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군산 샬롬교회
일시: 2023년 1월 15일
본문: 요한복음 14장 1-6절

김명혁 인터콥
▲김명혁 목사. ⓒ크투 DB
저는 요한복음 14장 말씀을 아주 좋아하는데, 성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귀중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하루 몇 번씩 암송하는 아주 귀중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요 14:1-4).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인들이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을 받은 것이 너무 귀중하고 너무 축복된 일이지만 성자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그리고 재림하심으로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을 받은 우리 죄인들의 몸들이 무덤에서 부활해서 성부 하나님의 집인 천국으로 올라가서 영원토록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경배와 영광을 영원토록 돌리게 될 것은 너무 귀중하고 아름답고 축복된 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자 예수님의 망극하신 사랑을 받은 사도 요한은 성자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 하늘로부터 재림하실 재림에 대한 계시의 말씀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또 기록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계 4: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책이 있으니”(계 5: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계 6: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계 7: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계 7:9-12).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계 8:1).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계 10: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셨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계 14: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계 18: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하고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더라”(계 19:1-8).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1-4).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계 22:20-21).

재림하실 성자 예수님의 모습을 아주 상세하게 서술했습니다.

성자 예수님의 망극하신 사랑을 받은 수제자인 사도 요한이 성자 예수님의 탄생과 사심과 가르치심과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심에 대한 기록을 요한복음에서 상세하게 기록을 했는데,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기록을 요한 계시록에서 더욱더 상세하고 섬세하게 기록했습니다.

결국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물과 피와 생명을 모두 쏟아 부어주셔서 우리 죄인들을 지옥의 저주에서 구원하신 성자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섬기는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종말적인 일은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재림하셔서 우리들의 영혼들뿐 아니라 우리들의 죽은 몸들도 무덤에서 살려서 하늘 집으로 데려 가시고 그리고 우리들로 하여금 구원의 축복을 받은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영원토록 하늘 집에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경배와 영광을 세세토록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자 예수님의 재림”과 “우리들의 천국 귀향”은 우리 신자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종말적인 소망 이고 놀라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재림하실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던 교회사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님들 몇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여서 하려고 합니다.

1. 성 어거스틴의 하나님 나라와 천국 소망

첫째로 성 어거스틴의 하나님 나라와 천국 소망의 모습입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와 천국 소망에 대한 성 어거스틴의 이해가 아주 바람직한 양면적이고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 또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속함을 받은 인간들과 천사들로 구성된 즉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속한” “개인들의 집단” 으로 정의했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과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은 현세에서는 불완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아담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의 기간을 여섯 시대로 구분하며 재림으로 시작되는 “일곱째 시대”는 영원의 시대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쉬고 보며, 보며 사랑하고, 사랑하고 찬양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도성 곧 끝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라고 지적했습니다(『신국론』 22.30).

그러므로 어거스틴에 있어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는 “종말론적인” 실재이지만 동시에 지금 지상에서 역사적으로 그 구성원들 속에서 실현되어 가고 있는 “현세적”이고 “인격적인” 실재라고 지적했습니다. 어거스틴에 있어서 이 양면성은 모순되게 분리되어 있지 않고 종합되어 하나의 역동적 생활관, 현세 부정적인 동시에 현세 긍정적인 생활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미래에 완성될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간절히 대망하고 있는데 이 종말론적 대망은 지금 현재 나에게 역동적인 생활의 동기와 욕구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2. 조나단 에드워즈의 천국 사모

둘째로, 미국의 대 각성운동의 주역이었고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청교도적 칼빈주의 신학자의 한 사람이요, 목회와 부흥운동에 진력한 위대한 설교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천국 사모”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7세 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다음부터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40여세가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서술할 때 절대 주권이란 말로 서술하고 싶다. 나는 홀로 걸으면서 하늘과 구름을 쳐다보았다. 그때 내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런 엄위와 은혜에 대한 달콤한 느낌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그것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다. 나는 엄위하심과 은혜로우심을 동시에 보는 듯 했다. 이와 같은 경험 후 하나님에 관한 나의 인식은 점점 증가되고 더욱 더 생생해졌다.

