 보니 순식간에 친구가 되어, 함께 호흡을 맞추며 안탈리아 시내 끝까지 단숨에 달려 해안에 도착했다. 언덕에 올라보니 해안선 끝이 안보일 정도로 모래사장이 멀리 펼쳐져 있다. 가슴 속 깊이 후련함이 몰려든다.
이전 회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필자는 루스드라에서 이고니온에 가는 길에 어디선가 필자의 여행일지 공책을 분실하였다. 그러므로 필자는 공책을 구입하려고 안탈리아 시내 서점에 들어갔다. 이 서점은 엄청나게 큰 규모인데 공간의 대부분이 책방이고, 한 구석에는 문구류도 판매하고 있었다.
▲학생 공책 밑에도 아타튀르크의 얼굴이 인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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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원에게 필기용 공책이 필요하다고 크기를 이야기하였더니 공책을 골라서 줬다. 공책 아랫부분에 아타튀르크의 얼굴이 들어 있다. 튀르키예 어디를 가도 아타튀르크의 동상 또는 흉상이 수없이 설치되어 있는데 서점에서조차 이렇게 많은 아타튀르크의 책을 만나다니…, 우리나라 사정과 비교되어 놀랍고 너무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에 항거하여 국내외에서 생명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여 일제로부터 독립하고 자유민주 국가가 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오늘날 많은 국민으로부터 경멸당하고 있다.
▲안탈리아 해변이 보이는 언덕에서 현지인과 함께한 필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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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한국전쟁 중 공산 침략자를 격퇴하고 자유민주 대한민국을 확실하게 세운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다면, 한국은 이미 오래전에 공산국가가 되어 우리 기독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는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동물도 은혜를 아는데, 이런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은혜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승만 대통령만 없었다면 한반도가 공산화되었을 것이라며 공산국가로 통일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특히 이승만 대통령을 경멸하고 있다. 1948년 5월, 우리나라 최초의 제헌국회는 이승만 대통령 지시로 하나님께 대한 기도로 시작하였다.
필자는 공책을 구입한 뒤 서점을 나와 안탈리아 시내에서 버가로 가는 전철을 탔다.
권주혁 장로
세계 136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