하나님 인식에 대한 내적 달콤함이 점점 더해갔다. 모든 사물 안에 하나님의 영광의 고요함과 달콤함이 나타나 보이는 듯 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지혜와 순결과 사랑이 만물 안에 나타나 보이는 듯했다. 나는 가끔 앉아서 달을 쳐다보곤 했고 낮에는 구름과 하늘을 쳐다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달콤한 영광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창조주와 구속주를 명상하곤 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하나님 의식에 사로잡힌 설교자로,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는 칼빈주의 신학자로 평생을 활동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3. 길선주 목사님의 천국 사모

셋째로, 한국교회의 아버지라고 불리시는 길선주 목사님의 천국 사모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길선주 조사는 1905년 영국 웨일즈 지방에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평양 지역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사람들과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한국교회 새벽기도의 시작이었습니다.

드디어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렸습니다. 전국 각처에서 1,500여명의 신자들이 장대현교회에 모여 10일 동안 사경회를 가졌습니다. 그 사경회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는 글들을 소개합니다.

“2천명 이상을 수용하는 장대현 예배당에 회중이 차고 넘치도록 모인 사경회원 전체가 성령의 휩쓸린바 되어 혹은 소리쳐 울고 혹은 가슴 쳐 통곡하며 혹은 흐느껴 울면서 기도하고 혹은 발을 구르고 자복하며 혹은 춤을 추면서 찬미하니 소리소리 합하여 소리의 기둥은 번제단에 타오르는 불기둥 같이 하늘로 떠 떠올랐다.”(「신학지남」 14권 제 2호).

“길선주 장로는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이 존귀하신 분이고 비천하고 누추한 땅에 오셨으니 이상한 귀빈이고, 귀중한 몸인데도 오셔서 밖에서 오래 기다리시니 이상한 귀빈이며, 전능하신 분이 간절히 두드리시니 이상한 귀빈이라는 것이었다. 귀빈을 맞아드리지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라는 것이었다. 길 장로는 ‘문을 열라 문을 열라 문을 열고 환영하라’고 준엄하게 외쳤다.”(최현, 「빛을 남긴 믿음의 위인」 p. 182).

“그는 기도회 도중에 갑자기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치기를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올시다’ 라고 하면서 지난 날의 죄를 뉘우치면서 회개했다. ‘나 때문에 온 회중이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죄인 중의 죄인이올시다’ 라는 자복기도는 쉬지 않고 계속하였다. 회중은 이 때 모두 마루 바닥을 치면서 회개하기를 시작하였다.”(김광수,「한국기독교인물사」 pp. 140,141).

한국교회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께서 몸과 삶에 지니셨던 특징 하나는. 맨날 울면서 회개의 고백을 하신 것은 물론이고 하늘을 바라보시면서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셨다는 것입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을 만 독을 하고 암송을 하시면서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한 평생을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4. 이성봉 목사님의 천국 사모

넷째로, 한국교회의 무디라고 불리시는 이성봉 목사님의 천국 사모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1950년 6.25 전쟁 때 대구로 피난을 가서 3년 동안 중학생 시절을 지냈는데 그 때 몇 달에 한 번씩 이곳 저곳에서 이성봉 목사님께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저는 그 때 12번 부흥회를 참석하면서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회개를 강조하시면서 “죄 지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지옥 간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사는 법이 있어도 신자들이 은혜를 떠나서는 사는 법이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밤에 자다가 옆집 방앗간에서 방아 찢는 소리만 들어도 주님이 오시지 않나 하고 밤에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 보시곤 하셨다는 간증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목회자 한경직 목사, 부흥사 이성봉 목사』라는 제목의 책을 써서 출판했는데, 이성봉 목사님에 대해 쓴 글들의 제목 9가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이성봉 목사님의 삶은 은혜 체험적 삶이었다. ② 이성봉 목사님의 삶은 구령과 교회 부흥에 헌신한 삶이었다. ③ 이성봉 목사님의 삶은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청빈의 삶이었다. ④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이었다. ⑤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예수 중심적 신앙이었다. ⑥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회개와 중생의 복음 신앙이었다. ⑦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성결의 복음 신앙이었다. ⑧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신유의 복음 신앙이었다. ⑨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재림의 복음 신앙이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인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재림의 복음 신앙이었다” 의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다시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재림 신앙을 가지고 한 평생을 살았다. 이성봉 목사님은 밤에 자다가 옆 집 방아간에서 방아 찢는 소리만 들어도 주님이 오시지 않나 하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는 간증을 나는 중학생 때 직접 들었다. 이 세상은 잠깐 지나는 허무한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한 재림 신앙을 가져야 하며, 재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상하고 허무한 이 세상에서 성결하게 살아야 한다.

‘예수의 재림은 하나님의 최대 계획이요, 성도의 최대 소망이다.’ 그리고 재림의 날이 임박했음을 지적했다. ‘오리라, 도적같이 오리라는 약속을 굳게 잡고 요제인가 고제인가 눈물로 기다리는 주의 재림, 천지는 변하여도 그 약속은 변치 않으시리라. 아무리 보아도 시대는 점점 절박하여 간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깨어서 재림을 준비하여야 한다.

‘깨어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 밝게 켜 들고 거룩함과 인애로 신혼신을 단장하고 공중 혼연을 고대하는 신부들은 복이 있으리라.’ ‘사랑하는 나의 주님 언제나 오시렵니까? 택한 신부 맞으시려 언제나 오시렵니까? 일구 월심 오래도록 주님 생각 간절합니다 사모하는 나의 주님 속속히 오시옵소서.”

5. 손양원 목사님의 천국 사모

다섯째로, 한국교회의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시는 손양원 목사님의 천국 사모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사랑의 사람이었고 소망의 사람이었는데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나환자 사랑과 원수 사랑에 미친 사람이었고 그리고 천국 사모에 미친 소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소원을 염원하는 기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은 주님 사랑과 나환자 사랑에 그치지 않고 원수 사랑에까지 이어졌다고 하겠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소망의 소원을 염원하는 기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주님 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손양원 목사님은 천국을 소망하면서 죽음이 자기의 소원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가난은 나의 애처이고 고난은 나의 스승이고 죽음은 나의 소원입니다.”

성 프랜시스의 고백과 비슷한 고백을 하셨습니다. 딸 손동희 권사님은 아버지 손양원 목사님의 천국 신앙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할 뿐, 현세의 안락과 풍요를 약속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가끔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찾아오는 병자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특별히 병 고침을 위한 안수기도를 한 적이 없다. ‘나는 영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육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병들면 어떻습니까? 병신이면 또 어떻습니까? 잠깐인 나그네 세상에서 병신으로 살다가 천국 가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다구요.’ 이런 말로 병자를 돌려보낼 뿐이다.

나병 환자들과 평생을 같이 보내며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았지만, 그들의 병든 상태를 나쁘다거나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지 않았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이야말로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지극히 사랑하고 사모하신 순수한 소망의 스승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결국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2주일간 온갖 수모와 고난을 다 당하고 9월 28일 밤 11시쯤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당하여 48세에 순교하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총 개머리 판으로 입을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가 그렇게도 그리고 사모하던 “천국”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이튿날 아침 남편의 순교 소식을 접한 정양순 사모님은 남편의 시신 앞에서 지난 밤에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서 비통해 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 당신 소원대로 됐군요. 평소 주기철 목사님을 그렇게도 부러워했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생 동안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시고, 손양원 목사가 소원하던 순교를 허락해 주신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정양순 사모님은 마지막까지 나환자들의 친구로 살다가 1977년 11월 26일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이 있는 “천국”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그가 운명하기 전 가슴에 꼬깃꼬깃 간직했던 돈을 꺼내어 딸에게 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돈을 밀양교회에 전해 주어라.” 밀양교회는 건축 중에 있던 나환자 교회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남편의 무덤과 합장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순교하시던 거의 같은 시간에 태어난 아기 동길은 후에 커서 아버지를 따라 목사와 선교사가 되어 지금 필립핀에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은 순교적 믿음을 지킨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생명을 다 바쳐 나환자들과 원수를 사랑한 사랑의 성자들이었으며, “천국”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산 소망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순수한 “믿음”과 순수한“ 사랑”과 순수한“ 소망”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 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것으로 “부활과 승천과 천국 입성의 귀중한 소망” 이란 제목의 설교를 마무리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 모두에게 “부활과 승천과 천국 입성의 귀중한 소망”을 지니고 살다가 죽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위로와 평안과 기쁨과 축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항상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